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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건우 Sep 03. 2024

정 부장은 꼰대

나 때는 말이야...

홍사장은 2층 공방의 창에서 정 부장이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회사를 홀라당 다 태울뻔한 그 사건을 마주하고 있었다. 


당시엔 너무 화가 났는데, 지금 이렇게 모든 일들이 다 지나고 나서 관망하며 보고 있으니, 젊은 시절의 자신도, 아내도, 정 부장도 참 많이 어렸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아련한 그리움으로 다가왔다.    

 

“이 새끼!! 진짜 가만 안 둬!!”     


공방의 창 속. 젊은 시절의 홍사장이 소리를 질렀다.     


“여보. 참아요. 좀.”     


“뭐? 참아? 지금 여기까지도 얼마나 힘들게 이룬 건데!! 이걸 하루아침에 다 날려버릴 뻔했는데!! 참으라고?!!”

     

홍사장의 아내가 홍사장의 손을 꼭 잡았다.     


“어제를 뒤돌아보는 건 그만하자. 대신 내일을 발전시켜 나가자. 누구의 말이죠?”     

 

“.....”     


길길이 날뛰던 홍사장이 아내의 말 한마디에 조용해졌다. 


아내가 한 말은 홍사장이 가장 존경하는 스티브 잡스의 명언이었다.     


“불은 이미 났어요. 그리고 다행스럽게 큰 피해 없이 꺼졌고요. 당신은 늘 스티브잡스는 위대한 CEO라며 추켜세우고, 우리나라의 정주영 회장은 대단하긴 하지만 성격이 더럽다고 싫어하셨잖아요? 그런 성격 더러운 정주영 회장도 공장이 불에 다 타버렸을 땐 직원들을 나무라지 않고 막걸리를 받아와서 직원들을 위로했다고 해요. 당신은... 당신이 그렇게 성격 더럽다고 싫어하는 정주영 회장보다도 더 더러운 성격이 되어도 되겠어요?”

     

“... 거 참.. 비교도 희한하게 하는 구만.....”     


홍사장이 조금은 누그러진 표정으로 말하자, 아내는 홍사장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일렀다. 


홍사장은 영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지만, 아내가 다그치며 인상을 쓰자,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불을 낸 정 부장. 그러니까 당시엔 정대운 사원이 사무실로 들어오며 울먹였다.   

  

“...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깜박 졸아서.... 너무 죄송합니다...”     


그에게 홍사장이 다가갔다.


“괜찮아. 다친 데 없으면 됐지 뭐.”     


홍사장은 속에서 열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아내의 말을 따라 꾹 참으며 말했다.   

  

“...”     


“피곤할 텐데, 얼른 집에 가서 쉬어.”     


“아닙니다. 아직 할 일이...” 

    

“아니야. 그냥 집사람하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자네는 들어가. 시간도 많이 늦었어.”   

  

정대운 사원도 많이 지치고, 피곤했는지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진 않았다.   

  

“....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아. 얼른 들어가.”     


“..... 그럼...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정대운 사원이 돌아서서 사무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는데, 홍사장이 불렀다.   

  

“이봐.”     


“예?”     


정대운 사원이 돌아서자 홍사장이 손에 봉투를 쥐어 줬다.     


“아니, 사장님. 이게 무슨....”    


“얼마 아니야. 늦은 시간까지 일한다고 고생했는데, 집에 들어가면서 먹을 거라도 좀 사서 가. 자네 집사람도 혼자 애 본다고 고생하는데.”      


“예에? 아니, 사장님....”     


 정대운 사원은 공장에 불을 저질러 놓고, 이제 어떻게 얼굴을 들고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몇 달 치 월급을 못 받거나,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을까 온갖 생각이 다 들었는데, 뜻밖의 대우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 아니 저기 사장님... 제가 어떻게...”     


“괜찮아. 자, 자. 얼른 가. 얼른.”     


“아니, 사장님. 그게...”   

  

“괜찮다니까. 멀리 안 나가. 얼른 가. 잘 가게.”     


