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의기쁨과슬픔 #비정기산문집
8월
02
은행 수수료, 주차비 등 내야 하지만 아까운 것들이 있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을 고르라면 대출 이자가 아닐까. 월세나 전세 대출을 경험해 본 적은 아직 없지만, 특히 월세는 너무나도 아깝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부모님 집에 얹혀사는 캥거루의 마인드라 그랬던 거다.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친구나 결혼 후 처음으로 전세 대출이란 것을 해 본 친구들을 본 바, 그들에게 주거는 가장 큰 고정지출 그 자체였다.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먼저 걱정한 것도 비용 문제였다. 미천한 자본금으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 정말 월세만 내면 다행이라는 처절한 걱정. 월세를 낸 지 다섯 번이 지나자마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실제 통장 잔고를 보니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새삼 느껴졌다. 아이고 무서워.
대출. 꺼내고 싶지 않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그 단어가,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그 단어가 목구멍 바깥으로 튀어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고 있었다. 나 여기 있어요, 나를 쓰세요 하면서.
대출 없는 인생을 꿈꾸며 성실하게 살면 될 줄 알았는데 역시나 빚 지지 않고선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가 싶다. 통장 잔고를 한 번 바라보다가 책 구매 내역을 번갈아 바라보며 책이 팔리는 속도보다 책을 구입한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한 번 느끼고 반성하고, 그렇지만 이곳은 서점이니 책을 사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합리화를 하고 이렇게 반복하던 중 결론은 대출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울시에는 다양한 소상공인 지원 정책이 있는데 대출도 그중 하나였다. 시중 은행 금리보다 저렴하게 지원해 주는 숱한 공고문. 그중 범위를 좁혀 서울시 00구 지원 사업을 검색했더니 더 낮은 금리가 있었다. 와 좋다. 2.5%와 1.2%는 정말 큰 차이니까.
근데 이건 또 기간이 정해져 있었다. 이미 상반기는 마감했고, 남은 건 하반기. 다행히 8월 말부터 모집 공고를 한다고 하니 한 달이 채 되지 않는 기간을 잘 버티면 되는 것이다.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의 차이, 거치기간의 의미 등 어른의 용어를 마주하고 저미나이에게 뜻을 물어보고, 계산도 부탁했더니 대출금 대비 매달 갚아야 할 이자와 총 상환액이 펼쳐졌다. 은행은 대출 이자만으로 정말 많이 돈을 벌겠구나, 역시 돈이 돈을 벌어들이는구나,라는 지극히 기초적인 경제 원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 것과 어른이 될 수 없는 것은 다른 일이다. 피터팬은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 싶다가도 이런 걸 보면 역시 네버랜드에 남기를 선택한 것이 그의 최선일지도 모르겠다고 속세에 찌들어 버린 나는 생각한다. 나에겐 네버랜드가 없으니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도 어른이 될 수 없는 선택지는 없다. 오히려 좋다. 선택 따위 하지 않아도 된다. 흘러가는 대로 이제서야 한 걸음 내딛는 거다. 갚아야 할 대출금과 이자를 생각하며 나에게 주어진 책임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유난히 힘든 퇴근길에 통닭 한 마리를 사서 토끼 같은 자식들에게 전하는 아버지 아니, 어머니 아니, 가장의 마음에 이입해 본다. 돈 앞에선 모두가 어른이 된다.
2025년 8월 5일 화요일
첫 대출을 앞두고 진짜 어른이 된 것만 같은 서점원
서점원의 문장과 책
: “어쨌거나 일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합시다.”
슬아의 어깨는 작지만 단단하다. 그것이 바로 가녀장의 어깨일 것이다.
『가녀장의 시대』 이슬아 장편소설, 이야기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