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아단부카(2)

by 상재



5.


동이 트자마자 산을 달려 올라갔다.


나는 빗질도 거르고 말에 올라타서 중산간 초지를 한참 내달렸다. 그럼에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말총을 채집할 기운도 없어서 빈손으로 털래털래 내려오는데, 마을에서 소란이 있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갔다.


혹시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서둘러 집으로 왔더니 어머니가 홀로 뒷마당 팽나무에 물을 떠 놓고 기도 중이셨다. 큰일이 난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무 일도 아니란다. 너는 걱정할 것 없다.”


“어머니! 아버지가 안 계시면 제가 이 집안의 가장이에요. 무슨 일인지 알아야죠!”


“관아에서 나온 장정들이 아버지를 잡아갔다.”


“또요? 말이 수량에 미치지 않아서죠?”


“그런 것 같구나.”


어머니는 대꾸할 기운도 없는 듯 축 늘어진 어깨로 다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나는 어머니 몰래 집을 빠져나와 관아를 향해 내달렸다.


집에서 거리가 제법 되었기에 한나절이 꼬박 걸려서, 아침에 나섰는데도 해가 벌써 기웃기웃 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사람들 눈을 피해 조심스레 관아로 다가갔다.


어찌 된 일인지 목마장 삼촌들 수십이 우르르 모여 관아를 부수고 쳐들어가는 중이었다.


나는 사달이 났음을 직감하고 삼촌들의 뒤꽁무니를 쫓아 재빨리 관아로 들어갔다.


맨 앞에 석 삼촌이 칼을 번쩍 들어 올리곤 뇌성벽력같은 호통을 내질렀다.


“이용장! 이 망할 녀석아! 우리 형님을 어디에 숨겼느냐!”


목사가 시뻘게진 얼굴로 맞받아쳤다.


“데리비스! 네놈이 감히 예가 어디라고! 아단부카는 말 관리를 제대로 못 한 죄로 추포되었다. 대역죄인이나 마찬가지이니 썩 물러가거라!”


“있지도 않은 말을 우리가 어찌 내어놓을 수 있단 말이냐!”


“흥! 왜놈들과 짜고 말을 빼돌린 것을 우리가 모를 줄 알았더냐! 감히 전하의 물건에 손을 대다니,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구나!”


왜구들과 협상하여 돌려보낸 것을 두고 이런 식으로 써먹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석 삼촌은 어이가 없었는지 실소를 터트렸다.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닥치거라! 우리도 죽기 아니면 살기다! 이왕 이리된 것, 오늘 다 같이 죽어 보자꾸나!”


분위기가 살벌해지자 군관 몇이 장졸 십수 명을 이끌고 목사님과 별감 어른 앞을 지켜 섰다.


그러자 옆에 있던 별감 어른이 자신있게 앞으로 나섰다. 그리곤 기세가 등등하게 교지를 착 펼치는 것이었다.


“나는 어마사 유경원이다. 어명이다. 얌전히 말을 내어놓고 썩 물러가거라! 어디 보자, 근래에 변방에 원의 잔당 나하추가 침범하더니, 뒤이어 여진의 쿠바투가 변방을 어지럽히고 있다. 오랑캐가 발호하는 통에 심히 걱정되어 하루도 편할 날이 없구나. 탐라에서 말 일천 필을 가져와 변방으로 이송하여 오랑캐를 물리치는 데 일조토록……..”


별감 어른의 말끝이 흐려졌다.


교지에는 이상한 점이 있었다. 나 말고도 다들 느꼈는지 장내가 일시에 조용해졌다.


석 삼촌이 분개하여 사납게 소리쳤다.


“일천 필이라? 정녕 그리 적혀 있소?”


“아, 아니다. 네 이놈! 한낱 카치 주제에 말을 함부로…….”


“닥쳐라! 직접 교지를 확인해야겠다!”


