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방문했던 태국의 카오산로드. 조명을 밝힌 야시장 매대 사이로 잭 존슨의 편안하고 매력적인 사운드가 흘러나온다. 나른해지면서 동시에 기분 좋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은 음악. 해가 지고 있었다. 가이드 없이 간 최초의 여행지에서 나는 정말로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모든 새로운 것에 심취해 있었다. 놀이터에 처음 간 어린아이처럼.
신기하게도 그의 노래에는 첫 배낭여행자가 꿈꾸는 모든 판타지가 가득하다.
영화에서 다음 장면이 나오기 전에 뒷 장면의 소리가 먼저 흘러나오게 하는 기법을 j컷이라고 한다. 내 기억 속에서도 j컷으로 노래가 먼저 흘러 나온다. 영화에서 몽타주로 노래를 깔고 즐거웠던 주인공의 기억들을 모아 보여주는 구성처럼, 그의 노래 위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흥겹고 여유롭고 싸우지 않으며, 설령 부딪히거나 무언가 구겨진다 해도 고무로 만든 회복탄력성 새싹모형 같이 어느 한 부분도 상하지 않고 무결하게 제 모습을 복원한다.
그의 노래 안에서는 모든 사람이 서투른 영어에 비웃지 않고, 동양의 여자애를 성적인 눈으로만 보지 않으며 모든 초심자가 기대하듯이 한 조각의 진실된 마음으로 대화한다. 그리고 어쩌면 beatiful이나 pretty같은 예쁜 단어에 날을 세우고 경계하지 않고, 단어 그 자체로 받아들여도 되는, 받아들일 수 있는, 순박한 공간이 조성된다.
그의 노래와 함께할 때는, 나는 날듯이 걸을 수 있으며, 그 누구도 그 걸음걸이를 놀리거나 조롱하지 않는다. 어떤 지루함도 없이 모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나무로 조각된 소중한 동물 인형을 세상에 단 한 개뿐이라고 굳게 믿고, 거금을 내고 행복하게 데려온다. 밤이면 그날의 전리품을 더러운 게스트하우스 이불 위에 펼쳐 놓고 그들과 하나씩 눈을 맞추며 잠이 들고, 캐리어에 짐을 쌀 때는 가게에서 처음 했던 포장의 서너 배에 가까운 과대포장을 시작한다.
그의 노래를 들으며 밥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때는 모든 음식이 어떻게 다섯 배쯤 맛있어지는지, 기적 같은 조미료와 다름이 없다. 탐욕스럽지 않게 음식을 맛보면서 오직 먹는 것에 충실하게 된다. 순수한 맛의 즐거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부분은 노래 덕이 아닐 수도 있겠다. 태국 현지의 맛 자체가 잊고 있던 음식에 대한 사랑을 일깨웠을 가능성이 높다.
그의 노래는 머리에 꽃을 얹고 엎드려 있는 거대한 똥개이거나, 짐 톰슨 하우스에서 돈이 모자란 관광객이 뒷자리에 숨겨 둔 마지막 하나 남은 스카프이다. 조식을 기다리던 빨간색 체크무늬 야외 테이블 위의 하늘이며 어색하고 통통한 비키니 차림이다. 양 모서리가 다 닳았지만 버리지 못하는 박물관 팜플렛이고, 수년이 흘러 방 정리 중에 발견하게 되는 놀라움이다.
영화에서는 앞의 장면이 끝나고서도 앞 장면의 사운드가 뒷 장면까지 이어지는 L컷이 있다고 한다. 그의 노래와 그의 노래가 울려 퍼지던 가판대, 그 가판대 주위의 어둠과 어둠을 물들이던 조명, 불쾌하지 않았던 주변 사람들의 소음이 한 데 어우러진 내 회상의 한 장면이 끝나고도 그의 흥얼거림은 계속해서 내 귓가에 흘러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