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주차 일기 : 29/05/24 ~ 04/06/24
오늘은 출근이 안 싫네 싶다가 출발 5분 전에 준비 마칠 때쯤 진짜 너무 힘들었다. 일단 로컬잡도 서버 하면 몸 상한댔다. 즉 못 앉으니까 다리 아픈 건 똑같을 거다. 손도 자주 씻을 테니 손등 갈라질 테다. 이건 뭐 그렇다 치자. 할만한데 며칠 하고 그만 두면 경력도 안 되고 다른 직장(로컬잡) 구하기 쉽지 않은 거 아닌가? 요즘 며칠은 한인잡도 안 올라오고 말이다. 동행인은 낙천적인 사람이라 그만 두더라도 금방 구해질 거 같다는데 나는 요즘 불경기 심하다는 현지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어느 정도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첫 잡이라 더 불안한 게 있는 거다. 이런저런 경력이 많으니 한인잡은 금방 구하는데 '그 중에 여기가 제일 나은 한인잡이면 어쩌지?', '다 고만고만한데 괜히 그만 뒀다가 더 악조건인 데로 가는 거 아니야?' 하는 마음이 있다. 근데 이거 첫 회사 그만 못 둘 때 드는 생각인 거 안다.
나는 이거보다 나은 선택지가 분명히 있는 걸 알고 있으니 일해본 거에 의의를 두고 일단 그만 두고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새로운 잡 서치에 집중해서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는 게 행복을 위해 더 옳은 선택이라고 본다.
퇴근 하고 Keswick Park(캐직 공원) 갔다가 치폴레 투고해왔다. 여기서 일하는 인도 애들 진짜 예의 없다. 땡큐베리마치 해도 대답도 없고 음식을 팍팍 던진다.
집에서는 영어 수업 듣고 한국에 있는 친구랑 영상통화 하고 동행인이 한인잡 사무직 합격해서 면접관인 척 준비를 같이 해주었다. 잘 되면 좋겠다.
오늘의 좋았던 점! 퇴근하러 전철 기다리는 중이었다. 앞에 공간이 많았는데 백인 중년 여자분이 앞으로 살짝 끼어들면서 내 쪽을 살짝 살피길래 먼저 가시라고 눈으로 웃었더니 그분도 고마워하셨다. 한국이었다면 99% 뒷사람이고 뭐고 '네가 앞으로 안 왔고 여기에 공간이 있으니 난 나만의 길을 간다.' 같은 새치기 엔딩이었을 테니 이런 여유가 새삼스레 감동적이다.
결국은 지금 레스토랑에서 조금 더 일해보기로 했다. 일단 사람 만나는 게 재밌고, 손님들 대할 때 영어 두려움이 없는 내가 좋고, 매일 '빠르긴 진짜 빠르다.', '10년 전쯤에 일했는데 이렇게 눈치 좋게 일을 한단 말이에요?', '어쩜 이렇게 생글생글 웃어. 진심을 다해서.'라는 말들 들으니 다닐만하다. 근데 오늘에서야 직접 물어보고 돈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트레이닝 기간에는 팁을 받을 수 없다. 이후에 Regular Staff가 되면 팁을 수시가 아닌 엑셀로 정산해서 2주에 한 번 받는다. 주변에 알아보니 한인잡은 트레이닝 시 팁 못 받는 게 추세인 것 같다. 하하, 그렇구만. Vacation Fee는 줄런지 모르겠다. 친구 말로는 2주에 한 번 급여 나올 때마다 세금 등의 정보가 확실히 기재된다고 하니까 그때 봐야겠다.
나는 퇴근하고 동행인은 면접 본 후 메트로타운 센트럴파크로 피크닉 나갔다. 너무 추워서 30분 정도밖에 못 있었는데, 우리가 최장시간 매트 깔고 있던 사람들이다.
아무튼 피크닉 가는 중에 희한한 아저씨를 만났다. 싱가폴/말레이시아쪽 분이었는데 내가 동행인한테 "Waterfront 가려면 여기서 타는 거 맞나?"하는 걸 눈치로 알아들으시고는 오후 4시 이후는 퇴근시간대라서 그쪽 열차가 10분에서 15분에 한 번씩 온다고 영어로 대답해주었다.
그렇게 30분 가량 큰 소리로 수다를 떠셨다. 중간에 내가 말하려 해도 끊고 본인이 계속 말했다. 목소리가 커서 귀에서 피나는 줄 알았고 주변에서 우릴 은근 쳐다봤다. 전도하는 건지, 아니면 특이 취향의 아시안피버인지 고민했는데 결론적으로 그냥 말 많고 친화력이 좋은 아저씨였다.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과도 짧게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나중에 메트로타운 역에서 내리면서 우리보고 "너희 이 다음 역에서 내려야 해! 알았지?"하고 끝까지 목적지를 일러주고 가셨다.
빅웨이 핫팟으로 마라탕 먹으러 갔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동북아 사람들한테 친절하고 호탕해서 좋다. 중국계지만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손님들한테 기본적으로 찬물을 제공하는 게 신기했고, (내가 일하는 스시 레스토랑에 와서 'tea'가 아닌 'water'를 달라고 하던 중국인 모녀. 통상적으로 water로 불리는 찬물 갖다줬더니 이거 말고 따뜻한 거 가져오래서 통상적으로 따뜻한 차로 불리는 tea를 주니까 만족해 했다.) 그린 어니언, 고수, 참깨 토핑 3가지와 후식 콘 아이스크림을 무료로 제공해준다.
