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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Aug 29. 2024

나무 도마

탁. 탁. 탁. 송. 송. 송. 기분 좋은 나무 도마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못 간다는 거야?!!”     


지연 씨는 남편에게 소리를 질렀다.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그럼!! 이번에는 어디가 가능한데?! 어?!!”     


“...”     


지연 씨의 남편 지훈 씨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게 이렇게 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한 달 살기니 뭐니 시작을 안 했어야지!! 이제 사람들한테 뭐라 그럴까? 어? 돈이 없어서 못 간다고 할까?! 매번 가던걸?”    

 

“휴우.... 일단 회사 다녀와서 이야기하자.”     


지훈 씨는 아이들 가방에 물통을 넣으며 말했다. 


주방의 식탁엔 아무것도 차려져 있지 않았다. 


지훈 씨와 지연 씨의 두 딸은 학교에 갈 준비를 한 채, 한쪽에서 엄마와 아빠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었다.     

“얘들아. 가자.”      


지훈 씨가 아이들을 데리고 현관으로 향했다.     


지연 씨는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밤이 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는 시간에 오랜만에 깨어 있었는데, 정작 남편과 아이들이 현관문 밖으로 나가는 모습은 보지도 않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지연 씨는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물이 또르륵 흘렀다. 


이렇게 어설프게 누리고 사는 게 너무 힘들게 느껴졌다. 


그냥 죽어버릴까?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지연 씨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으로 한 달 살기를 다녀오고 나서 남편은 시어머니가 일을 하시면서 보태주던 생활비를 더 이상 받을 수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기 때문에 오히려 돈이 더 들어간다며, 외국으로 나가던 것을 제주도에 한 달, 강원도에 한 달 이렇게 국내에서 한 달 살기로 대체했다. 


쪽팔렸다. 


처음부터 국내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면 이렇게까지 부끄럽진 않았을 텐데, 갑자기 이렇게 해외에서 국내로 한 달 살기를 바꾸니 주위의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코로나가 지금 유행하면 코로나 때문에 해외에 나가기가 꺼림칙하다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가 다 끝난 마당에, 이젠 사람들이 오히려 외국으로 여행도 많이 떠나는 이 시기에 반대로 해외가 아니라 국내라니!!     


벌써 5월이다. 


두 달 정도 있으면 아이들이 방학을 할 것이고, 7월 말에는 한 달 살기를 하러 떠나야 하는데,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시끄럽고!! 옷이나 갈아입고 나와 이년아!!”     


지연 씨는 친구 선희로부터 오는 전화를 계속 무시했다. 


그러자 집으로 쳐들어온 선희 씨가 지연 씨의 퉁퉁 부어있는 눈을 보면서 한 말이다. 


지연 씨는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선희 씨에게 끌려 나오다시피 집에서 나왔다.     


선희 씨는 지연 씨를 차에 태웠다.     

 

“나처럼 애 낳지를 말지 그랬냐?!”     


선희 씨가 차를 몰아 미끄러지듯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가며 말했다.     


“..... 그러게....”     


“뭐?! 야! 너 진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이쁜 니 새끼들..... 아이고~ 나쁜 년.... 쯧쯔....”  

   

지연 씨는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할 말이 너무 많아서 이야기가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선희 씨는 한참 동안 친구 말을 들어주다가 불쑥 내뱉었다.     


“야! 지연아. 참... 지금 너한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런데.....”     


“뭐? 말해 괜찮아.”     


“.... 그래. 그럼 말할게. 진짜 찐친이니까. 솔직히..... 너 지금 졸라 웃겨!”

     

“뭐?”     


“그거 뭐라고. 한 달 살기 하는 거. 그게 뭐 그리 중요한데? 그렇게 중요해? 그럼 너 지금 그렇게 훌쩍이면서도 들고 다니는 명품백 팔아. 그럼 갈 수 있잖아? 아님, 너 지금 타고 다니는 외제차 국산차로 바꿔. 그럼 할 수 있잖아. 그것도 아님, 니가 일을 하던가, 돈을 벌러 가. 집에 가만히 앉아서 걱정만 하지 말고. 그럼 되잖아.”

     

“...”     


지연 씨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봐봐. 넌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것들 중에 하나도 포기하지 못하고, 남편한테 요구만 하고 있잖아! 명품백 들고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못난 사람들이냐? 외제차 타고 다니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 별볼 일 없는 사람들이야? 일하러 다니는 여자들은 다 남편이 못나서 그런 거야? 한 달 살기 하러 못 가는 사람들은. 네 머릿속에 있는 신분의 기준에서 모두 하층민들이냐? 도대체 왜 억지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혀가면서 그런 것들을 하려고 해? 그렇게 하면 주위 사람들이 널 대단하다고 생각할까? 천만에! 오히려 너 없는 곳에서 엄청 깔 걸?”

