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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만약에 말이야...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의 술자리.


중학교 1학년때 같은 반 친구들 4명이 아직도 연락을 하고, 때때로 만난다는 것이 참 신기도 하다.


1년에 한 번씩은 보자고 해놓고, 2년 만에 만난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어제 본 사람처럼 마음이 편안하다.


술잔이 몇 번 부딪치고, 취기가 오르면 꼭 나오는 질문.


- 넌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는 걸 알면서도 각자의 생각들을 말해본다.


- 적어도 중 1 때는 아니다. 너희들이랑 다시 엮이고 싶진 않으니까.


친구들이 깔깔거리며 웃는다.


- 난 절대 군대 가기 전으론 돌아가진 않을 거다!


다들 공감한다.


- 난 20대 중반. 그때가 제일 좋았을 때 같다.


누군가의 말에 각자의 20대 중반을 떠올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나도 나의 20대 중반을 돌이켜본다.


친구들이 대학교 교정을 거닐 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대학을 중퇴하고 사회생활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던 그 시절.


헌데, 당시엔 어떤 문제들로 내가 힘이 들었는지, 무엇 때문에 고통스러웠는지 이젠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시간이 흐른 지금에 와서 그때를 떠올리면...


찬란했다. 눈이 시리도록.


찬란해서 찬란했던 것이 아니라, 젊은 그 자체로 우리 모두의 20대는 찬란했다.


'그런데, 그땐 왜 그렇게 세상의 많은 것들이 힘들었을까?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지금은 잘 생각도 나질 않는데.... 돌이켜보면 그토록 그립고 아련한 시간인데.....'


내가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친구가 묻는다.


- 너는?


- 나? 나는..... 지금. 지금이 제일 좋다.


나의 대답에 친구는 괜히 물어봤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술잔을 든다.


친구들은 나의 대답이 시답잖다고 생각했는지 몰라도 나는 진심이다.


좋다.


지금이.


20대 때보다 몸에 아픈 곳이 늘었고, 혈압과 당뇨를 조심하기 위해 애를 쓰고, 흰머리가 쭈뼛쭈뼛 곳곳에서 튀어나오고, 눈밑에 주름이 자글자글 거려도.


지금이 좋다.


단순히 늙어버린 몸을 가진 지금이 좋다는 것은 억지스러우니, 조금 더 정확이 말하자면, 지금의 이 마음가짐, 이런 생각을 가진 지금이 좋다.


이른 아침.


눈을 뜨고, 물을 마시고, 양치를 하고, 얼굴을 씻고, 머리를 감고 집을 나설 때,


- 아, 오늘도 보통의 하루가 시작되었구나!


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지금이 좋다.


만약, 이 마음가짐을 지닌 채로 20대로 돌아간다면?


그럼 더없이 좋겠지!


하지만 그 시절의 내가 이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세월이 주는 교훈을 세월을 겪지 않고도 얻을 수 있다면 좋으련만...



모든 화의 근원은 욕심이다




20대 때는 욕심이 많았던 것 같다.


성취하고 싶은 욕심! 인정받고 싶은 욕심!


욕심이란 것이 한 개인의 발전적인 면에 있어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겠지만, 욕심이 지나치게 되면 성취하지 못한 것에서 오는 좌절감, 인정받지 못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어느 순간부터 자신을 옥죄어 온다.



나에게 주어진 행운을 생각하면 나는 충분히 행복해하지 않았다. 너무 많은 소음에 귀 기울였다. 경이로움에 무관심했다. 칭찬을 갈망했다. -웬델 베리 '정화'-

아픈 곳 없이 멀쩡히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기보다는,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고된 일을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 더 많았고, 봄에 피어나는 꽃을 보며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기보다는, 이렇게 날씨가 화창한 봄인데, 내 형편은 늘 쓸쓸한 가을이라며 나의 형편을 비관했다.



우주.jpg


일상이 우리가 가진 전부다. -프란츠 카프카-


봄이다.


봄. 일요일.


꽃구경을 가지 못하고, 오늘도 일해야 하는 내가 더는 가엾지 않다.


많은 이들이 휴식을 취하는 일요일. 나는 땀을 흘리며 일하겠지만,


이것이 일상일 수 있어 감사하다.


지금의 일상은 20년 뒤 찬란했던 순간이 될 것이다.


눈이 시리도록.


가슴이 아리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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