홍사장은 어쩔 줄 몰라하는 정대운 사원의 등을 떠밀며 보내고는 사무실 문을 탁 닫았다. 


순간 정대운 사원은 어? 혹시.... 지금 회사에서 잘린 건가? 이래놓고, 집에 도착하면 내일 출근하지 말라는 통보가.....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때, 사무실 문이 다시 열리며 홍사장이 말했다.     


“아, 그리고 미안한데.....”     


정대운 사원은 홍사장의 미안한데 라는 말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려오며 심장이 쿵쾅거렸다.     


‘아, 안돼!’     


“내일 좀 일찍 출근해 주게. 창고 정리를 싹 다시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말이야.”     


“예? 아.. 출근.. 네.... 넵!! 아, 당연히 일찍 와야죠! 감사합니다! 사장님! 감사합니다!!”     


“일찍 오라는데 무슨 감사는..... 그래. 그럼 조심히 가게.”     


다시 사무실 문이 닫혔다. 


2층 공방의 창으로 그 모습을 보는 홍사장은 헛웃음을 흘렸다. 


아무리 아내가 시켜서 하는 행동이라고는 하지만, 정말 자신이 하는 연기가 완전 발연기였기 때문이었다. 


어색한 표정 하며, 부자연스러운 행동. 떨떠름한 얼굴로 하는 말은 마치 로봇 같았다. 


앞으론 연기 못하는 배우들 욕은 안 해야겠군.    

 

- 째깍째깍     


 창 위의 시계가 갑자기 빠르게 돌아가더니, 정대운 사원의 집으로 장면이 바뀌었다. 


새벽. 집으로 정대운 사원이 조심스레 들어가는데,  

   

“왔어?”     


 정대운 사원의 아내가 방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의 아내도 정대운 사원처럼 조심조심 방에서 걸어 나왔다.

     

“은희는 자?”     


“응.”     


얼마 전에 태어난 딸 은희가 잠이 들어 있어 혹시나 깰까 봐 아내도 조심조심 거실로 나오는 것이었다. 


정대운 사원이 봉투를 들어 보였다. 


 


“악! 치킨?! 꺄악!!”     


아내는 숨죽인 환호성을 질렀다. 


아내의 환호에 정대운 사원도 흐뭇하게 웃었다. 


둘은 아기가 깨지 않도록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주방과 거실을 오가며 거실 한쪽에 상을 차렸다.   

  

정대운 사원은 맥주를 아내는 사이다를 마시며 치킨을 먹었다.    

 

“고마워 여보. 진짜 치킨 먹고 싶었는데. 자기 늦게까지 일하고 어쩌면 오늘 집에 못 들어올 수도 있다고 해서 말 안 했었거든? 근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사 왔네?”     


“사장님이 사 주셨어.”     


“사장님이?”     


 정대운 사원은 공장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사장님.... 정말 좋으신 분이다.”     


아내는 불이 났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가, 그런 상황에서 홍사장이 남편을 배려해 준 데 대해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말했다.    

 

“정말.... 사장님도, 사모님도. 내가 회사를 잘 선택한 것 같아. 여보. 나 진짜 오늘 집으로 오면서 결심했어.”

     

“뭐를?”    

 

“이 회사에! 뼈를 묻겠다고!”   

  

“풋.”     


 비장한 각오로 치킨을 뜯으며 말하는 남편의 모습이 귀여워 보여 아내는 웃었다. 


둘은 조용히 속삭이며 새벽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재잘거렸다. 


신혼의 부부. 


공방의 홍사장은 둘의 모습을 보며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응애! 응애!!”     


갑자기 아기 울음소리가 울렸다. 

         

“엇! 은희 깼다!”   

 

 아내는 번개처럼 후다닥 방으로 들어가 아기를 품에 안아 어르고 달랬다. 


그러자, 아기는 언제 울었냐는 듯 엄마의 품에서 금세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정대운 사원이 방으로 걸어와 말했다.     


“우와...... 자기 그거 알아?”     


“뭘?”     


“아마 엄마들은 저~기 반대쪽에 자기들 애기 놔두고 달리기 하면 우사인볼트보다 빠를 거란 거?”  

