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행을 정리하는 법 Apr 01. 2018

지브롤터 감시기지

이곳은 게임이 아닙니다.

 평소에 게임을 즐겨 하진 않는 편인데 그래도 종종 남들이 하는 게임이면 하곤 했다. 그중에 이젠 누구나 들으면 아는 게임인 '오버워치'도 있다. 그리고 내가 이번 겨울 지브롤터를 다녀왔다고 하면 누구나 당장에 이 게임을 떠올리곤 한다. 나도 사실 오버워치에서 지브롤터를 처음 들었을 땐 실존하지 않는 지명인 줄 알았다. 그렇지만 남들이 가보지 못한 곳이라면 더 가고 싶어 지는 데다가 도로 한복판을 활주로로 내달리는 비행기 사진을 본 순간 지브롤터에 가지 않을 수 없었고 그렇게 지브롤터를 다녀온 생생한 이야기를 이 곳에 남기게 된 것이다.


지브롤터 초입의 지도, 활주로를 지나 위쪽의 초록색이 어퍼락 지역 아래쪽이 마을인 반도이다.

 지브롤터가 그래서 어디에 있는 땅이냐 하면, 지중해의 서쪽 끝자락 스페인 남부에 있는 반도로 땅은 대부분 어퍼락이라 불리는 산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게다가 이곳은 스페인 안의 영국령. 이 곳에 가면 '나는 영국입니다'라고 동네 전체가 말을 하고 있다. 지브롤터가 여행자들은 사로잡는 이유는 첫째 스페인 안의 영국이라니 그냥 한 번쯤 가보고 싶은 곳이고 둘째 어퍼락에 오르면 원숭이들과 더불어 아프리카와 유럽이 동시에 시야에 들어오는 장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고 마지막은 지브롤터 국제공항에 가면 비행기가 도로를 건너는 진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창밖으로 본 알헤시라스 항구
내가 묵었던 Hotel Marina Victoria

 나는 우선 스페인에서 배를 타고 모로코로 갈 예정이 었기 때문에 스페인 남부의 항구도시 '알헤시라스'로 향했다. 알헤시라스에서는 매일 모로코 탕헤르로 가는 배가 출발해서 모로코를 가는 여행자들이 머무는 도시이기도 하고, 일을 하러 스페인을 오는 모로코인 혹은 그 이외에도 전형적인 항구 도시의 정취를 갖고 있는 작은 도시이다. 알헤시라스에서 바다가 잘 보이는 창문을 가진 호텔에 방을 잡고, 우선 내일 당장 떠날 배편을 구한 다음 알헤시라스 버스 터미널에 지브롤터로 가는 버스가 있나 확인하러 갑니다. 지브롤터로 가기 위해선 지브롤터의 스페인 쪽 국경인 La Línea라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분명 버스 시간표에는 버스가 있다고 뜨는데 아무리 기웃거려도 카운터는 문을 열지 않는다.


알헤시라스 버스 터미널


지브롤터행 버스티켓, 요금은 2.45유로이다.

 어쩌냐 고민 끝에 일단은 전광판에 뜬 게이트로 가니 앉아있는 스페인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알 턱이 없고, 무거워 보이는 짐을 들고 있는 중국인 커플이 있었다. '아 여행객이겠구나 그럼 지브롤터로 가려나?'라는 생각이 들어 짧은 중국어로 지브롤터로 가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을 합니다. '표는 어디서 사니?'물으니 다른 건 못 알아들어도 '上车'하나 알아듣고 아 기사님께 표를 직접 사는구나 깨닫습니다. 아직까지 중국인이 없는 관광지를 본 적이 없으니, 중국어를 배워둔 건 정말 두고두고 유용하게 써먹는 선택인 것 같다. 



지브롤터와 스페인 사이의 국경, 차를 타거나 걸어서 쉽게 입국할 수 있다.

 그렇게 La Línea 에 도착했고 저 멀리서 어퍼락이 보입니다. 나는 이번에 지브롤터에 오면서 3가지 목표를 정했는데, 

1. 여권에 지브롤터 도장 찍기

2. 지브롤터에서 피시 앤 칩스 먹기

3. 지브롤터 활주로에 비행기가 이륙 또는 착륙하는 거 보기

였다.