석 삼촌이 칼을 휘두르자 그 뒤로 수십 명의 목마장 삼촌들이 우르르 달려 나갔다.


군관들이 막아섰지만 관 삼촌이 큰 덩치로 밀어붙이곤 하나씩 허리춤을 잡고 던져버렸다.


수적으로도 기세에서도 삼촌들이 한참을 앞섰다.


곧 피가 튀고 사지가 날아다녔다. 끔찍한 광경이어서 눈을 돌리니 목사와 별감이 당황한 몸짓으로 달아나고 있었다.


문득 교지를 기필코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육의 현장을 피해 목사를 쫓아 달려갔다.


그때 목사가 어딘가로 손을 흔들며 다급하게 외쳤다.


“문 판관! 문서봉! 혼자 어디를 가느냐! 기다려라!”


목사의 시선을 따라가니 누가 급하게 말고삐를 붙잡고 있었다.


나는 저자를 알았다. 관아에서 목사를 도와주는 문서봉 판관이었다.


간혹 마을에 시찰을 나와 불편한 점이 있는지 물어보곤 하여서 어릴 적부터 얼굴을 알았다.


나는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판관 어른은 목사가 횡포를 부리면 중간에서 어르고 달래면서 중재를 잘했다.


나는 그런 판관 어른이 좋아서 친하게 지내었기 때문에, 왠지 부탁을 들어줄 것 같았다.


그래서 배에 힘을 주고 대뜸 소리쳤다.


“판관 나리! 교지가 필요해요!”


문 판관은 나를 힐끔 보더니 별감 어른의 손에 든 두루마기를 확인하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말고삐를 하나 더 풀어서 엉덩이를 세게 후려쳤다.


놀란 말은 흥분하여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목사와 별감은 깜짝 놀라서 몸을 피했고, 그 틈에 판관 어른은 말을 타고 관아를 벗어났다.


나는 달려오는 말의 속도를 재며 기다리다가 재빨리 고삐를 낚아채어 날듯이 올라탔다.


곧장 방향을 틀어 별감 어른을 향해 말을 달렸다. 별감 어른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다가 발랑 자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유경원 별감은 넘어지면서까지 교지를 붙들고 있었다.


나는 달리는 채로 말 등에서 옆으로 누워 그가 손에 쥔 교지를 낚아챘다.


“이, 이놈아! 교지를 내놔라!”


유경원 별감은 악다구니를 썼지만, 그 소리는 금방 묻혀버렸다. 우레와 같은 함성이 터져 나온 것이었다.


성난 삼촌들이 군관과 장졸을 모두 물리치고 몰려오며 내지른 함성이었다. 이제 이 목사와 유 별감은 독 안에 든 쥐나 마찬가지였다.


석 삼촌은 도망치는 목사의 목덜미를 단숨에 베어버렸고, 초 삼촌은 유 별감의 뒤통수에 화살을 박았다.


“문 만호를 찾으라!”


석 삼촌은 핏물이 흘러내리는 칼을 번쩍 들었다. 핏물이 삼촌의 옷소매를 적시고 겨드랑이까지 내려왔다.


잠시 후 관 삼촌이 아버지를 찾아내어 등에 업고 나왔다.


아버지는 핼쑥한 눈으로 목이 잘린 목사와 머리통에 화살이 박힌 유 별감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고는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이었다.


나는 아버지 앞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뒤늦게 나를 발견한 아버지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나는 아버지가 많이 아파서 그런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나를 서글픈 눈으로 보아서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아버지를 구해낸 기쁜 날인데, 어째서 저렇게 슬픈 눈을 하실까?


별안간 아버지의 입에서 깊은 탄식이 뿜어져 나왔다.


“이 일을 어찌할꼬? 그저 나 홀로 고초를 겪으면 되었을 것을, 이제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겠구나.”


그때는 아버지의 말이 무슨 뜻인지 미처 알지 못했다. 그저 아버지가 무사하여 크게 안도하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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