  

“칫..... 소가 번개 맞아 죽는소리 그만하고, 얼른 씻고 오기나 하세요.”     


정대운 사원은 음식을 치우고, 씻고 방으로 들어갔다.      


“자기 피곤할 텐데, 얼른 자.”     


“아니야. 괜찮아. 내가 은희 좀 안을까?”     


“괜찮긴 뭐가 괜찮아? 회사에서도 졸다가 불까지 내놓고... 그러니까 새벽에 은희는 내가 볼 테니까 그냥 자라고 했잖아.”     


“자기 혼자서 어떻게 봐. 자기도 피곤할 텐데.”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 뭐 어때? 낮에도 은희 잘 때 같이 자면 되는데. 근데, 자기는 일을 해야 하잖아. 일. 오늘처럼 야근도 해야 되고.”     


“그래도...”     


“뭘 그래도야? 자기 이 회사에 뼈를 묻을 거라며? 사장님이 사람 좋아서 이번엔 넘어가 주셨을지 몰라도, 다음번에 또 그러면 정말 자기 해고당할지도 몰라. 그러니까 오늘 푹 자. 뭐, 지금 자도 금방 일어나야 할 것 같긴 하지만. 사장님도 내일 일찍 출근해 달라고 했다며?”     


“응.”     


“그럼 조금이라도 더 자고, 내일 아침 일찍 출근해서 사장님의 은혜에 보답해야지.”     


“그럼... 그럴 까?”     


“그래. 얼른 자. 지금 당신 눈이 빨개. 나갈게~”     


“방에 있어도 되는데?”     


“옆에서 내가 이러고 있으면 잠이 오겠어? 됐어. 은희랑 거실에 있다가 자기 잠들면 들어올게. 얼른 자. 얼른.”

     

정대운 사원의 아내는 아기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왜 몰랐을까? 


공방의 홍사장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분명 홍사장도 아기들을 키워봤고, 밤잠을 설쳐도 봤었다. 


그런데, 신입사원이고, 아기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는 정 부장의 눈이 당시에 왜 그렇게 아침마다 충혈되어 있었는지, 그때는 몰랐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던 일인데...   

  

창 속의 정대운 사원은 서서히 잠이 들었고, 그를 비추던 공방 2층의 창은 점점 어두워졌다.    

 

“뭐 인마?! 다시 말해봐!!”     


반가운 목소리. 


이번의 목소리는 앳된 정대운 사원의 목소리가 아닌, 나이가 든 정 부장의 목소리였다. 


정 부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2층 공방의 다른 창에서 정 부장이 부하직원들과 함께 술을 마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어째 평소 유순해 보이던 정 부장의 모습이 아니었다.  

   

이 과장? 그리고 손대리, 임대리 아니야?     


“솔직히 회사에서 뭐 우리들한테 챙겨주는 게 있습니까? 사장님도 맨날 화가 잔뜩 난 얼굴로 히스테리만 부리고.”     


“야! 이 과장! 거 말 함부로 하지 마! 사장님도 오죽하면 그러시겠냐? 사장님만큼 직원들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 다고....”     


“정 부장님은 그게 문제예요. 아니, 정 부장님은 뭔 이야기만 나오면 무조건 사장님 편을 드세요? 사장님하고 무슨 일가친척이라도 되는 것도 아니고. 정 부장님도 우리하고 같은 직원이잖아요? 그런데, 왜 맨날 사장님 편만 드는 겁니까?”    

 

“내가 무슨 사장님 편만 들어? 그냥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지. 그리고 너희도 사장님 입장에서 한번 생각을 해봐라. 이게 내 회사, 내 공장이라면 너희들은 너희들처럼 일하는 직원이 마음에 들겠냐?”    

 

“아이. 부장님까지 왜 이러세요? 부장님도 우리가 일하는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곁에서 열심히 돼지고기 수육을 쌈에 싸서 먹고 있던 임대리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정 부장이 소주를 한 잔 비우고 흘러내린 술 방울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뭐, 너희들이 일하는 게 썩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     

 

“우와~ 정 부장님. 팩폭! 팩폭!! 나쁜 사람!! 폭격기!!”     


