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뒤 한만오 씨의 영은 먼지를 털어내듯 몸에서 쑥 빠져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 이미 숨이 끊어져 널브러진 자신의 몸을 넋을 놓고 바라보았어. 내가 “짠” 하고 나타날 때야. 나는 우산을 들고 우아하게 걸어갔고 한만오 씨 옆에 조용히 섰어. 우산 꼭지로 한만오 씨의 옆구리를 콕 찍고는 인사했지.
“한만오 씨, 안녕하세요. 저는 저승국 환승센터에 근무하는 깜두라고 합니다.”
한만오 씨는 나를 보곤 놀란 듯했어.
“어? 고양이가 말을 하네. 우산도 쓰고 있고. 아니, 너 지금 두 발로 서 있는 거야?”
“우산 쓴 고양이 처음 봅니까? 놀란 입 그만 다물고 서두릅시다. 우린 갈 길이 멀다고요.”
“내가 너랑 어디를 가? 우리 엄마가 아무나 막 따라가지 말라고 그랬어.”
“엄마 말 잘 듣는 인간이 어쩌다 자살을했을까요? 제 일이 당신을 저승국으로 안내하는 거예요. 절 놓치지 말고 잘 따라와야 할 거예요.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죠.”
“나 진짜 죽은 거지? 갈 때 가더라도 확실히 죽은 거 맞는지 확인하고 가야지.”
한만오 씨는 자신의 몸으로 바짝 다가가더니 숨을 쉬고 있나 귀를 기울였지.
“한만오 씨, 제가 보이면 죽은 겁니다. 숨이 붙어 있는 인간은 절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반말인데, 처음 보는 사이이니 존대를 해 주세요. 제 지금 모습이 동물일 뿐 영은 당신이랑 똑같다고요.”
한만오 씨는 질문이 많았어. 일일이 대답해 주다가는 끝이 없을 것 같았지. 나는 대답 대신 우산을 높이 들었어. 한 발을 들어 그 자리에서 세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어. 우린 순식간에 인간계와 저승국 사이의 중간계에 들어섰지. 이곳은 눈 부신 빛과 차가운 눈발만 날려. 늘 눈보라가 치고 걸음걸음마다 발은 눈에 푹푹 빠졌지. 여긴 오지게 추운 곳이야. 매번 오가는 길이지만 이놈의 추위는 익숙해지지 않는단 말이야.
“우와~ 여긴 어디예요? 깜두 씨, 마법도 부려요? 우리 방금 순간이동 한 거 맞죠? 근데 여기 눈이 너무 부셔요. 너무 춥고요. 겉옷 좀 없을까요?”
“있겠습니까? 딱 봐도 허허벌판이잖아요. 어서 가시죠.”
“깜두 씨는 털이 덥수룩해서 괜찮겠지만 전 매우 추워요. 그 드라마 같은 데 보면 있잖아요. 저승 갈 때 배 타고 가고 그러던데 그거 다 환상이었나요?”
한만오 씨는 해맑았고 호기심이 아주 많은 영이었지. 이런 유형은 엔간해선 잘 안 죽는데 왜 죽은 것인지 문득 궁금했어. 나는 친절히 대답해 줬어.
“거긴 다른 부서입니다. 당신이 가는 곳은 축생 부서이고, 애초에 길이 달라요.”
“축생 부서요? 그게 뭐죠?”
“한만오 씨 공부 안 했습니까? 명색이 고시생이면서 '가축 축'자도 몰라요?”
“네? 제가 왜 축생 부서에 가죠? 설마, 거기 가축으로 변하는 그런 무시무시한 곳인가요?”
“오! 눈치는 빠르군요. 정답입니다~”
내가 한만오 씨에게 박수를 보냈어. 한만오 씨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지. 인간들은 자기가 축생 부서에 가는 걸 알게 되면 저렇게 하나같이 당황한다니까. 지가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제가 뭘 그렇게나 잘못했다고, 설마 자살 한 번 했다고 이러는 거예요? 전 이대로 못 가요. 가축으로 변한다니 말도 안 된다고요!”
한만오 씨는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울 것만 같은 표정이었어. 이전 생에서 가축으로 한번 살아본 적이 있는 걸까. 저렇게까지 속상해하다니 말이야.
“안 가면 한만오 씨는 이곳을 무한대로 떠돌게 될 겁니다. 지금은 덜 추운 거예요. 여긴 머물수록 더 추워진다고요. 고통 속에서도 죽을 수 없는 것, 그게 가장 끔찍한 지옥이라고요.”
