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태어난 오빠의 눈동자에 비친 엄마의 표정이 기억난다. 엄마의 눈동자에 비친 오빠의 모습도.
지금은 나이롱 신자인 엄마의 40여년 전 기도에 힘입어 크리스마스 이브에 아기 천사같은 아들을 낳은 것이다. 외할머니는 나와 오빠를 번갈아 시장에 데려갔지만, 여동생에게 화려한 옷을 입히고 리본을 달아도 오빠를 향한 반응에 영 미치지 못했다. 할머니의 다정한 친구들은 등에 업힌 아기를 들여다 보며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으리라. 그리고 물었으리라. 그 예쁜 아기는 어디갔냐고... 물론 이 아가도 귀엽지만...
이렇듯 누구나 인정할 수 밖에 없이 착하게 예쁘게 생긴 오빠는 초등학교 때부터 여학우들의 편지와 초코렛을 집으로 가져왔고 나는 배를 깔고 누워 그것들을 하나씩 까먹었다. 그리고 때때로 날라리 언니가 뜨악하는 표정으로 나를 보며 “니가 00이 동생이야?”라고 물을 때면 나는 초코렛을 훔치다 들킨 표정으로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내가 오빠와 공통점을 찾는 것이 난제에 처했을 때는 이미 그 이상으로 공통점이 없었을 엄마와 아빠의 노력의 세월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나이가 들어 버린 것이다. 이상하게 누군가 내 머릿 속에 잠입해 10대 시절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쓱 잘라낸 것 마냥 오빠와의 기억도 오래된 기억이 더 생생한 것이 많다. 이상하리만큼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던 둘은 방 안에 온갖 장난감과 완구들, 심지어 집에 굴러다니던 펜까지도 이야기 속의 조연으로 삼아서 출연시켰고, 서로가 플레이 중인 영화인지 게임인지 정체 모를 스토리 속에서 신박한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놀았다. 예를 들면 펜의 이름은 유령펜촉이었고, 이 펜이 장난감에 닿으면 그 장난감은 십분 동안 투명망토를 쓴 것처럼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아 적진에 들어가기 유리한 고지를 접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지금 생각나는 것들이다.
두 명의 작가는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싸우기도 뭉치기도 하였는데, 전자의 기억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투쟁을 하고 있는 곳은 티비 앞이었는데, 한 명은 리모컨을, 한 명은 티비 모니터 옆의 채널 버튼에 손을 대고 대치 중이었다. 그는 통키를, 나는 세계명작 동화를 사수하기 위해 엄청난 사투를 벌였는데 그 강도는 지금 생각하는 것 만큼 귀여울 법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처럼 다시보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재방송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있다 하더라도 어린이의 스케줄은 사실상 부모의 일정에 달려 있기 때문에, 지금 여기서 보지 못하면 영원히 보지 못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절박한 심정 속에서 동 시간대 하던 두 애니메이션을 사수하고자 하는 서로 다른 취향의 두 작가는 진심을 다해 서로의 채널을 눌러대기 시작했고, 광증에 걸린 티비처럼 양쪽의 채널을 번갈아 오가는 중 서서히 광고가 끝나가고 있었다. 치열한 접전 끝에 여러 방향의 결론에 이르렀는데, 채널버튼을 누르던 내 손 위로 오빠가 더 세게 꾸욱 눌러서 오빠의 손톱에 찍힌 손가락을 붙잡고 화를 내기도, 오빠가 져 준 것인지 친구랑 놀러 간 것인지 갑자기 비련의 남주인공 행세를 하면서 집을 나간 적도, 통키의 유행이 커지며 내가 대세에 따른 적도 있었다. 어쩌면 대부분 패배했던 내가 스스로 고통스러운 기억을 삭제한 것인지 결론 부분은 명확하지가 않다.
물론 선호 장르의 차이로 싸움을 빚기도 했지만, 사실 우리는 이야기 앞에서 협력한 적이 더 많았다. 우리의 명확한 장르 선호도 차이 중에서 일치하는 단 하나가 있었으니, 중국 전통 사극류였다. 다른 장르 앞에서는 으르렁대던 둘도 삼국지 만화책이니, 중국 사극 앞에서는 순한 어린양이 되어 짜식 이걸 알아보네 같은 흐뭇한 심정으로 공유하였다. 그리하여 당시 티비에서 유행하던 포청천을 위하여 우리는 더욱 힘을 합치기 시작했다. 지금도 없는 건 아니지만 당시엔 더더욱 티비보지 말고 들어가서 공부해야지의 분위기가 한층 짙었던 시기였기에. 포청천을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관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 끝까지 볼 수 있었을테고, 그게 아닌 경우에는 공부하러 방에 가야 하는 슬픈 상황이 생겼던 것 같다.
따라서 포청천이 시작할 즈음 엄마아빠가 앉은 쇼파 아래쪽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앉은 후 끝날 때까지 유령펜촉의 힘을 빌린 듯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게 관람하는 것이 베스트였다. 그러나 이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고, 우리는 방으로 떠밀려 여러 번 들어갔다. 아쉽게도 복도형식의 우리 방 쪽에서는 티비화면이 보이지 않았고, 우리는 복도쪽에서 매우 간절하고 비밀스럽게 상의를 했는데, 포청천을 풀로 다 보는 것은 포기하더라도 일부만 보는 방법으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물을 마신다는 핑계로 부엌에 있는 냉장고 옆으로 가서 티비를 향하면 측면이긴 하지만 그래도 포청천을 볼 수가 있는 것이었다. 역시 첫째의 든든함으로 오빠가 먼저 출격에 나섰다. 피노키오가 갓 생명을 얻은 듯 어색한 걸음걸이로 부엌으로 향하는 오빠의 뒷모습을 보니 스파이 영화 속에 들어간 듯 떨렸다. 오빠는 모든 계획된 동작의 목적은 갈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연기를 하고 있었다. 오빠의 얼굴 위에서 떨림과 우스꽝스러움이 함께 공존 하며 뛰놀았다. 최대한 많은 영상을 눈으로 담고 싶어 눈은 티비에 고정시킨 채 손은 최대한 느린 속도로 컵을 찾고, 물을 따르는 연극을 하고 있었는데, 주의할 점은 너무 느리면 잔소리에 의해 방으로 소환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모든 것은 적당함 안에서 이루어져야 했 던 것이다. 행복하던 오빠의 눈빛이 이제 어두워졌다. 더 이상 거기에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리라. 마지막 한모금까지 마친 오빠는 갈 때보다 더 느린 속도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거실과 복도의 경계를 넘어서며 아쉬움과 짜릿함을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생생한 미소로 나를 웃게 했다. 복도에서 소리를 죽여 낄낄대며 ‘봤어? 봤어?’라고 물어보던 그 순간들. 우리의 협력은 우리의 놀이였다.
12월 24일,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 이브.
천사는 태어나면서 꿈에도 생각지 못했겠지? 새까만 악마같은 여동생이 2년 후 태어나 너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친구들끼리 놀러 나가는데 눈치도 없이 끼어들고, 사사건건 괴롭힐 거란 사실을.
갓 태어난 오빠의 눈동자에 비친 엄마의 표정을 보진 못했지만, 왜 기억이 날까?
엄마의 눈동자에 비친 오빠의 모습도 희미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만들었던 상상 속의 캐릭터 유령펜촉의 도움으로 나는 아주 잠시동안 오빠가 태어나던 그 병원에 다녀왔던 것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