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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직 만나본 적 없는 미지의 세계

#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by 서점원

7월

06


서점에서 흔히 만날 수 없는 것, 남자 손님.

가끔 혼이 맑아지는 수련을 받고 있다는 맑은 눈의 남성이 서점을 들어와 날 놀라게 한 적은 있어도 여하튼 자주 볼 수 없는 광경인 것은 맞다. 아무래도 위치가 여대 근처다 보니 이곳의 주요 고객은 이삼십 대 여성이 주를 이룬다. 그래서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이날은 정말 신기한 날이었다. 시작은 학생들이었다.


오픈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학생 두 명이 서점을 방문했다. 이것부터 충분히 낯선 하루. 심지어 남학생 둘이 같이 서점에 온다? 가능한 일인가 싶은데 그렇다. 그들은 근처 대학의 신입생이었는데 서로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고심 끝에 책을 골랐다. 아마도 한 친구가 다른 친구에게 선물을 해주는 모양. 귀여운 문학소년들이다!


책 선물의 기쁨을 일찍이 깨달은 학생들이 떠나고 나는 더욱 낯선 광경을 마주했다. 중년의 아저씨 두 분이 서점 앞에 차를 정차하더니 곧장 서점으로 들어왔다(중년 남성 두 명의 조합은 우리 서점 최초의 조합이라 확신한다).

심지어 한 분은 환자복을 입고 있었다! 아, 이건 또 무슨 조합일까. 영화 촬영 중인 건 아닐까, 라는 나의 얄팍한 상상력을 동원하며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환자복을 입은 분이 서점을 둘러보더니 여긴 서점인가요, 라고 물었고 그렇다고 했다. 병원에 입원해서도 책을 읽겠다는 환자분의 의지가 엿보여 오, 멋지군 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잠시 주저하는 말투로 두 번째 질문을 던지셨다. 처음에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해 다시 물었더니 그제서 명확한 발음으로 다시 물었다.


“여긴 야설은 없나요?”

아-


지금까지 서점에 자신이 찾는 책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수많은 문의가 있었지만, 이것은 예상 범주에 없던 카테고리의 질문이었다. 잠시 멍해졌으나 바로 정신을 차린 후 차분하게 대답해 드렸다.


“서점 규모가 크지 않아 성인소설은 취급하고 있지 않습니다. 광화문 쪽에 교보문고를 추천해 드려요.”

다양한 장르를 담아내지 못하는 나의 작은 그릇.

아직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가 이렇게나 많다. 또 한 번 깨달음을 얻은 날.


그 후로는 전화로 <자몽살구클럽> 재고 여부를 확인한 남성분이 오셔서 책을 구입하셨고, 마감을 앞두고는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시던 동네 주민분(역시 남성)이 하이쿠를 구입하셨다.


책방은 여전히 데이터를 쌓지 못하고 있다. 몇 요일에 손님이 많은지, 어떤 장르의 선호도가 높은지 그리고 손님이 어떤 책을 많이 찾는지 아직도 잘 모른다. 그래서 언제나 책을 팔아서 책을 산다. 때로는 책을 못 팔아도 책을 산다. 책은 계속 사야 한다. 책만큼 신간이 쏟아지는 분야도 없는 것 같다.

매일 몇 권의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걸까. 책 주문 사이트를 들어갈 때마다 놀라는 부분이다. 그러나 그 수에 비해 책을 사는 사람은 쏟아지지 않는다. 더 다양한 장르를 입고해야 할까. 이 조그만 서점에서 책을 잘 사는 서점원이자 잘 판매하는 서점원이 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겠다. 이곳에 입고된 책이 주인을 만나도록 하는 게 나의 역할이니까.


2025년 7월 31일 목요일

개척하지 못한 장르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달으며(궁금증 하나. 성인소설은 페이지마다 19금의 향연인 것인가).




서점원의 문장과 책

: 그녀는 고개를 저었으나 저항은 그들의 입술이 맞닿기 전까지였다. 이제 그녀는 움직임이 완전히 멎은 채로 무언가를 경청하려는 듯 숨을 멈추었다. 이윽고 그가 놓아주자 그녀는 그에게서 떨어져 나와 일어서서 깊은 심호흡을 한 뒤, 흐트러지지도 않은 머리칼을 정돈했다.


『셰리』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 지음, 정소미 옮김, 녹색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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