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 없는 남편 때문에 넓은 집을 줄여 작은 평수로 이사를 하면서도 빚을 다 갚을 수가 없었다. 작은 집마저 빚으로 넘어갈까 봐 친정엄마 이름으로 집 명의를 했다. 대책 없는 남편은 실업자가 되어 숨어버렸다.
시립도서관은 매년 임시직을 뽑았다. 사서 자격증+재산 없음+차 없음+가족 중 직장 없음. 이 조건에 해당하면 취업할 가능성이 컸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난 알맞게 준비되어 있었다.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야호~!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도서관은 3층 단독 건물이었다. 회색 시멘트 건물 1층에 들어서면 안내대가 정면으로 보였다. 왼쪽은 사무실, 오른쪽은 우리 집보다 넓은 어린이 자료실이 있다. 2층 계단을 올라가면 왼쪽엔 아담한 간행물실이 있고, 종합자료실은 2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기가 내가 근무하는 곳이다. 3층은 디지털 자료실과 열람실이 사이좋게 나눠 자리 잡았고, 책상이 줄을 맞춰 수십 개 놓여있다.
시청 소속이라 ‘시립’ 자가 붙었다. 관공서라 하고 공공기관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직원이 많다. 말끔하게 청소하는 분들, 안내대(대출증 발급과 경비), 사무실 직원(관장님 포함 주사님들. 도서관 전체 관리), 자료실 사서 직원(내가 여기 속함), 책 꽂는 분, 자원봉사(월급 없이 무료로 봉사하는 분) 이렇게 수십 명이 맡은 바 일을 해야 도서관 문이 열린다.
조약돌 작은 도서관과 일이 전혀 달랐다. 그곳은 동화책 몇천 권만 준비한 복지관 서비스였다면 이곳은 남녀노소 누구나 이용하는 시민들의 취미 겸 휴식처였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았고, 모든 업무는 규칙에 맞춰 정확하고 빠르게 처리해야 했다. 출근 첫날부터 도서관 업무 지침서 몇 장을 주면서 빠르게 업무 내용을 알려 주며, 종합자료실 데스크에 바로 투입되었다. 나머지 내 업무 지시는 자원봉사자에게 넘어갔다. 자원봉사 옆에 앉아서 대출, 반납 업무를 시작했다. 도서관 프로그램이 깔린 모니터에 앉아 있을 뿐 까막눈이나 마찬가지였다. 손이 떨렸다. 버벅거렸고, 당황했다. 아무리 쉬운 프로그램이라도 알 리가 없다.
“방금 가르쳐 드렸잖아욧!”
너는 처음부터 알았냐?
“다시 알려 주세요.”
텃새 자원봉사는 마우스를 돌리며 순식간에 어떤 곳을 클릭했다 나온다. 헷갈린다. 이용자는 데스크 앞에서 기다리고, 나는 오늘 처음 출근이라며 고백을 하고, 죄송하다며 내 잘못을 인정해야 했다. 텃새는 마우스를 낚아채며 책을 들어 바코드를 찍고, 반납일을 말하며 이용자를 무사히 보냈다.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나는 얼른 인사를 했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인사밖에 없었다.
“꼬박꼬박 인사할 필요 없어욧.”
내 맘이다. 조약돌 도서관에서는 꼬박꼬박 인사했어.
한 시간 일하고 나니 텃새 자원봉사는 자료실 서가에서 책을 꽂고 있는 남자 직원 두 명을 부르더니 커피 한잔 마시라고 한다. 남자 직원들은 자원봉사자에게 네, 네 굽신거리며 종이컵을 꺼내 커피를 탄다. 나는? 텃새야 나는? 남자 직원이 커피를 다 마실 때까지 나한테는 차 마시라는 말을 안 한다. 그래? 그럼, 내 몫은 내가 챙겨야지.
“저도 커피 마실게요.”
“...”
대답도 안 하고 쳐다보지도 않는다.
커피, 설탕, 크림 두 스푼씩. 뜨거운 물 3/2컵. 티스푼으로 살살 저어 커피를 들고 종합자료실 데스크 뒷문에 딸린 발코니로 나왔다. 사무실 주사가 커피 한 잔씩 해도 된다며 발코니를 알려 주었다. 업무는 한 번에 못 알아들었지만, 차 한 잔의 여유는 또렷이 입력되어 있었다. 발코니 난간에서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손을 뻗으면 나뭇가지가 닿을듯했다. 오늘부터 발코니가 나의 카페다. 따듯한 종이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욕이 섞인 한마디를 뱉었다.
“씨발, 못생긴 게 남자는 밝히네.”
계절은 허연 입김이 나오는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