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편의 빠른 은퇴 기원하기
*본 글은 종이책 출간 전 발행 글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향후 출판 서적으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남편은 3년 차 직장인
학교를 세 번이나 갈아타고 30의 문턱에서 현재 직무에서 신입으로 취업했다. 중간에 1년 영양사를 한 경력은 있지만 지금 하는 일(연구/개발)과는 달라 사실상, 본격적인 직장생활은 30살부터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연애시절부터 결혼할 때까지 프러포즈는 따로 없었지만 ‘내 아를 낳아도’ 같은 유혹의 문구가 있었다.
“3년만 일해. 그리고 평생 살림만 해줘.”
이것은 남자가 여자를 꼬시기 위한 사탕발림 딕션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를 꼬시기 위한 진실(?)한 약속이었다.
꼬시는 건 성공했는데 약속이 너무 허황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올라올 무렵, 정말로 남편이 3년 차 직장인이 된 시점에 와이프인 내가 갑자기 취업에 성공했다. 사탕발림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기혼여성이 외벌이가 되는 길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가 없지.
코로나 19로 사업지인 방글라데시에서 입국이 금지되고 현지 파견이 무기한 연장되면서 남편의 상반기 (6-7월) 사직도 기약 없이 미뤄졌다. 이러다가 파견이고, 은퇴고 무산될까 봐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한국에서 전세 대출 이자, 내 석사 학비, +1인의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벅찼으니 현실감각 뛰어난 남편은 절대 사직하고 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긴급회의를 열었다.
현 상황 :
아내 - 취업지(방글라데시) Lock down으로 인해 4월에도 출국 못함, 친정집에서 서울 출퇴근 중
남편 - 직장(중국) 기숙사 생활이 더 빡세 짐; 주 6일 근무, 시도 때도 없이 상사들의 술자리에 불려 다님 (회식 극혐자)
집 - 중국; 11월 15일 계약 만료, 한국; 1억짜리 전세대출받으려면 다달이 50 이상씩 이자 나감
급여 - 둘이서 따로 살면서 벌면 한 달에 쓰는 비용이 50만 원 내외로 듦, 주거비 등에 나가는 비용이 없어서 고스란히 저축 가능, 당장 그만두면 최대 6개월 동안 모이는 비용을 못 모아서 아쉬움
고로 올해까지 우리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텨보기로 했다. 다행히도 나의 일하고자 하는 강렬한 의지를 보아선지 남편은 그만두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잠정적으로 10월에는 주거비 문제로 회사에 얘기를 해야 하니 만일 코로나 사태로 인해 와이프의 출국이 미뤄지면 최장 10월까지 회사를 다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썸 시절부터 서로의 꿈과 이상을 잘 알아차렸다. 남편은 경제력이 있는 여성과 결혼해서 현부양부(=현모양처)가 되고 싶어 했고, 나는 살림력 있는 남성과 결혼해서 노년기까지 일하다가 과로사로 사망하는 이상적인 삶을 꿈꿨다.
요리와 주방일에 능숙한 그가 썩 맘에 들었는데 나를 좋아해 주기까지 해서 들이대니 얼씨구나, 행복하게 받아줬다. 그래도 나름 흥선대원군인 그는 결혼비용과 집을 마련하기 위해 해외취업까지 해서 롱디를 하다가 결혼을 하자고 불렀다.
스스로 고전적인 여성 역할이 썩 어울리지 않는 걸 알고 있었지만 감수하고 한국에서의 생활을 훌훌 정리하고 신혼을 살러 중국으로 갔다.
겨울의 문턱에 가서 봄이 되자 나는 깨달았다.
‘아, 주부는 역시 내 길이 아니구나. 답답해. 일하고 싶다.’
동시에 남편이 은퇴를 하려면 내가 얼마나 벌어야 할까, 경단녀가 돼 버려서 지금 남편이 버는 거에 반이라도 벌 수 있을까. 불안함이 고개를 들며 초기 불안장애까지 왔다.
자아실현이 없어지면 벌어지는 일
공부의 좌절과 결과의 불안함을 안고 있는 나와 함께 하는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아, 직장생활 xx하기 싫다. 풔킹 군대문화, 풔킹 꼰대 문화.......’
사람들이 한심하다고 손가락질하더라도 집에서 일이던, 살림이던 하기를 바랬지만 대출이자에 허덕이지 않기를 바라는 남편은 쉽사리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안정적인 목돈(수도권 아파트 전세받을 수 있을 정도)과 배우자의 높은 연봉이 없었기 때문이다.
배우자인 내가 병원 3교대 간호사 생활을 선택하지 않는 한, 기존의 연구직 등을 선택한다면 지금만큼 풍족한 생활은 보장할 수가 없기에 주거비, 생활비 걱정이 덜한 개발협력 관련 일자리를 찾아서 타 국가로 가는 것이 당장 남편의 사직을 장려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래서 파견을 가는 직업으로 취업도 하고 계약이 끝나고 돌아와서 직장을 잡으려면 석사 졸업장이 필요하기에 석사도 시작했다.
한편으론 만약 한국에서 지금 받는 급여로 남편이 집에서 살림만 한다면 과연, 나는 남편이 내게 해줬던 만큼 편하게 살림만 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서로 돈이 부족하다고 스트레스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지만 당연한 고민이고 직접 살아봐야 알 수 있는 일들이긴 하다.
그래도 우리는 1년간의 중국생활을 통해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적성에 맞는 일과 부부가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돈은 모자랄지언정 행복하다는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집에 있으면서 편하게 취미생활하고 살아봤는데 일 다니는 지금이 삶의 만족도가 더 높아졌다. 아마 남편도 산 입에 거미줄만 안 치면 손바닥만한 생활비로도 살림을 잘 꾸려나갈 것이다. 그리고 집에 있으면서 신체적, 심리적 건강을 되찾고 삶이 평온해지면 덩달아 나도 평안해질 것이다. 그럼 우리가 같이 사는 이유와 목적에 도달할 수도 있으니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