 지브롤터 도장은 국경이 아닌 관광안내소에서 찍어준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나는 한국인이라 입국심사를 크게 걱정한 적이 없었는데 아까 봤던 중국인 커플이 국경(이라고 하기도 뭐 한 곳이지만) 앞에서 멈춰 서 있었다. 사실 아까부터 버스에서 내리고 말을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며 그 커플을 뒤따라가던 중이라 조금 어색한 인사를 나눴는데 남자애가 자기 여자 친구와 출국심사를 같이 가달라고 부탁을 한다. 알고 보니 남자애는 지브롤터에 사는 거주민이었고 여자애가 남자 친구 집에 놀러 온 것. 그러고 나더러도 La Línea 경찰서에 가서 출국심사를 받아야 할 것이란다. 경찰서에서 출국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얘긴 들은 적이 없지만 그래도 같이 가서 출국심사를 받았고 파란색 큼지막한 La Línea출국 도장을 여권에 받았다.


지브롤터의 이층버스 - 런던의 그것과 같이 빨간색을 띄고있다
하늘에 닿아있는 활주로

 지브롤터에 도착하니 반가운 것들이 보인다! 우선은 국경을 통과하자마자 넓은 활주로가 펼쳐져 있다. 진짜 공항을 자주 갔지만 활주로를 이렇게 가로질러 간 적이 없는데, 생각보다 이 활주로 굉장히 넓다... 길다는 표현을 쓰고 싶은데 활주로 길이가 긴 것과 오해를 할까 봐 넓다고 쓴다. 물론 활주로 자체의 길이도 어마어마하고 양 끝을 바라보면 활주로 끝이 바로 바다라 활주로 끝에 지평선이 아닌 바로 하늘이 펼쳐진 광경을 볼 수 있다. 활주로를 가로질러 마을까지 들어가는 데는 거의 20분가량을 걸어야 하니 다리를 아끼고 싶은 사람이라면 두 번째 반가운 친구를 타자. 두 번째 반가운 친구는 바로 빨간색 버스들, 이층인 친구도 있도 아닌 친구도 있지만 런던의 붉은 이층 버스와 같은 색깔을 가지고 있어 '나는 영국입니다~'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더군다나 스페인에 가기 전 런던에서 일주일을 있다 와서 더더욱 반갑게 느껴졌다. 그리고 세 번째로 반가운 친구는 영어, 도로 곳곳에 써져있는 영어 표지판, 가게 간판들이 문득 스페인에선 느낀 적 없는 편안함을 준다. 내가 이렇게 영어를 반가워한 적이 있었던가.


  한적한 영어마을 같은 동네인데, 실제로 곳곳에 영어를 가르쳐준다는 전단지가 있는 것으로 봐선 스페인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방문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열심히 걸어서 런던 한복판인지 스페인 광장인지 그 정체성이 불분명한 광장에 다다랐다. 오, 피시 앤 칩스를 파는 가게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돌아오는 길에 먹기로 하고 우선은 여권에 도장을 찍기 위해 관광안내소를 향해 걸었다.

지브롤터 관광 안내소, 우체국, ATM 나는 영국입니다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 관광안내소가 국경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눈물.. 관광을 다 하고 방문하란 말인가! 그런데 마침 주말은 오후 2시에 문을 닫는다고 적혀있다. 떡하니 자물쇠로 잠가진 관광안내소 앞에서 잠시 멍을 때리다 이제 뭘 해야 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괜찮아 아까 La Línea에서 도장 받았으니 라고 생각하면서 이왕 걸어온 김에 끝까지 걸어보자고 생각을 했다. 


Upper Rock

 원래는 어퍼락에 올라갈 생각이 없었는데, 이미 관광안내소까지 멀찍이 걸어온 탓에 케이블카 출발지점까지 금세 도착을 했다. 중간중간에 가게들이 있었는데 주말이라 하나같이 문을 닫아있다. 종종 피시 앤 칩스에 맥주를 파는 가게나 베이커리들이 문을 열어있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나온 주민들이 테라스에서 담배를 태우고 있는 것을 보니 세상 관광객은 나 하나뿐인 것 같아 기분이 오묘했다.

