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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Mar 18. 2022

부부의 라이브 커머스

그립 - 아침엔대구탕 / 네이버 - 낙지한마리대구탕

오늘 아침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른 아침에 알림 벨이 아니라,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누구지?'


난 얼른 어제 내가 차를 어디 주차했는지를 생각해봤다. 이렇게 이른 아침에 전화가 오는 경우는 차를 좀 빼 달라고 오는 것 말고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에는 그냥 번호가 떴다. 내가 저장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모르는 사람. 차를 빼 달라고 전화를 한 것이 맞다고 확신했다.


그런데, 어제 내가 주차를 한 곳은 누군가의 주차를 방해하거나, 이중으로 주차를 한 것이 아니었기에 조금 의아한 생각도 들었다. 짧은 시간 온갖 상황들이 빠르게 오고 갔다.


"여보세요?"


"어. 자나?"


'엇? 누구지?'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물어볼 일은 없었기에, 난 누군지 다시 한번 스마트폰을 살펴봤다. 하지만, 번호만 떠 있을 뿐 저장된 누군가의 이름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어. 괜찮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아는 척 대답했다.


"밥 무러 가도 되나?"


그제야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시간이 그런 뜬금없는 소리를 저지를 친구는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와? 거서 먹지. 김해까지 올라고?"


친구는 부산에 살고 있었다.


"아침에 재첩국 무러 갈라고 했드만, 아무도 안간다 카네."


친구는 이미 여기저기 아침부터 전화를 분주히 돌린 모양이었다.


"아침 묵으러 혼자 가면 되지. 뭐 대단한 일 한다고 같이 묵을 사람 찾고 있노?"


"그래도. 혼자 가긴 좀 글타. 니 방송할 때 옆에서 묵어도 되나?"


아침 먹는 방송하는데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이 조금 이상할 것 같긴 했지만, 안될 건 없었다.


"온나. 와서 묵고 가라. 니도 같이 출연하자."


난 은근슬쩍 친구를 넣으려고 했다.


"안된다. 얼굴 나오믄 부끄럽다. 마, 먹는 것만 하면 안 되나?"


부끄러움을 느낄 친구는 전혀 아니었다. 그냥 얼굴이 나오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그라든가 말든가. 암튼, 먹을라 카믄 온나."


"언제 가게 가는데?"


"7시 30분까지 오면 된다."


"알았다. 근데 잠 깨운 건 아니제?"


아침에 운동삼아 버스를 20분 정도 타고 가서, 가게까지 또 20분 정도 오르막 길을 걸을 때는 5시 30분에 일어난다. 그런데, 어제부터 비가 계속 내려서 운동을 쉬고 아침에 한 시간을 더 잤다. 


"맞는데?"


"..... 방송 안 하나?"


"아직 한 시간 넘게 남았다."


"근데, 니 방송 볼라믄 우째야 되노?"


친구들은 내 방송에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방송을 하는 줄 알면서 방송을 직접 본 친구는 반년이 넘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절친이었던 이 녀석도 마찬가지였다.


"와? 재미도 없을 낀데."


"그냥. 니가 먼 짓을 하는지 함 볼라꼬."


"그립이라고, 니 어플 하나 깔아야 할 건데, 귀찮을 낀데?"


"일단 보내나 봐라."


"오냐. 나중에 내가 링크 보내주꾸마."


"알따."


친구는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난 반신반의하며 친구에게 내가 라이브를 진행하는 그립 방송 링크를 보내줬다.


'귀찮은 거 싫어하는 놈이 설마 어플까지 깔아서 보겠나?'


SNS 계정은 있지만,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 친구였다. 부산에서 선박 관련 사업을 하고 있는데, 스스로가 아날로그적인 일을 하고 있어서, 삶의 방식도 아날로그 하다고 말하는 친구였다.


또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친구의 이름이(정확히는 내가 정한 닉네임이) 스마트 폰에 떴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번에 새로 바꾼 스마트폰에 자주 이런 일이 발생했다. 저장된 이름이 나타나지 않고, 번호만 뜨는 이상한 일이.


어쨌든, 왜 또 전화를 했지? 하는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았다.


"어."


"야! 방송을 와이래 시끄럽게 하노? 깜짝 놀랬다 아이가!"


"그말 할라고 전화했나?"


"조용~하고, 어두 컴컴~한 방에서 딱 캤는데, 와~~ 목소리 장난 아이네!"


"마. 아침인데 텐션이 있어야지! 활력이 있어야 될꺼 아이가. 근데 보긴 봤나? 이래 빨리 전화를 하노?"


"안 봤지. 시끄러버서 끄뿠지."


"......잘했다. 마 보지 마라..."


친구와 시답잖은 농담 몇 마디를 더 주고받고, 난 방송을 하러 가게로 갔다. 방송을 하는 동안 친구는 가게로 오지도 않았고, 내 방송에 구경을 하러 라이브 방송에 들어 오지도 않았다. 당연히 친구 스타일을 알고 있어서 기대는 안 했지만, 이 놈이 방송에 놀러 오면 어떤 아이디로 들어올까 궁금하기도 했다.


아침에 밥 먹는 방송이 끝나고,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오냐."


"무슨 들어가니까 감사합니다만 하고 방송 접어뿌노?"


"언제 들어왔는데?"


"끝나기 3분전."


".....니는 도대체 내 방에 뭐하러 들어왔지?"


"아 유치원 보내고, 들어가서 볼라카니까 끝났뿠네."


"하.......오냐.... 어쨌든 와주서 고맙네...."


"근데, 니가 그래 말이 많았나?"


"와? 많드나?"


"어. 니 방송 보면서 두 가지 놀랬다."


"뭐?"


"매일 아침마다 대구탕 먹는 거. 그라고 말 그래 많이 하는 거."


"그라믄, 내 방송이고, 내 혼자 있는데, 내가 말 안하믄 방송이 되나?"


"나는 니가 아침에 먹방 한다고 하길래, 그냥 화면 틀어놓고 밥만 먹는 줄 알았다. 그래 씨부리 가믄서 밥을 묵는지는 몰랐지. 밥이 코로 드가는지, 입으로 드가는지 모르겠든데?"


"내가 밥만 묵고 암말도 안 하고 있으면, 내 방에 누가 들어오노? 재미도 하나~또 없는데. 이야기도 하고, 소통도 하고 그래하는 거지."


친구는 내 방송을 보고, 조금은 다른 나의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리고, 뭔가 느낀 게 있다고 했다. 


친구는 러시아 쪽 선박 수리를 많이 한다. 지금 중국 선박도 들어와 있지만, 러시아 선박이 주를 이룬다. 수리가 다 끝난 러시아 배가 있는데, 돌려보내면 몇 백만 달러, 한국 돈으로 수십억 원의 대금을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고 한다. 그렇다고 배를 붙들어 놓고 있자니, 하루에 수백만 원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곁에서 보는 나도 머리가 지끈 거릴 정도로 골치가 아픈데, 친구는 어떨까......


친구는 내가 하는 방송을 보면서 오랜만에 활력을 느꼈다고 했다. 그것이 나 때문이라니 조금은 뿌듯하기도 하다. 누군가에게 어떤 식으로든 긍정의 의미가 된다는 것은 무척 보람이 있는 일이다. 


모쪼록 친구의 일이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대금 잘 수금했다고 큰소리로 떠들면서 술 한 잔 샀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맛있는 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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