3장 쿠투부카(2)

by 상재

8.


깡, 깡 하는 망치 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초 삼촌은 야장에서 웃통을 벗고 편자를 다듬고 있었다.


야장 앞으로 가자 후끈한 공기가 덮쳐왔다. 판관 나리는 질겁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초 삼촌이 마침 우리를 발견하고 가슴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나왔다.


문 판관은 한숨부터 쉬었다.


“아이쿠, 한여름에 불가마라니, 도무지 못 할 짓이로군.”


“문 판관, 아니지, 문 목사 아니오? 어쩐 일이십니까?”


“이번엔 숫자가 꽤 되네. 사정이 있어 핑계 대기가 어렵게 되었어.”


“얼마나 필요합니까?”


“이천 필일세.”


이천 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발끈했다.


그건 초 삼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삼촌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또 무슨 수작이래요? 이번에도 천 필을 이천 필로 올려 받으려고요?”


“바투르, 가만있거라. 문 목사, 정말입니까? 정말 이천 필이 맞습니까?”


“교지를 직접 확인했네. 높으신 분이 사욕을 채운다 한들 나와 나누지도 않을 것인데 어찌 거짓을 말하겠는가.”


“그분이 누구요?”


“문하평리(門下評理) 한방언 대감일세. 종이품의 고관대작이지. 대명 황제의 요청이라 조정에서도 허투루 처리할 수 없나 보이.”


“조공을 보낼 만한 상등마는 그리 많지 않소. 우리가 치는 말을 전부 합해봐야 기천 두에 불과하다는 걸 아시잖소? 씨암말과 망아지를 제외하면, 우리 서아막은 일이백 필 정도나 겨우 감당할 만합니다. 나머지는 동아막에 가보시지요. 그렇다 해도 이천 필을 채우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어쩔 수 없지. 가서 잘 말해 보겠네.”


문 판관은 어렵게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나는 모든 게 불만이었지만 나서서 무얼 해결할 수도 없어서 입술만 삐죽 내밀었다.


초 삼촌이 한숨을 쉬었다.


“탐노야, 네 아버지가 원하신 일이다. 너도 그때 우리가 잘못했다 생각하지 않느냐?”


나는 초 삼촌을 노려보고는 씩씩대며 등을 돌렸다.


안다. 초 삼촌의 말이 백번 옳다. 나도 내가 무엇이 불만인지 혼란스러웠다.


없는 말을 내어놓으라고 해서인지,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들이 미워서인지 모르겠다.


집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물허벅에 머리를 푹 담갔다. 사달이 날 것이다. 그날처럼 피바람이 불 것이다.


초 삼촌이 미웠지만, 어쩌면 초 삼촌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덜컥 겁이 났다.


도움을 청할만한 사람을 떠올리다가 성주 어른이 생각났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를 잡아간 집안사람들이다.


하루 종일 신경 쓰느라 밥때도 잊어버렸다. 나는 저녁도 굶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머리를 덮었다.


다음 날이 되자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올레를 나서는데, 마침 판관 나리가 바삐 걸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방향을 보아하니 초 삼촌네 방향이었다. 새벽 댓바람부터 무슨 일인가 싶어 얼른 따라붙었다.


판관 나리는 나를 보면 인상부터 쓰곤 하였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나를 보아도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느냐?”


“뭔데 그래요?”


“가만있어봐라. 금방 알게 될 게다.”


초 삼촌은 목마장에 가려 채비 중이었다. 아마도 어마사에게 내어줄 말을 골라내는 일 때문이겠지.


우리가 애써 길러낸 말을 또 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빠졌다.


마침 삼촌은 문 판관을 발견하고 채비를 멈추었다.


그런데 판관 나리는 제법 들뜬 어조로 말했다.


“잘 되었네. 대감께서 별 트집 없이 백오십 필만 내오라 하셨네.”


“동아막에는 가보셨습니까?”


“동도에서도 백오십 필을 내주기로 하였네. 총 삼백 필일세.”


“정말입니까? 잘 되었군요.”


사달이 날 줄로만 알았던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정말이냐고 묻자 문서봉 판관은 대답 대신 이마에 꿀밤을 때렸다.


평소라면 발끈하며 대들었을 테지만, 오늘은 어쩐지 기분이 좋았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말을 조금만 가져가서 다행이고, 말이 부족하다고 트집을 잡지 않아서 다행이고, 초 삼촌이 무사해서 다행이었다.


저도 모르게 초 삼촌에게 달려가 안겼다. 삼촌은 등을 토닥이며 나를 달래주었다.


이후로 초 삼촌과의 사이가 조금 편해졌다.


나는 판관 나리에게 시비를 거는 일도 멈추고 공손하게 대했다. 하지만 음식을 가져오는 성주 어른한테만은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밑에 사람 시키지, 왜 직접 와요? 하여튼 고집은!”


나는 일부러 건방지게 말했지만, 성주 어른은 아무리 시비를 걸어도 입을 꾹 다물고 대꾸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면 또 혼자 죄책감에 시달리면서 마음이 괴로워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 삼촌을 찾아가 지칠 때까지 씨름을 겨루었다.


관 삼촌은 내가 씩씩대며 찾아가면 하던 일도 멈추고 나를 상대해 주셨다. 땀을 흠뻑 빼고 나면 그런대로 기분이 괜찮아졌다.


그러고 나면 갓 돌이 지난 관 삼촌의 막내딸이 서툰 걸음으로 아장아장 걸어와 땀을 닦아주는 시늉을 하였다.


관 삼촌은 아직 딸아이의 이름을 짓지 못하였다. 원래는 우리 아버지가 지어주기로 하였는데,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태어난 아이였다.


관 삼촌은 이 아이의 이름을 짓는 순간 우리 아버지를 영영 떠나보내는 거라고 했다. 언젠가 떠나보낼 테지만 아직은, 아직은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어여쁜 조카의 이름을 머릿속으로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아버지를 떠나보낼 언젠가를 상상하곤 하였다.


대련이 끝나면 곧장 바닷가로 달려가 용천수에 몸을 담갔다. 머리통까지 푹 담가 울화를 삭였다.


진정이 되면 차가운 용천수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파란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이 내 마음과 같았다.


며칠 후 말을 징수하러 온 대감님은 말 삼백 필을 싣고 탐라를 떠났다.


나는 초 삼촌과 함께 멀어지는 고려선을 보며 정든 말을 떠나보냈다.


문득 초 삼촌이 미간을 찌푸렸다.


“수평선이 시커멓구나. 태풍이 올 모양이다. 집줄을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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