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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옥 Jul 21. 2024

여자 친구의 오해와 예민함에 대하여

프로젝트를 론칭하다

 

"현지야, 오랜만이야. 그동안 잘 지냈어? 자, 선물이야."


홍대리는 7박 8일간의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찾은 사람은 여자친구 현지였다. 현지에게 준 선물은 미국 각지를 돌며 사 모은 기념 열쇠고리, 면세점에서 구입한 샤넬 No.5 향수, 그리고 애플 로고가 새겨진 티셔츠였다.


"어머, 고마워 홍짱. 그런데 그 옆에 있는 화장품은 뭐야? 그것도 나 줄 거야?"


현지가 말한 것은 부서 내 여성 직원들을 위해 산 립스틱 세트였다. 순간 당황한 홍대리는 거짓말을 할지, 솔직히 말할지 고민하다가 결국 솔직한 대답을 했다.


"응, 여성 직원들에게 하나씩 선물하려고 산 거야. 괜찮지?"


"괜찮긴! 여성 직원들에게는 초콜릿이나 열쇠고리를 선물하면 되지, 화장품은 좀 아니지 않아?"


"장거리 출장을 갔다 왔고, 그것도 처음으로. 이 정도 선물은 해야지. 별 의미 없어. 그냥 하나씩 나눠주려고..."


말을 흐리며 홍대리는 현지의 예상치 못한 반응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여성들에게 화장품은 특별한 의미가 있어. 립스틱은 각자 취향이 다른데, 이렇게 함부로 선물하면 어떡해?"


홍대리는 현지의 민감한 반응을 이해하기 어렵고, 화를 낼 만한 상황도 아닌데 너무 예민하게 대응하는 여자친구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혹시 현지도 여자라서 질투하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걸까?


어쨌든 오랜만에 만난 현지에게 호된 대우를 받은 홍대리는 기분이 상했다. 오히려 답례로 예쁜 뽀뽀를 바랐던 홍대리의 기대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홍대리는 문득 과거 일본 출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가 겪었던 당혹스러운 일이 떠올랐다. 당시 홍대리는 갓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였고, 아버지는 지방 교육청에서 인정받는 공무원이었다. 일본의 선진 교육 프로세스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3박 4일간 출장을 다녀왔다. 해외 출장이니 선물도 많이 가져왔는데, 어머니 선물은 일본산 화장품이었다. 당시 일본 제품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전자제품, 화장품, 옷, 노래 등 모든 분야에서 앞서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많이 달라졌다.


그 당시 정부는 일본 문화에 대해 매우 경계했다. 왜색이란 명목으로 일본 영화나 노래 같은 문화 콘텐츠를 접할 수 없었다. 홍대리는 형들이 가끔 일본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보며 신기해했다. 형들이 부르던 노래는 '요코하마(블루라이트 요코하마)', '고이비또요' 등이었다.


[이시다 아유미가 1969년에 발표한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우리나라에는 1980년대 소개되어 몰래 유행했다]


아버지는 어머니 선물 외에도 직원들 선물로 열쇠고리, 사탕, 과자 등을 가져왔다. 문제는 여성 직원들에게 준다고 산 나일론 스타킹이었다. 당시에는 일본의 섬유 기술이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나일론은 미국에서 개발되었지만, 일본이 더 발전시켰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여성 직원들에게 스타킹을 선물한 것을 알고 크게 싸웠다. 홍대리는 부모님이 싸우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어 그날의 싸움은 충격적이었다. 어머니는 그 후 몇 일 동안 삐져 있었다. 홍대리는 아버지가 특별한 의미로 선물을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많은 여직원을 챙기려고 비교적 저렴한 선물을 고른 것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물이 어머니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을 알았다면, 선의로 준비한 선물이라도 몰래 숨기거나, 다른 선물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홍대리는 잠시 동안 여자친구인 현지와 어색한 관계를 이어갔다. 



홍대리는 현지와의 대화를 돼새기며, 선물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고른 선물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여자 직원들에게 선물을 할 생각으로, 현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은 체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자들은 선물 하나하나에도 의미와 뜻을 부여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홍대리는 자신이 잘못한 것을 인정하고, 현지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로 결심했다.


며칠이 지난 뒤, 홍대리는 진심으로 사과했고, 앞으로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물을 줄 때는 상의한 후 결정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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