     

“... 그게 두려운 거야... 난..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이번에 한 달 살기 하러 가지 못하면 사람들이 날 비웃진 않을까...... 처음부터 안 했어야 했는데.... 괜히 남편이 한 달 살기 보낸다고 해가지고......”    

 

“권호 씨도 이렇게 될 줄 알았겠어? 그리고 내가 알기론 그때도 네가 먼저 한 달 살기하고 싶다고 했잖아. 그래서 권호 씨가 보내준 거고. 그걸 이제 와서 권호 씨 탓을 하면 너 진짜 썅년이야.”     


“...”     


“물론, 네 말처럼 늘 그렇게 아이들 방학 때마다 한 달 살기 하러 가다가 이번에 안 가면 뒤에서 수군덕거리는 사람들이 있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말 때문에 너랑 남편이 매일 싸워야 할 일이니? 너랑 남편이 다투면 사람들이 뒤에서 까는 걸 멈추기라도 한데? 어차피 남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네가 뭘 하든 뒷말하게 되어 있어. 네가 들고 있는 명품. 그것도 누구는 짝퉁이라고 말할 거고, 외제차에 한 달 생활비를 다 갖다 붓는 생각 없는 사람 취급할 거고, 남편 월급은 빤한데 허영심 가득한 여자라고 온갖 말을 다하고 다니겠지. 그런데, 도대체 그런 인간들의 말이 왜 중요하냐고! 너랑 남편이랑 아이들이랑!! 남들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너희 가족이 즐거우면, 그거면 된 거 아니야?”       


지연 씨는 친구 선희의 말이 다 맞는 말인 것 같긴 한데, 어딘지 모르게 좀 갑갑했다. 


그렇게 쉽게 생각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친구 선희는 늘 그랬다. 말투부터가. 


하고 싶은 대로 말을 던지고, 자유분방하게 행동했다. 


결혼을 하면서도 선희는 남편과 아기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본인들의 인생을 즐기며 살자고. 


지연 씨와 친구들은 에이 설마 하고 생각했는데, 선희는 결혼한 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었다.


양가 부모님들은 손주를 볼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했지만, 선희는 그것이 부모님들께 실망을 드리는 일인지는 몰라도, 피해를 드리는 일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경제적으로는 더 이득을 드린 거라며.     


선희의 차가 대구탕 매장 앞에 섰다.    

 

“뭐야? 나 지금 밥생각 없어.”


지연 씨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은 밥 먹으러 온 거 아니야.”     


“그럼?”     


“2층 공방.”     


“2층.... 공방? 여기 공방이 있었어?”     


“그래. 너 병원은 계속 가고 있어?”     


우울증을 앓고 있는 지연 씨는 정신과를 다녔는데, 요즘엔 거기도 잘 가지 않았다.    

 

“.... 뭐, 가끔....”   

  

“병원을 열심히 다니던가, 어디에 일을 하러 가던가. 뭐,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일하러 가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긴 한 것 같은데, 넌 지금 이도저도 아닌 것 같아서 너랑 취미생활이라도 뭐 하나 같이 해볼까 하다가 찾았어.”    

 

“여기 이런 곳이 있었어?”     


“나도 지난번에 여기서 밥 먹다가 알았어. 거기다 1층 대구탕 매장에서 밥을 한 번이라도 먹었던 사람은 공방수업이 공짜래.”     


“뭐? 진짜?!”     


“그래. 얼른 올라가 보자. 사장님이 1층 매장 영업을 10시 30분부터 하신다고, 10시에는 내려가 봐야 한다고 하셨어.”     


 지연 씨는 정말 내키지 않았지만, 집까지 자신을 태우러 와서 여기까지 데려온 친구의 마음이 고마워서 2층으로 올라갔다. 

    

 2층까지 올라가자 울창한 나무와 높은 산이 보이는 경치 그리고 넓은 테라스에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았다.


 테라스 한쪽에 공방 입구가 보였고, 공방의 입구 옆에는 나무 현판이 걸려 있었다.  

   

- 시간을 달리는 공방      


“시간을 달리는 공방? 공방 이름도 참 특이하네.”     


위이이이이잉!     


지연 씨와 선희 씨가 공방에 들어서자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저기 공방의 한쪽에서 1층 대구탕 가게의 남자 사장이 어떤 기계에 나무를 올려놓고 작업을 하고 있었다. 

    

선희 씨가 작업을 하고 있는 남자 사장의 곁으로 다가가서 기계 소리가 잦아들기를 기다렸다가, 외쳤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죄송합니다. 오시는 소리를 못 들었네요.”   

  

“괜찮아요. 뭐, 작업하시나 봐요?”     


“네. 오늘 두 분 오신다고 하셔서 사용할 나무 미리 손질하고 있었어요. 이제 다 했습니다. 가시죠.”