로히드몰 푸드코트 NIKKO로 밥 먹으러 갔다. 돈코츠라멘(치킨)이랑 시그니처보울 시켰다. 라멘은 괜찮았는데 시그니처보울이 너무나도 짜서 먹기 힘들었다. 그 다음엔 설빙 가서 딸기빙수 먹었다. 딸기는 역시 한국 게 제일이다. 그래도 양이 무척 많아서 둘이서 배부르게 먹었다.
본식을 먹은 뒤 후식 먹으러 이동하는데 팔레스타인 지지 집회가 작게 열린 걸 보았다. 깜짝 놀란 게 지나가던 승용차들이 경적을 그들의 집회 구호에 맞춰서 빵빵거려주었다. 마음이 따뜻했다. 인류애란 이런 거구나.
자기 전에 TD뱅크 앱을 확인해보니까 50불이 들어와있었다. 계좌 개설할 때 한인텔러분이 한국인들한테는 다 해준다며 해주신 프로모션이 드디어 들어왔나보다. 출국 직전의 서울은 한국인의 정이 많이 사라져가서 아쉽고 슬펐는데, 여기 나와서 교포분들이나 한인분들에게는 한국인의 정을 때때로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물론 해외인 걸 이용해 사람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악덕업주도 많다니 내가 그들과 만나지 않기를 바라며, 오늘도 잘 보냈다.
차이나타운에 있는 퍼피요가에 갔다. 1시간 중 45분 동안 요가하고 나머지 15분은 개랑 놀았다. 이번주의 개들은 6주짜리 아기 비글이었다. 요가 스튜디오 안에 화장실과 샤워실이 있었고 화장실 문이 아래까지 꽉 막혀있어서 좋았다. 위생이 잘 관리되고 있었고 개들한테는 개냄새가 났다.
나와서는 포트무디로 갔다. Vera's Burger Shack 갔다. 여기 햄버거 패티 부드럽고 치즈도 맛있고 소스도 좋다. 양도 괜찮다. 포트무디는 코퀴틀람 마운틴이 바로 옆에 있는 지역인데, 유학생 친구가 여기서 캠핑하면서 밤에 자가용 앞을 지나가는 거대한 뿔사슴을 봤다고 했다. 직접 가보니 곰 표지판이 사방에 있었다. 엄청나게 경고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기억도 안 날 정도로 오랜만에 이날 왼쪽 눈에 다래끼가 났다. 동행인이 챙겨온 한국 다래끼약과 안약을 약 이틀 동안 부지런히 먹고 넣었더니 일주일쯤 뒤에 흔적도 없이 완치 됐다.
물맛이 변했다. 동행인이 브리타 정수기 필터를 새로 사서 정석적인 방법으로 교체 해주었다. 오늘은 팀홀튼에 첫 방문했고, 캐나다 와서 처음으로 투굿투고 어플을 이용해보았다. 똑같은 초코머핀만 6개 받았다. 나는 그저 그랬지만 동행인이 좋아해서 다행이었다.
캐나다 현업 개발자분이 감사하게도 본인의 레쥬메와 커버레터를 공유해주셨다. 참고해서 개발자 레쥬메를 뜯어고쳤다. 그리고 서버잡 커버레터를 작성했다.
오늘 할 거 많은데 시간 없다고 생각해서 조급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고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주지시켰다. 어차피 살아가면서 남는 게 시간이니 차근차근 꾸준히만 하면 된다. 그러기도 너무 힘들면 쉬어가면 되는 거다.
서버 영어 공부, 업무 순서와 디테일 체크, 소스 외우기, 포스기 메뉴 위치 눈에 익히기를 완료하고 출근했다. 출근했더니 이번 주 내내 있는 오전/오후 Trainee 스케쥴은 전부 내 거라는 말을 들었다. 쉬프트가 많아서 좋았다. 결국은 일을 그만 두게 됐지만 말이다.
오늘도 더 일해주면 안 되냐고 계속 붙잡혔다. 객관적으로 인내심이 강하고 일머리가 좋은 편이니 그쪽에서도 그럴 수밖에 없겠지 싶다. 하지만 나는 요즘 미래보다 현재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 레스토랑에서의 서버잡은 캐나다에 온 목표와 온전히 부합하는 일도 아니고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도 아니다. 아까운 것들은 물론 있지만 그렇다고 힘들게 버틸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이곳에 적지는 않겠으나 아닌 건 아닌 거다. 별 인간군상을 다 만나본 편이라 새로 만난 사람은 스트레스 난이도로 치면 중상 정도밖에 안 됐지만, 그 사람도 그렇다 치고 매장 사람들이 서로 사이가 너무 안 좋았으니 이런 데서 계속 일하면 높은 확률로 병난다.
그만 두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퇴근하고 로얄오크 근처에 가서 동행인을 기다리며 엄마랑 영상통화를 했다. 집에 와서 저녁 먹고 인디드로 서버잡 지원을 엄청나게 했다. 오늘도 꽉 채워서 살았다. 집에서 문득 비 오는 밤풍경을 내려다보는데 정말 예뻤다.
어제 스시 레스토랑 서버를 그만 두었고 오늘 차이니즈 푸드 레스토랑 측으로 면접을 보러 갔다.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고 아시안 코워커들이었다. 고민되는 지점이 조금 있었지만 면접에서 바로 합격을 했고 이번주 중에 트레이닝을 받고 첫 출근을 하게 됐다. 뿌듯하다!
이후에는 조이스콜링우드의 어느 공원에서 강아지들과 주인들이 친목 모임을 가지는 걸 보았다. 날씨가 환상적이고 공기가 깨끗해서 기분이 무척 좋았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쉴 수 있어서 행복했다. 베트남 음식점 Pho Tan에 가서 밥을 먹었는데 지금까지 중에 역대급으로 깔끔하고 맛있는 식당이었다. 적당히 행복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