손대리가 과장된 몸짓으로 가슴을 쥐어뜯으며 말하자 일행들이 웃었다.     


“그래. 그래. 미안. 근데 그게 일하는 모양이 영 마음에 안 든다. 이런 게 아니라 주인과 직원의 마음가짐이 다르다 이거야. 바라보는 관점도 다르고. 그러니까 너희들도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해봐. 이 회사가 마치 내 회사다. 내 공장이다. 곧 내 것이 될 거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사장님이 먼저 다르게 대우해 주시기를 바라지 말고, 너희가 먼저 열심히 해 보라는 거야.”     


“...”     


“그런다고 뭐, 내 거 될 것도 아닌데요. 그리고 정 부장님은 진짜 누가 봐도 정 부장님 회사인 것처럼 열심히 일하시는데도 맨날 사장님한테 깨지잖아요?”     


이 과장이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야이씨... 깨지긴.... 말을 해도.... 쩝.. 뭐, 그건 사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사장님 마음이 영 허전하니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아니죠. 그리고 벌써 돌아가신 지가 5년도 더 지났는데, 그게 말이 돼요?”     


“아이.. 몰라 이 새끼들아. 그냥 어쨌든 내 회사다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 괜히 딴생각하지 말고. 알았어?”

     

“와... 씨. 진짜 내가 정 부장님 때문에 참고 다닌다.”     


“나도.”     


 정 부장은 그 소리가 싫지 않은지 피식 웃었다. 그들은 때론 웃기도 하고, 때론 심각하기도 하면서 술을 마셨다.     


 회사 직원들 술자리의 안주는 수육 보쌈과 더불어 회사와 홍사장에 대한 불만이었고, 정 부장은 그럴 때마다 아랫사람들을 때론 다독이고, 때론 혼내면서 애사심을 가지라고 훈계했다.     


“나 때는 말이야..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어. 내가 눈을 뜨고, 내가 일을 하러 갈 곳이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정 부장님은 다 좋은데, 꼭 이런 말 하실 때는 꼰대 같아요.”     


“응. 나 꼰대야.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어봐. 우리 회사가 정말 싫다는 사람은 언제든 떠나도 좋아. 하지만 명심해. 다른 어딜 가더라도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곳도 결국엔 지금 회사와 똑같이 출근하기 싫은 곳이 될 거야. 나와 맞지 않는 세상을 바꾸고, 나와 맞지 않는 회사를 바꾸고,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을 바꾸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나 자신이 바뀌는 거야.”     


“오~ 정 부장님 혹시.....”     


“뭐?”     


“오늘 이 말씀하려고 연습하신 거예요?”     


“그래! 연습 많~~ 이도 했다! 완벽했냐?!”     


“하하하하하!”     


다들 한바탕 자지러지게 웃고는 술자리를 끝냈다. 


정 부장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는데, 이 과장이 놀란 눈으로 정 부장을 쳐다봤다.    

 

“또, 또! 부장님. 회사 카드를 쓰세요. 직원들끼리 회식한 건데...”     


“이게 무슨 회식이야? 이 과장이 오늘 기분 꿀꿀하다고 해서 내가 한 잔 마시자고 한 건데.”     


“회사 때문에 기분이 꿀꿀해졌으니, 회사에서 돈을 내야죠. 왜 부장님 개인 돈을 씁니까? 한두 번도 아니고. 여기 다 회사 사람들인데, 회사카드 좀 썼다고 신경 쓸 사람도 아무도 없는데...”     


이 과장의 말에 정 부장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과장. 저번에도 말했지만, 회삿돈이라고 함부로 써도 된다. 이런 생각 절대로 하면 안 돼! 내 돈만 돈이고, 회삿돈은 돈 아니야? 내 돈 귀한 줄 알면, 남의 돈 귀한 줄도 알아야지. 그리고, 내 월급. 누가 줘? 회사가 주지. 회사가 없으면, 우리도 없는 거야!”     


