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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Oct 26. 2018

미친 듯이 옥토버페스트

글에서 술 냄새가 나진 않을까 걱정입니다.

 10월의 축제라는 의미를 가진 옥토버페스트이지만 사실 그 큰 축제의 올해 개막은 9월 22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옥토버페스트의 막바지를 즐기고 뮌헨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는 친구의 기숙사가 10월부터 시작되기도 해서 진짜 10월에 축제를 즐기러 왔습니다. 결과적으로 정말 원 없이 맥주를 마시고 취하고 즐기고 돌아왔는데, 저처럼 따라 하면 많은 돈과 조금의 기억을 잃어버릴 수 도 있다는 말을 시작으로 옥토버 페스트를 즐기는 방법을 얘기하고자 합니다.


 '아침과 저녁의 두 가지 다른 매력' 

 옥토버페스트의 맥주 텐트는 그 안에 들어가면 텐트 천장에 있던 하늘을 보고 '아 야외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구나'라고 착각할 정도로 그 규모가 큽니다. 그리고 텐트 안에서 들을 수 있는 음악대의 연주 그리고 맥주 원샷에 도전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함성과 실패자에게 쏟아지는 야유 등 텐트 안에서만 즐길 수 있는 거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예약도 없이 불쑥 행사장에 나타난 사람에게 저녁의 텐트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고 맥주를 즐길 수 없느냐? 그것은 전혀 아닙니다. 사실 저는 첫날에 뮌헨에 도착하자마자 한인마트를 들르느라 늦은 오후에 옥토버 페스트장을 처음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친구들을 만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텐트 밖에도 좌석이 많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텐트 밖에 남는 자리가 보인다면 빠르게 가서 앉으면 그곳이 나의 자리! 앉자마자 맥주를 시키고 축제를 즐기면 됩니다. 그래도 텐트 안에서 들리는 흥겨운 소리에 못내 살짝 아쉬워질 때쯤 자리를 옮겨 다른 텐트에서 바깥 자리를 찾으러 들어갔습니다. 이전보다 깊어진 저녁에 훨씬 붐비는 야외 테이블들 사이 반쯤 비어있는 좌석에 친구들에게 앉아도 되겠냐고 물어봅니다. 괜찮다는 대답을 받고 친구들이 모여들고 긴 테이블이 꽉 차게 두 팀이 앉았는데 서로 화장실을 다녀오느라 하도 일어서고 앉았다를 반복해 마지막엔 그저 한 테이블이 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친구들과 함께 맥주를 나누고 사진도 찍다 보면 텐트 밖도 안만큼이나 축제를 즐기기 좋은 곳이라는 걸 깨닫습니다. 그리고 저녁 옥토버페스트의 진짜 매력은 이 시기에만 모여드는 다양한 놀이기구, 그 위에서 바라보는 축제의 야경입니다. 살짝 텐션이 오른 채로 자이로드롭에 올라서 저 아래 다른 놀이기구의 불빛들과 텐트 앞에서 잔을 부딪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회전 그네에서도 야경을 구경하기 좋다고 들었는데 저는 못 타봤지만 누군가는 도전해보길 바랍니다.

 그래도 텐트 안에 한 번쯤 들어가 보기 위해서 다음날은 아침 일찍부터 옥토버페스트장에 도착했습니다. 9시 개장을 기다리며 줄을 서 있는데 이미 맥주를 밖에서 사들고 마시며 기다리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아마 가장 합리적으로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지 않을까요. 저랑 친구는 개장을 하자마자 텐트 쪽으로 뛰어갔는데 만약 주중 아침이라면 그렇게까지 뛸 필요는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다 한적한 행사장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는 무리의 앵글을 한번 방해했었거든요. 빅 텐트 마다도 아침 느낌이 많이 다른가 봅니다. 처음으로는 뮌헨 6대 양조장 중의 하나인 Hacker pschorr(해커 프쇼르)의 텐트에 들어갔습니다. 여유로운 텐트 안에 삼삼오오 모여있는 웨이터들을 빼면 거의 첫 번째로 들어가 맥주를 시키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이제 슬슬 낮술을 하러 텐트로 들어오는 가족단위, 친구 단위의 손님들이 보이고 노란색 리본으로 장식된 천장이 아늑한 느낌을 줘서 엄청 큰 텐트에도 불구하고 여유롭게 즐기다 온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한 손에 프레즐을 들고 프레즐이 든 바구니를 메고 테이블과 테이블 사이를 돌아다니는 상인에게 큰 소금 알갱이가 속속 박혀있는 프레즐도 사서 맛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여유롭고 소소한 분위기에서 친구와 텐트를 즐길 수도 있고, 두 번째로 들어간 Augustiner(아우구스티너) 텐트에서는 저녁 못지않게 아침 텐트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이미 사람들도 붐비는 텐트에 예약이 되어있지 않은 좌석을 찾고(예약 시간이 적혀있어 해당 시간이 아니라면 따로 예약 없이도 앉을 수 있습니다.) 아침부터 오케스트라가 텐트 안을 울리게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부르고 흥을 돋우고 있었습니다. 어제저녁 창문으로 봤던 풍경처럼 맥주 원샷을 도전하는 사람들도 하나둘씩 여기저기 생겨났습니다. 맥주 원샷을 한 사람들은 안전을 위해 경호원에게 붙들려 텐트를 나갔다 와야 했지만 아침 아우구스티너 텐트에선 이미 지금이 저녁인지 아침 인지도 모르게 술을 마셨습니다. 그러고 밖을 나와 아직도 해가 떠있는 것을 보면서 취한 상태로 점심을 먹으러 갔고, 잔디밭에서 낮술을 하고 낮잠을 자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체력만 좋다면 이렇게 아침부터 전날 저녁까지 하루 종일 노는 것도 해볼 만하다 생각합니다. 


