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 도서관 04

by 산너머

겨울에도 환기를 위해 창을 연다. 네모난 찬 공기가 막혀있던 가슴에 네모난 창을 만들어준다. 그래야 시원하게 숨을 쉴 수가 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남의 삶의 주인공 일 필요가 없다. 이용자들이 터무니없이 트집을 잡아도 이틀이 지나면 괜찮아진다. 남편이 도망자가 되어 숨어 지내도 출근을 한다. 일할 수 있는 정신과 직장이 있어 감사하다.


코스모스 도서관에서 해가 바뀌어 4월, 막내아들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소로 들어가는 날이 되었다. 데려다주고 싶은데, 차가 없었다. 빚 때문에 숨어 지내던 남편은 아무것도 가진 건 없지만 차는 있었다. 훈련소에 데려다 달라고 연락을 했다. 박박 머리를 민 아들도 말이 없고 남편도 할 말이 없을 수밖에. 안부는 서로 생략했다. 의정부를 지나 어디쯤인 훈련소는 한 시간 반 거리였다. 야트막한 산과 산 사이 샛길로 접어드니 아직 잎이 나지 않는 나무들 사이로 진달래꽃이 분홍색 물감을 찍고 있었다.

“와! 진달래가 피었네.”

집게손가락을 펴 조금 과하게 진달래꽃을 반겼다. 아들은 창밖을 보며 “그러네요” 했다.

“진달래꽃을 보면 고향 생각이 났는데, 이젠 진달래가 피면 훈련소로 가던 아들 생각이 날 거야.”

아들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진달래꽃이 한 번 더 피고, 가을이 오면 제대를 하겠구나.”

이제 훈련소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 제대할 날을 섣부르게 떠들었다. 오랜만에 만난 남편은 형편이 꼬인 상태 그대로인 것 같고, 안 들어봐도 뻔하다. 아들이 제대할 때는 꼬인 형편의 시작점이라도 찾을 수 있을지 막막했다. 진달래꽃이 해사하게 피어있어서 계절 이야기로 말길을 트는 수 밖에. 아들을 훈련소에 들여보내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울지 않았다.

“아들이 군대 갔는데도 안 우네, 독해.”

“독하지 않으면 어쩔 건데? 건강해서 가는 건데.”


몇 년 전 딸은 호주에 가서 영어도 배우고 돈도 많이 벌어오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그걸 워킹홀리데이라나?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갔다. 자꾸 눈물이 나서 화장실로 들락거렸다. 딸의 뒤통수가 안 보일 때까지 고개를 빼고 보다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시련당한 여자처럼 울고, 한동안 딸의 물건만 봐도 밥을 먹다가도 울었다. 돈 없이 간 딸은 오렌지를 따고 교통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는 걸 알기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아들은 먹여주고 재워주잖는가. 건강한 젊은이는 누구나 가는 곳이잖는가. 생활비가 줄었는데, 왜 울겠어. 답답한 남자야. 그래 나는, 독하게 현실적이다. 아들이 입고 갔던 옷이 군사우편으로 택배가 오던 날, 짝퉁 나이키 운동화를 보고 아들 방에 앉아 울었다. 싸구려 운동화 한 켤레로 고등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용돈을 모아 짝퉁 나이키를 사 신고 들어왔던 날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남편은 계속 숨어 지내고, 돈 많이 벌어 오겠다던 딸은 남자 한 명을 데리고 와 결혼을 했는데, 사위가 골 때린다. 겉도 별로였는데 속은 더 별로다. 아들은 자대 배치를 받았다.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듯이 도서관 생활도 별 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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