정 부장이 정색을 하고 말하자 이 과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아... 부장님... 또 사람 부끄럽게 만드시네.... 이제 부장님 하고 술 안 마셔야겠다.”     


“거 참... 사람도. 뭐 그런 일로 삐지고 그래? 언제든 회사 일이든, 개인 일이든 술 한잔 생각나면 말해. 내가 사줄 테니까. 손 대리하고 임 대리도. 알았지? 혼자서 끙끙 앓지 말고.”  

   

“넵!”     


부끄러웠다. 


공방의 창으로 그 모습을 보고 있는 홍사장의 얼굴은 부끄러움에 빨갛게 변했다. 


내가 인식하지도 못한 순간순간 얼마나 많이 직원들에게 짜증을 내고 히스테리를 부렸던 걸까? 


그리고 정 부장은 나 때문에 힘들어하는 직원들에게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달래줬을까? 


정 부장.. 이눔시끼.... 지 앞가림이나 잘하지.... 지도 넉넉지 않은 형편이면서....     

     

“뭐라고!! 고 과장!!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이번에도 또 정 부장의 목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번엔 공방의 뒤쪽에 있는 창이었다. 


홍사장은 얼른 그곳으로 다가가 창을 들여다봤다. 


회사 공장 바깥의 한쪽 외진 곳에 정 부장과 고 과장 둘이 서 있었는데, 고 과장의 표정은 침울했고, 정 부장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게.... 이번에.. 제가 단가 계산을 잘못해서... 죄송합니다. 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야이 씨. 야! 고 과장. 너 같은 엘리트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했냐? 아니, 그리고 나한테 결재를 받았어야지. 네가 왜 먼저 결정을 해서 이 사달을 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부장님 출장 중이실 때 우성에서 3배나 많은 물량을 주문 넣어서 얼른 그거 잡느라고......”     


“야... 이거 어쩌냐... 얼른 사장님께 말씀을 드려야...”    

 

“잠깐만요! 부장님. 정말 이런 말씀드리기 염치없다는 거 알지만, 제가 실수한 거라는 말씀은 사장님껜 하지 말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뭐?”     


“제가... 혈압이 높아서.... 약을 먹고 있거든요. 만약 사장님이 아시면 앞으로 우성에 1차, 2차, 3차..... 납품이 들어갈 때마다 저한테 길길이 날뛰실 텐데.... 그럼 저 진짜 쓰러질지도 모르거든요... 아직 아이들도 어린데....”     


고 과장이 울먹이며 말했다.       


 홍사장은 둘이서 나누는 대화를 듣고 지난번 정 부장이 단가 계산을 잘못해서 우성과의 거래에서 큰 손실이 나게 되었다고 말한 그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시 정 부장은 본인이 잘못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했고, 결국엔 그것이 정 부장을 사표까지 쓰게 만든 일이 되었었는데, 지금 보니 고 과장이 실수를 한 것이었다.   

   

고 과장.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회사가 조금씩 커 나가자 홍사장은 인재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제법 높은 연봉을 걸고 신입사원을 모집하자 명문대학교 졸업생들도 입사 지원을 했다. 

    

고 과장은 그 지원자들 속에서도 선택된 인재였다. 


홍사장은 뿌듯했다. 


명문대학교 졸업생들도 자신의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고 지원을 하고, 그들 중 몇 명을 선택해 회사의 직원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여보. 그런데, 명문대를 나왔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거예요?”   

  

홍사장의 아내가 물었었다.     


“그럼. 중요하지. 우리가 뭐, 대학교 어디 나왔는지, 토익점수는 얼만지 이런 거 말고 다른 걸로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도 없잖아?”     


“뭐... 그렇기도 하네요.... 그런데 여보. 만약에 말이에요... 만약에 당신한테 능력 있는 직원하고, 인간성이 좋은 직원하고 둘 중에 한 명을 고르라면 어느 쪽이에요?”     


“그걸 말이라고 물어? 당연히 능력 있는 직원이지. 인간성이 아무리 좋으면 뭘 해? 능력이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놈이지. 여긴 회사야. 회사에서는 무조건 능력이지.”     