'양조장마다 다른 맛'

 정말 진정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맥덕들에게는 텐트를 돌아다니며 갓 오크통에서 꺼낸 뮌헨의 유명한 양조장의 생맥, 심지어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맛보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겁니다. 저도 사실 맥주 맛의 세세한 차이까지 알아가며 마시진 않지만, 여행을 다니며 이곳저곳의 맥주와 술을 즐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옥토버페스트는 이미 천국이었습니다. 저는 앞에 언급한 Hacker pschorr, Augustiner 외에도 Löwenbräu(뢰벤브로이), Paulaner(파울라너), Hofbräuhaus(호프브로이하우스)까지 총 다섯 종류의 양조장 텐트에 들어가 옥토버페스트 맥주를 마셔보았습니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만 평가를 하면 뢰벤브로이 맥주가 가장 깔끔한 느낌의 맥주였고 아침에 마셨던 해커 프쇼르 맥주는 아침부터 시달리던 갈증을 딱 시원하게 내려가게 해주는 꿀맛의 맥주였습니다. 이건 정말이지 아침에 처음 먹은 게 맥주여서 나오는 주관적인 평가지만요. 아우구스티너 맥주는 고소한 보리 맛이 많이 나는 느낌의 맥주였고 아우구스티너만큼이나 붐볐던 호프브로이하우스도 진하고 고소한 맥주였습니다. 저는 라들러를 시도하진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 말로는 라들러도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맛있는 맥주였다고 합니다. 

 마스 비어(Maß bier) 한잔에 홉향과 보리의 맛 감칠맛까지 있어서 굳이 안주가 없어도 맛있게 즐길 수 있었던 맥주였고 괜히 여러 텐트를 옮기며 자연스레 맥주 맛을 비교하며 멋있어 보이는 대화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진짜 옥토버페스트, 맥주 축제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체크에 멜빵이 있다면'

 저는 덴마크에서 교환학생으로 학교를 다니던 중에 옥토버페스트를 즐기러 간 것이어서 이른 아침 코펜하겐을 출발하는 비행기로 뮌헨으로 갔습니다. 그 날 첫차를 타고 피곤한 상태로 공항 게이트 앞에 도착했는데, 그런 나머지 게이트 앞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깼었습니다. 그때 눈앞에 보인 건 파란색 체크무늬가 촘촘히 박힌 셔츠에 가죽 반바지를 멜빵과 맞춰 입고, 두꺼운 양말과 구두를 신은 남자들의 모임이었습니다. 레더호젠이라 부르는 뮌헨의 남성 전통의상을 덴마크에서부터 맞춰 입고 갈 친구들이 있다는 게 그저 부러웠습니다.