케이블카 내부와 내리자 마자 보이는 원숭이 가족들
아니야 그 가방은 내꺼라고ㅠㅠ

 어퍼락 케이블카는 대략 15파운드 정도였다. 10분가량 산을 오르자 벌써부터 원숭이들이 보인다. 모로코에서 건너온 이 원숭이들이 아마 오버워치 윈스턴 캐릭터의 모토가 아닐까. 동물을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길 가다가도 고양이가 보이면 한 시간이고 잠자코 앉아있기도 하는 내가 이렇게 원숭이들이 바글바글한 암벽에 오니 원숭이들과 셀카를 찍겠다고 이리저리 난리도 아니었다. 그 와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 크로스백에 새끼 원숭이 한 마리가 달라붙어 매달려 있었다. 아마도 먹을 게 있는 줄 알고 뒤지는 중이었나 보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살짝 가방끈을 풀어 줬더니 아뿔싸 가방을 들고 가버렸다. 얼른 뒤따라가 다시 채오긴 했지만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온 어느 한 가족에게 그 모습이 포착되어 웃음 꼴이 되어버렸다. 여행 내내 당한 적이 없는 소매치기를 원숭이들에게 당하다니.. 이놈들 생각보다 똑똑하다.

아마 세상 가장 경치 좋은 곳에 있는 원숭이가 아닐까

 그리고 어퍼락에 올라오면 이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데, 긴 활주로를 경계로 뒤는 지브롤터 앞은 스페인이다. 날씨가 좋으면 내가 출발했던 알헤시라스부터 곧 갈 모로코까지 눈에 담을 수 있었는데 안개가 짙게 끼여 아프리카를 보지는 못했다.


Rock English Fish & Chips

 그렇게 결국 첫 번째 미션은 실패하고 아까 봐 둔 광장의 피시 앤 칩스 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쓰리심이 지브롤터 끝자락에서부터 작동하지 않길래 걱정했는데 어차피 동네가 너무 작아 왔던 길을 되돌아가니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좀 더 운치 좋은 카페가 있길 바랬지만 주말이라 모든 가게들이 칼같이 쉬고 있었다. 난 그래도 영국이니 피시 앤 칩스를 먹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광장 전체에서 나 혼자 거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그래도 다시 영국에 돌아왔으니 생선 튀김에 맥주까지 한 잔 시켜두고 마지막 여유를 즐긴다. 흠 역시 배신하지 않는 맛.

주말은 칼같이 쉬는 지브롤터의 가게들

 아 그 중국인 커플을 어퍼락 가는 길에 다시 만났었는데 지브롤터에서 자지 않고 하루 만에 돌아가는 것을 아쉬워했다. 그 친구들 이름이라도 물어볼걸 그럼 나중에라도 다시 만날 일이 있지 않을까. 

 지브롤터를 떠날 시간이라 다시 돌아왔던 활주로를 걸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를 탈까 했는데 돌아오는 버스는 또 관광안내소 쪽에서 출발한단다... 이런.. 결국 튼튼한 두 다리만 믿고 활주로를 걸었다.

튼튼한 다리로 지브롤터 활주로를 걷는 사람들
지브롤터 활주로를 지나는 에어 모로코 항공기

 활주로를 마침 딱 통과했을 때 차단봉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미션인 비행기를 보는 건 너무나 운에 따른 일이라 기대하지 않고 있었는데 이렇게 볼 줄이야. 차단봉이 내려가고 한참이나 지났을까. 에어 모로코로 보이는 비행기가 공항 게이트에서 출발을 했다. 정기편이 운항을 하긴 하는구나. 슬금슬금 머리를 내밀더니 나는 점차 속도를 내며 빨라질 줄 알았는데 내 시야를 벗어날 때까지 끝내 천천히 지나갔다. 사진으로 본 영국항공 비행기는 엄청 커서 어퍼락을 다 가리던데 이 비행기는 뭐랄까 동네 버스가 지나가는 느낌이랄까? 그래도 지브롤터 그것도 도로 한복판의 활주로에서 비행기가 이륙하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돌아오게 되어 다행이었다.


 전부터 정말 어떤 곳인지 궁금했던 곳을 탐사하는 느낌의 여행은 처음이었다. 감시기지란 이름보단 작은 스페인 속 영어마을 같았던 동네에서 세웠던 3가지 목표 중 2가지를 이루고 돌아왔다. 항상 기대하고 실망하는 일의 연속인 여행이 즐거울 수 있는 것도 나름의 성취감과 새로움의 발견 덕이겠지. 

 많은 사람들도 궁금해할 과연 지브롤터가 어떤 곳일까?라는 질문에 내가 느낀 점을 장황하게 풀어놓은 이 글을 통해 답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아니 물론 직접 가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Fin


 


이전 01화 BELTANE & POP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