“그래요? 근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능력 있고, 명문대를 나온 직원들보다 실수를 자주 하고, 가끔 사고를 쳐도 정대운 씨 같은 정 많고, 인간미 느껴지는 직원이 전 훨씬 좋아요.”     


“아이고, 대운이 그놈 이야기는 꺼내지도 마.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니까.”     


홍사장의 말에 아내는 웃었었다. 


당시엔 아내가 세상 물정을 참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젠 조금 아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엘리트 고 과장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사람 좋은 정 부장을 지금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 


여태껏 홍사장은 정 부장이 잘못한 줄 알고 있었으니까.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세히 들여다봤다면 누구의 실수이고, 잘못인지 알 수 있었을 텐데. 


으레 정 부장의 잘못이겠거니 짐작을 했었다. 


저 멍청한 놈! 그냥 나한테 솔직히 다 말하면 되었을 것을!! 

    

“휴우....그래. 어쨌든 내 선에서 알아서 말씀드릴 테니까 고 과장은 그냥 일이나 열심히 해. 앞으론 이런 실수하지 말고.”    

 

“예. 부장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고 과장이 허리를 90도로 숙여 울먹이면서 정 부장에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정 부장은 고 과장의 어깨를 다독였다.     


“괜찮아. 괜찮아. 직장 생활하다 보면 그럴 수도 있는 거지. 고 과장도 잘해보려다가 그렇게 된 거잖아. 암튼 스트레스받지 말고. 고 과장이 혈압이 있는 줄은 몰랐네. 뭐니 뭐니 해도 건강이 제일 중요해. 고 과장 말처럼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건강하게 오래오래 일해야지!”    

 

“예... 부장님... 감사합니다.”     


“그래. 담배 한 대 피우고, 바람 좀 쐬고 천천히 들어와. 나 먼저 들어갈 테니... 아, 고 과장 담배도 이제 줄여야겠다. 혈압이 있으니까.”    

 

“... 예... 부장님.. 줄이겠습니다.”   

  

“그래. 천천히 들어와. 먼저 들어간다.”  

   

정 부장은 고 과장에게 미소 지으며 돌아섰지만, 사무실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은 홍사장에게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근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정 부장이 들어가자마자 조금 전까지 죄인 같은 얼굴을 하고서 울먹이던 고 과장의 표정이 싹 돌변했다.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가 내 건강 걱정할 때야? 사장 새끼한테 맨날 깨지는 병신 새끼가.”  

   

고 과장은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당겨, 한 모금 길게 들이마셨다가 후 내뱉었다.   

  

“아~ 씨바. 이번에 잘 됐으면, 저 새끼 제끼고, 사장 새끼한테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    

 

 홍사장은 평소 회사에서 엘리트라고 아끼던 고 과장이 자신을 지칭하는 사장 새끼라는 호칭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충격적이었고, 고 과장이 그동안 본인의 성과를 어떻게 챙겨 왔을지 짐작이 가서 더욱 충격적이었다. 


이번 일도 만약 잘만 되었다면 정 부장을 거치지 않고, 본인의 성과로 만들었을 것이다. 


와... 저 새끼... 저 노무 새끼가....     


쿠당탕     


“허업!!”  

   

요란한 소리에 홍사장이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렸다. 


공방의 바닥에 만들다 만 나무도마가 떨어져 있었다. 


홍사장이 탁자에 엎드려 잠을 자다가 밀어 떨어뜨린 것이었다. 


홍사장은 얼른 바닥에 떨어진 나무도마를 주워 탁자에 올려놓았다.     

 

홍사장은 고개를 돌려 공방의 창문을 눈으로 훑었다. 


어디에도 시계는 보이지 않았고, 창마다 보이는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꿈이었나.....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창밖으로 서서히 붉은 노을이 번지고 있었다. 


뭐야?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잠이 들었었다고? 


처음이었다. 


평소 5분에서 10분 정도 낮잠을 자던 홍사장이 몇 시간씩이나 낮잠을 잔 적은. 


홍사장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후다닥 공방을 나섰다. 


지금 당장 만나야 할 사람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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