 뮌헨에 도착해서도 다양한 색의 체크 셔츠와 다양한 디자인의 레더호젠 그리고 여성 전통의상인 던들(dirndl)을 입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치 옛날에 유치원에서 단옷날이면 한복을 맞춰 입고 등원을 하던 기억이 있는데, 그때처럼 어린 꼬마 아이부터 나이 지긋하신 노부부까지 사이좋게 전통의상을 맞춰 입고 오셨습니다. 마치 뮌헨에서는 집집마다 개인용 레더호젠과 던들을 갖고 있는 듯했고 근처의 작은 가게들에서도 전통의상을 파는 가게들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실제로 뮌헨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서도 던들을 사서 입고 온 친구가 있었고, 만약 남자라면 촘촘한 체크무니 셔츠! 그리고 가죽이면 좋겠지만 가죽 반바지가 평소에 있을 리는 없으니 갈색 계열의 반바지 거기다 멜빵까지만 있다면 완벽하진 않지만 충분히 스스로 이 축제의 한 부분이 된다는 느낌을 내기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Ein Prosit~ Ein Prosit~'

 아직도 머릿속에 "아인 브로쉬, 아인 브로쉬~"라는 정확한지 아닌지 모르겠는 발음으로 맴도는 노래가 있습니다. 독일어로는 위에 작은따옴표 안에 적힌 제목의 노래를 텐트 안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고 목청이 큰 악장이 노래하면 잔을 치켜들고 짠을 할 준비를 하면 됩니다. 그러다 노래가 끝나면 아인, 쯔바이, 드라이를 외치고 함께 건배를 하면 됩니다. 독일어로 건배를 Prost라고 한다고 독일로 교환학생을 간 친구들에게 배워서 잘 써먹고 왔는데, 저는 가서도 종종 "스콜"(skål)이라고 학교에서 익숙했던 북유럽식 건배를 외치곤 했습니다. 우리 테이블 말고도 저 멀리 앉아있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서 멀리 건배를 하기도 하고, 앞자리 뒷자리 친구들과 노래 때마다 건배를 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도 합니다.

 이렇듯 짧은 말이라도 여행을 하면서 현지의 단어를 익혀두면 유용할 때가 많은데, 옥토버페스트에서는 Ein prosit 노래에 맞춰 독일어로 1,2,3을 셀 수도 있고 숫자만 익히면 무리 없이 자신 있게 맥주를 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이 몇까지 있는데, 손을 들고 직원을 부르는 행위는 자칫 무례하게 여겨질 수 있으니 최대한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내 주문을 성공시키도록 합시다. 그리고 빈 맥주잔 역시 테이블별로 당담 웨이터가 정해져 있기에 원래 마시던 곳에 두어야 합니다. 메뉴판을 보면 옥토버페스트용 마스 비어는 11.5 이런 식으로 11유로에서 12유로 사이로 가격이 매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주로 잔돈을 팁으로 갖는 문화에 맞춰 사실상 한잔에 12유로라고 생각하고 계산을 하시면 편리합니다. 종종 팁을 따로 받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점 단위로 가격을 맞춰주면 팁을 따로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옥토버 페스트의 숨은 공신들


기억은 사진으로, 부채는 숙취로
한 잔이 두 잔이 되고, 두 잔이 세 잔이 되는 마법

 팁까지 내고 나면 한잔에 12유로, 아무리 1리터짜리 맥주라고 해도 싼 가격은 아닌 듯합니다. 저는 또 옥토버페스트 특유의 분위기,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 휩쓸려 모든 술을 축제에서 마셨는데 덕분에 거금을 탕진하고 한동안 궁핍한 생활을 했어야 했습니다. 더군다나 저는 유로가 없어서 친구에게 나중에 돌려주기로 하고 맥주를 마셨더니 수중에서 돈이 나가지 않아 금전 감각이 사라졌었지요.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자신이 축제에서 쓸 만큼의 현금만 들고 다니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하지만 맥주값만 계산에 넣었다가 놀이기구와 슈바인학센, 슈니첼 가게를 들르지 못할 예산이면 곤란하겠지요? 본인이 얼마나 마실지, 또 옥토버 페스트 맥주는 각 양조장에서 특별히 일반 맥주보다 도수를 높게 제조하고 그 양도 리터 단위로 판매를 하니, 고려하고 술 말고도 충분한 즐길거리를 계산에 넣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축제장 밖을 나가도 마트나 편의점에서 옥토버페스트 비어를 싼값에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일은 마트가 일찍부터 닫으니 밤에 숙소에서 파티를 이어나가실 분들은 아침이나 전날 미리 준비를 해 두는 게 완벽한 방법입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저처럼 잃어버린 기억을 사진으로 되살리고, 친구에게 진 부채만큼의 숙취를 안고 다음날 일어나는 일 없이 충분히 옥토버페스트를 즐길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정리해본 제 경험을 비롯한 나름의 소소한 팁인데, 막상 글을 다 쓰고 보니 제가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혹시 누구든 다음번 축제에서 제 글을 읽고 만난다면 반갑게 아는 척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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