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길이 내 길인지 아닌지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이직을 자주 하게 되면서 진로에 대한 고민에 대해 늘 들었던 생각은, '하고 싶은 게 뭐지. 뭘 제일 잘하고 좋아할까?'라는 것이다.
어린 햇병아리 시절, 궁금한 것은 두 가지였다. 하는 일을 어떻게 하게 됐는지(지금도 궁금), 앞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은지, 말이다.
병원에서도 동기 선생님들이 다른 일 하다 오신 분들을 통해 자신의 꿈, 미래에 대한 고민이 똑같이 나이를 먹어도 계속됨을 알았고, 확실히 나처럼 돈 벌려고 별생각 없이 간호대 나와서 간호사 하는 사람보다 뚜렷하게 무엇이 더 환자에게 이로운지를 고민하고 깊이 고민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질문은 해외봉사에서 만난 사람들에게도 이어졌다. 함께 지내던 언니, 오빠들에게 같은 질문들을 반복적으로 물었다. 다들, 본래 전공이 있고, 다른 일을 하기도, 본래 전공의 일을 하다가 곁다리로 뻗어나간 진로를 물색하기도 했었다.
그중 같은 지역에 있던 언니들의 모습을 동경했다. 뚜렷한 자기 전공과 경력이 일치하고, 지금도 좋아하며 앞으로도 계속할 예정이었다. 둘 다 아이와 관련된 일들이었는데 그저, 순수하게 '내가 돌보는 대상자인 아이들(특수 재활, 유치원, 영유아 등)이 좋아. 계속 보고 싶기도 하고.' 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업무적 직업적인 부분에서 인식하고 실천한다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간호사를 하면서 환자가 보고 싶어 병원에 출근한 적 있던가. 남한테 폐 안 끼치려고 꾸역꾸역 출근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그렇다고 아프리카 보건소에서의 일이 즐거웠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진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알았다.
"나는 '간호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니야."
그렇다고 아주 치를 떨게 싫어서 안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뭔가 부족했다. 간호사 일이 의미 있고 배움도 많은데 그것만 하는데에서 갈증을 느꼈던 것 같다. 엄청 일이 많으면 되겠네?, 가 아니라 다른 부분으로의 일도 같이 하길 원했던 것 같았다.
그 다른 부분이란 건 무엇일까. 그게 고민이었다.
봉사단원을 하면서 반기별로 보고서와 물품 사용 비용에 대한 청구서를 작성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난생처음, 병원 차트가 아닌, 기관에 보고를 하는 문서 업무는 처음이었다.
종종 발생하는 특별활동, 협력활동 등에도 교육자료, 현황자료, 보고자료 등을 남겨야 했기에 컴퓨터 앞에서 하는 이런 일들이 꽤 있었는데 묘한 재미를 느꼈다.
기록으로 근거를 남기는 것. 내가 한 일들을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기록과 영수증 작업들. 아마 이런 부분이지 않을까. 내가 하고 싶었던 다른 부분의 일이란 것이.
사무직이 답답해서 맞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잘할 수도 있겠네, 생각했다. 게다가 활동 막바지에 이르러서 했던 활동 중 우유 급식을 실시한 학교와 그렇지 않은 학교의 유치원 아이들 발달 정도 차이에 대해 흥미를 가지면서 이런 궁금함이 연구라는 부분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학원, 보건학 등으로 진로를 고민했으나 특별히 정한 진로 없이 급작스럽게 귀국했다.
3분기 봉사단원의 삶
오자마자 운 좋게 보건학 연구를 하는 곳에 들어가서 대상자도 만나고, 연구도 하고, 학회도 다녀오고, 대학원 진학도 하게 되어 행복한 1년을 보내고 나서 갑자기 결혼을 하고 모든 일과 학업을 그만두고 중국으로 가야 했다. 이제 막 일이 손에 잡히고 뭘 해야 할지 감이 왔는데, 아쉬웠다.
남편도 그런 내 맘을 잘 알고 있어 미안해하고 언제든 기회가 온다면 응원해주겠노라 약속했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결혼한 지 2년 만에 꿈을 이뤘다!)
1년의 시간 동안 확실히 알았다. 좋은 동료들과 재미를 느끼고 내 커리어에 향상이 되는 일을 하게 돼서 행복하다는 것과 이것이 내 '업'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임신한 대상자들을 만나고 인터뷰할 때, 그들이 준 소중한 자료들을 엑셀에 입력할 때, 오류를 수정할 때, 통계 프로그램에 돌려서 조사한 자료들이 나올 때, 유의한 결과들이 나와서 발표할 수 있을 때, 짜릿하고 재미있었다.
따로 떼어 놓았을 때는 알 수 없던 사실을 '발견' 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가장 먼저 연구자가 컴퓨터 책상 앞에서 이 놀라운 사실을 확인한다는 점, 놀라움과 행복감이 교차하며 '일이 재밌다!'는 느낌이 들어왔다.
봉사단원 때는 재미있는 '것'을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사람들이 부러웠는데 이젠 나도 누가 왜 그 일을 하냐는 질문에 "재밌어서요."라고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나이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서서히 사회 초년생을 벗어나니 나보다 어린 동료들,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네들과 나눈 이야기 속에 우린 같은 고민을 갖고 있었지만 내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명확하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어떤 방향으로 갈지 알고 있었다.
'보건'이 재밌고, 공공을 위해 일하는 곳에 갈 거야.
나는 그게 국제든, 감염병이든, 암이든 상관없어.
보건과 연구와 조사를 할 수 있는 곳이고, 남편 하나 먹여 살릴 만큼 감당되면 돼.
이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내가 봉사단원 시절, 자신의 길을 알고 있던 자들을 향한 존경과 동경의 눈빛이 이런 느낌이었을까, 되돌아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