     

공방의 한쪽에 놓인 의자에 지연 씨와 선희 씨가 앉았다. 


며칠 전 홍사장이 앉은 바로 그 자리였다.     


남자 사장은 지연 씨를 유심히 지켜보는 것 같더니 혼잣말을 했다.     


“급하신 분이네....”   

  

“네?”     


“아, 아닙니다. 제가 10시에는 내려가 봐야 하니까, 시간이 충분치가 않네요. 원래는 간단히 이론 설명도 드리고 해야 하는데, 일단 지금은 제가 드리는 나무에 연필로 밑그림을 먼저 그려주세요.”    

 

남자 사장은 다듬어진 네모난 나무 두 장을 지연 씨와 선희 씨에게 각각 하나씩 나눠줬다. 연필도 함께.  

   

“도마를 만들 건데요. 만들고 싶은 모양대로 그림을 그려주시면 됩니다. 혹시 모양이 잘 떠오르지 않으시면 스마트폰으로 검색해서 마음에 드는 도마 모양을 찾으시면 되구요, 잘못 그린 그림은 여기 지우개로 지우시면 됩니다.”   

  

남자 사장의 말에 지연 씨와 선희 씨가 각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남자 사장은 집진기로 나무 먼지를 치우며 공방을 정리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지연 씨와 선희 씨가 각자 연필로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금세 10시가 되어서 남자 사장이 내려갈 때가 되었다.    

 

“전 이제 내려가 봐야 할 것 같은데, 두 분은 그리는 거 마저 그리세요. 혹시 시간이 되시면 나중에 식당 브레이크타임에 오시면 계속하실 수가 있구요, 바쁘시면 다음에 아침 10시 전에 여기에 오시면 됩니다.”  

   

“사장님은 여기 몇 시에 오세요?”     


“전 보통 6시 30분에서 7시 사이에 와요. 1층 식당 준비해야 해서요. 어.... 이건 선이 조금 잘못 그려진 것 같으니, 제가 지워드릴게요.”   

  

남자 사장이 지연 씨가 삐뚤빼뚤 선을 그린 것을 지우개로 지웠다. 


그리고는 연필을 쥐고 있는 지연 씨의 손을 잡고 그림을 함께 그리며 말했다.  

   

“이건 요렇게 그리면 더 좋을 것 같네요. 도마의 손잡이가 너무 두꺼워도 잡기가 힘들고, 너무 얇으면 쉽게 부러지거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지연 씨는 남자 사장이 잡은 손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꼈다. 


차가운 자신의 손에 와닿는 따스한 온기. 낯선 남자의 손에서 긴장되고, 흥분이 되는 그런 자극적인 기분이 아니라, 차분해지고, 나른해지는 그런 안정적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럼 마저 그리시고, 얼마든지 편히 계시다가 가세요.” 

    

남자 사장은 인사를 하고 1층으로 내려갔다.   

   

“뭐야? 네 것만 봐주고 왜 내건 안 봐주는데?” 

    

선희 씨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연 씨가 피식 웃었다.     


“넌 잘 그려서 고칠 게 없나 보지.”    

 

“아, 정말 그런가?”  

   

지연 씨의 말에 선희 씨는 금세 기분이 좋아져서 헤헤 웃었다.  

   

사각사각.

     

기계음이 사라진 조용한 공방에는 사각이는 연필 소리만 가득 찼다. 


지연 씨와 선희 씨는 나무에 그림 그리는 일에 집중했다.

     

지연 씨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렸다. 


간밤에 한숨도 자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까 자신의 손을 잡은 남자 사장의 손 따뜻한 온기가 잠을 부추기는 것인지 눈꺼풀이 도저히 견디지 못할 것처럼 무거워졌다. 

    

그림을 그리다가 선희 씨가 곁눈질로 지연 씨를 쳐다봤다. 


눈꺼풀이 반쯤 내려와 곧 곯아떨어질 기세였다. 잘 되었다. 


예민한 친구가 잠을 못 이루더니, 이곳에서 잠을 좀 자도록 내버려 둬야겠다. 

    

 지연 씨는 고개를 몇 번 끄덕, 끄덕하며 졸더니, 이내 머리를 탁자에 파묻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선희 씨는 잠든 지연 씨를 가만히 쳐다봤다. 


안타까웠다. 


밝고 환하던 친구가 지금은 이렇게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린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친구가 잠에서 깨어나면 지금 느끼고 있는 불안, 초조, 고통스런 마음이 모두 사라지기를. 


마치 마법처럼 사라지기를.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알지만, 세상엔 그보다 더 말도 안 되는 일들도 많이 일어나니까.

     

선희 씨는 잠시 친구를 위해 기도를 하고, 다시 나무판에 그림을 그리는 일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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