“이런 법이 어딨어요? 전 억울해요. 제 삶은 죽는 거 외엔 방법이 없었다고요.”
“다들 그렇게들 얘기하죠. 저승에선 저승법에 따라야 합니다. 억울한 건 환생센터에 가서 얘기하세요. 죽음이 불가피했다는 걸 증명할 마지막 방법이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래야죠. 막무가내로 축생을 결정하는 건 아무리 저승이라도 불법이지요.”
나는 한만오 씨를 잠시 경멸하는 눈초리로 바라보았지. 인간처럼 어리석고 잔인한 존재도 없어. 스스로 자신의 숨을 끊다니 이 얼마나 잔인해. 아, 내가 한만오 씨에게 이야기하지 않은 게 하나 있어. 물론 앞으로도 이건 얘기하지 않을 거야. 우리 부서는 100% 축생률로 악명 높은 곳이야. 지금까지 축생을 면한 인간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따라서 한만오 씨의 축생 가능성은 내 입으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이제 곧 도착이야. 저기 눈앞에 저승국 환승센터가 보여.
출처-Unsplash의Roberto Nickson
저승국 입구의 나무마다 오색의 전구들이 빛을 발하고 있어. 얼핏 보면 이곳은 인간계의 산타마을 같기도 하고 놀이공원처럼 보이기도 해. 저승국도 이승과 다를 바가 없어. 존재가 살아가는 곳은 어디나 매한가지야. 다만 이곳은 항상 푸른빛을 띤 풍경만 이어진다는 게 인간계와는 좀 다르지. 이곳에선 계절의 변화도 시간의 흐름도 알 수 없어. 그래서 좀 심심하달까.
“이야~ 멋져요! 여기가 저승국이에요?”
한만오 씨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저승국을 둘러보았어. 나는 곧바로 환승센터 건물로 안내했지. 저승국 입구에서 바로 보이는 3층 높이의 목조 건물이 환생센터야. 이곳에 오는 인간의 영은 환생센터부터 들러야 해.
“정확히 얘기하자면 저승국의 환생센터예요. 우선 접수부터 해야 하죠."
“접수요? 뭐, 죽었다는 걸 확인하는 절차인가요?”
“지금부터 이곳에서 지난 생을 평가받을 거예요. 다음 생을 결정하기 위한 절차랄까요. 인간계의 시간으로 49일이 주어집니다. 어떤 방법으로 평가받을지는 본인이 선택할 수 있죠. 저승국은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며 평가도 매우 공정합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이번 생의마지막 오디션이라 생각하시면 돼요.”
“오디션이요? 아니, 죽어서까지 시험이군요. 전 시험이라면 질색이라고요. 만약 거부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럼 랜덤 환생입니다.”
“랜덤 환생이요?”
나는 한만오 씨에게 랜덤 환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줬지. 랜덤 환생은 평가에 응하지 않은 영에게 주어지는 다음 생이야. 지구 생명체의 개체 수에 비례해 무작위로 결정되지. 대다수는 개체 수가 가장 많은 곤충으로 환생해.
“예를 들면 바퀴벌레 100년형이 정해지면 인간계에서 100년 동안 바퀴벌레로 생과 사를 무한 반복하는 거죠.”
“으윽! 상상만으로도 끔찍해요. 전 다시는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저승에 계속 머물 수는 없나요?”
우리 축생 부서에 오는 인간들은 하나같이 인간 세상으로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말해. 그래서 우리 대빵은 이걸 생각해 냈지. 축생 부서에서 축생을 면할 뿐 아니라 인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는 단 한 가지 방법이 있어.
“한만오 씨, 그 방법이 여기 있습니다.”
나는 한만오 씨에게 신청서 한 장을 내밀었어. 신청서를 바라보는 한만오 씨의 눈빛이 반짝였지.
인간의 생명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는 자들의 삶은 고통으로 가득 차게 되어 있어. 기본값으로 주어진 생의 여정은 괴롭고 슬프고 비참하지. 삶의 본질이 고통이라는 뜻이야. 그럼에도 인간은 안간힘을 다해 살아내야 해. 그게 인간으로 태어난 목숨의 대가거든. 온 힘을 다해 자신의 생을 모두 살아냈을 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심판의 기회가 주어 지지. 한만오 씨는 지금부터 그걸 스스로 증명해야 해. 저승국 환생센터 축생 부서에서는 매일 <금생의 마지막 오디션>을 펼치고 있지. 49일의 시간, 당신의 도전을 응원할게.
한만오 씨는 과연 자살이 피치 못할 최선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을까. 그로 인해 축생을 면하는 최초의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기대하시라. 오디션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