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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치 Oct 27. 2024

산타의 글씨체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려 보면 그때 받았던 선물도, 방 안 풍경도 이젠 희미하지만, 유독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은 산타가 주고 간 카드에 쓰인 글씨였다. 지금도 그 카드를 보고 있는 내 모습을 떠올리면 미간을 찡그린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카드에 쓰인 글씨체가 묘하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기 때문이다. 한껏 멋을 낸 엄숙한 궁서체에 가까운 글씨.     


그 글씨체에서는 익숙한 냄새가 났는데, 저녁 시간에 분주하게 끓이던 김치찌개와 내가 좋아하던 계란말이 냄새. 아니면 화장대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온갖 화장품 샘플 사이에서 나는 어른의 향 같은 것이 스쳐 지나갔다.     

그 글씨체에서는 산타의 성격을 느껴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올곧게 뻗은 그 궁서체는 너무나 바르게 쓰여 있어서, 모든 일에서 잘하고 싶어 하는 완벽주의가 느껴졌다. 그 산타는 매사에 성실하고, 가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주고 싶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바쁘게 살았을 것만 같다.      


그 글씨체에서는 산타의 목소리도 들려 왔는데, 아마 잠결에 나와 오빠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바로 그 목소리. 낮으면서 부드럽고 사랑이 가득한 소리였다.     


이후에도 나는 하교 후에 책상 위에 놓여 진 수첩에서 수많은 메모를 보게 된다.

‘냉장고에 나물 있다. 먹어라’, ‘불고기 있다. 먹어라’, ‘냉장고에 딸기 있다. 먹고 숙제해라.’, ‘된장찌개 데워먹고 학원 갔다 와라.’, ‘냄비에 있는 죽 먹고 약 먹어라.’ 끝없이 이어졌던 다양한 메모들의 향연. 주로 식사를 재촉하거나 할 일을 상기시키던 메모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고, 이 수많은 메모 위의 궁서체와 산타의 글씨체는 너무나 유사한 것으로서 나는 산타의 정체를 알아버린 것이다. 전 세계의 어린이 여러분! 드디어 밝혀졌어요. 우리 엄마가 산타할아버지랍니다. 놀랍지 않으신가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꽃을 피우던 어느 날에 엄마는 본인의 비밀을 스스로 발설해 버린 적이 있었다. 어느 크리스마스이브에 벌어졌던 일이었다. 오빠는 아직 어려 엄마 등에 업혀 있었고, 약을 먹어도 쉽사리 좋아지지 않는 감기에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너무나 아파 울며 보채던 오빠를 달랠 요량으로 다음 날 아침에 주려고 준비해 두었던 탱크를 당장 주기로 결정한 엄마와 아빠는 냉장고 위를 가리키며 ‘어! 저기 산타가 선물을 놓고 갔네!’ 라고 외쳤다. 탱크를 발견하고 장난감에 눈이 먼 오빠는 탄성을 내뱉은 뒤, 순식간에 눈이 두 배는 커졌고, 본인이 지금까지 완벽한 환자 연기를 한 것으로 오해할 만큼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그 탱크에 심취해 저녁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장난감에 심취해 아픔을 잊을 정도였으니 그 해 산타는 선물을 정말 잘 고른 셈이었다.     


12월 24일의 연극은 참으로 우스꽝스럽다. 부모들은 자처해서 산타의 역할을 맡는다. 원하는 선물을 유도해서 미리 들어 두고, 연말 미어터지는 마트나 백화점에서 선물을 고르고 카트에 낑낑 싣고, 예쁘게 포장하고, 카드를 쓰고, 집에 가져와서 잘 숨겨 놓고, 적당한 타이밍에 귀신같이 꺼내 놓고, 아침에 같이 놀라는 척 연기를 하고, 아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으로 막은 내린다. 단지 주는 기쁨을 위해 모두가 돕고 속이는, 어설프지만 아름다운 12월의 연극. 허술한 위장도, 분장도 이날만큼은 괜찮은 것이다. 아무도 조악한 가면과 떨어진 수염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그날은 속기 위한 날이다. 의심을 하는 날이 아니라.     


때로 엄마와 장난이 치고 싶을 때 엄마의 눈을 쳐다보며 질문을 한다. 매우 진지하게. 왜 산타의 글씨체가 엄마랑 똑같냐고? 질문을 들은 엄마는 엄청나게 민망해하고 수줍게 웃으면서 계속 부인 한다. 본인이 한 것이 아니라고. 정말로 우리 집에는 산타가 들렸다가 간 것이라고. 그러면 그 모습이 너무나 웃기고 재밌어서 정말로 산타와 글씨가 똑같았다고 다그치고 또 다그치지만, 우리의 앙증맞은 범인은 증거가 있음에도 절대 시인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간이 흘러 이 이야기가 잊힐 때쯤 나는 또다시 그 질문을 꺼내고 이 재미있는 이야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산타의 정체를 알고 나자 많은 편지와 카드들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수능 시험 날, 도시락에 들어있던 쪽지 위의 절절하면서 담백했던 응원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화려하고 커다란 생일 꽃바구니에 담긴 카드 속 축하도, 못된 말로 대판 싸우고 나서 받은 편지도, 모두 다 산타의 엄숙한 궁서체였던 것이다. 공기처럼 항상 내 주변을 맴돌면서 온갖 종류의 모양과 색상으로 애정을 표현하던 글씨. 한순간 외국어를 깨친 후 주변 환경 속에서 글씨를 읽기 시작하는 사람처럼, 그동안 봐 왔었지만 알아보지 못했던 글씨의 진심들이 이제는 생기를 띤 채 빛나며 다가오는 것이다. 그 글씨들의 안쪽에는 꾹꾹 눌러 둔 따스한 것들이 넘실거렸고, 가까이 다가와 포옹하는 문장들은 부드럽고 안락했으며, 그들이 전달하고자 했던 모든 메시지를 해석했더니 결국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단어, 사랑으로 풀이 되었다.     


이제는 범인의 시인 없이도 글씨만 봐도 산타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만약 선물 포장지를 뜯던 그 순간 오빠와 내가 탱크나 인형을 보지 않고, 그 선물을 전달해 주던 엄마와 아빠의 눈빛이나 표정을 봤다면, 비록 어린아이일지라도 그 선물이 어디에서 왔는지, 산타가 누구인지, 왜 전날 엄마는 그렇게 분주했는지 알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그 어린아이들이 선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산타의 정체를 알아챌 수는 없었을까?에 대해 몇가지 가정을 해본다.     


만약 글씨에 더 가까이 코를 대고 맡았더라면, 엄마가 가장 오래 썼던 베이지색 꽃무늬 베개, 그 베개에 코를 박고 맡았던 바로 그 향이 떠올랐을 것이다.    

  

만약 글씨체를 더 연구했더라면 너무 과하게 사랑하기에, 그 과함으로 인해서 다그칠 수밖에 없었던 조급한 마음이 느껴졌을 것이다.     


만약 편지에 조금 더 귀를 기울였더라면, 모든 집안일을 마치고도 피곤한 기색 없이 우리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던, 그것도 공주님과 왕자님, 동물 친구들의 기분과 감정까지 모두 표현하며 다양한 억양과 강세로 동화책을 읽어주던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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