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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May 14. 2022

사람, 장소, 환대

사람과 인간의 차이를 아시나요?

  사람과 인간의 구분을 따로 해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고 이제는 구분할 수 있다. 그게 일단 가장 기쁘다.


  이 책에 따르면 인간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말했던 장미와 같다. 즉, 존재적 문제.

  '이름이란 게 무슨 소용인가? 장미꽃은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똑같이 향기로울 게 아닌가?"


  사람은, 김춘수 시인의 시 <꽃>과 같다. 인정의 문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인간이 사람이 되려면 절대적 환대를 받아야 한다.


  절대적 환대의 조건 세 가지.

  1. 신원을 확인하지 않는 환대

  2. 답례를 기대하지 않는 환대

  3. 적대적인 대상에 대한 환대​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사람 자격을 부정하지 않는다'는 표현이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분명하게 사람과 사람이 아닌 것을 구분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일까. 그런 의문을 갖게 하는 책이다.

  이번에 영화 <기생충>을 보고 난 후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계급의 후각화, 후각의 시각화. 철저하게 위, 아래로 화면을 채우는 구성부터 시작해서 누구인지 상관없이 언제든 대체 가능하기에 마치 부품처럼 느껴지는 인물들. 영화를 볼 때는 스토리 전개를 따라가느라 흥미진진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오니까 두 발로 걷던 사람이 네 발로 걷는 장면이라든지 상하의 개념을 내포한 계단을 연상시키는 마루의 테이블이라든지 아래로 내리는 폭우와 솟아오르는 변기 뚜껑의 대조라든지 미안하지 않아도 될 사람이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은 눈빛과 함께 전하는 사과라든지 그런 게 다 '사람자격'을 떠올리게 했다.​


  또 한 가지, 책을 읽으면서 새로웠던 것은 '더럽다'는 개념이다. 더글러스에 의하면, 더럽다는 것은 제자리에 있지 않다는 것. 식탁 위의 신발처럼.


  그러고 보면, 마음이 정돈되어 있지 않고 혼란스러울 때는 항상 내 마음이 나한테 있지 못해서 인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나한테 있질 않으니까 자꾸 나 이외의 것에서 희노애락을 느끼고, 그러다가 공허해지고.


  주말은 아직이다. 남은 이번 주에는 마음이 자리 잡을 수 있는 생활을 해보련다. 제자리를 찾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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