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되면 꽃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다니는 직장 근처엔 응봉산이 있는 데 봄이 되면 개나리꽃으로 뒤덮인다. 산이지만 계단을 이용하면 정상까지 10분이면 도착한다. 조선시대엔 왕이 매 사냥터로 자주 찾은 곳이라는 데 도로와 집들이 없는 것을 상상하면 강과 산 그리고 나무와 숲을 떠오르면 정말 왕의 일에서 벗어나 개인으로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을 거 같다. 개나리꽃뿐만 아니라 벚나무도 있고, 조팝나무 그리고 황매화도 볼 수 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 근처에 사는 시민들이 운동하기엔 적합한 장소다.
자연은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안식처가 되었다. 이성이 있다는 이유로 벌목으로 숲을 파괴하면서 건물이 들어서는 것을 보면 발전이냐 보존이냐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이 아닌 동식물은 여전히 옛 모습 그래도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 오히려 파괴가 되어 거처를 잃기도 하는 데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며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는지 고민이 든다. 자연은 모든 생명을 한 없이 품으며 때로는 인간이 한 행동에 대가를 고스란히 돌려준다. 자신이 품을 수 있는 한도까지 품다가 그렇지 못하면 결국 돌려보낸다는 사실이다.
산책을 하면서 만나는 식물들을 보면 경이롭다. 전에는 계절이 지나니 싹을 띄우고 피우나 했는 데 어느 순간부터 무엇이 이들을 살아 숨 쉬게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없는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름답다는 표현만으로 꽃을 보는 건 아니다. 보고 있으면 잎사귀와 꽃잎을 보고 때론 나무 위에서 피는 나무는 같이 하늘도 바라보게 된다. 한때는 힘들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올려 하늘을 바라본 적이 있는 데 그때 넓은 하늘을 보니 마음이 트였다. 순간, 아 이래서 하늘을 보라고 했던 것일까? 사람은 쉽게 하늘을 쳐다보지 않는다. 굳이 봐야 하나 싶나 할 수도 있는 데 그 하늘을 바라보는 게 힘든 이들도 있다는 걸 그때 느꼈다.
인간은 본능으로 자신에게 처한 위기를 어떻게 서든 극복하려고 한다. 화가나 작가 등 유명한 이들 역시 힘든 시기엔 숲 속으로 산책을 가거나 걸었다. 자연이 주는 편안함에서 자신의 불안정한 모습을 위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난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걸으면서 생각이 정리가 되고 여기에 나무와 식물을 보면 이들을 보면서 혼자만의 상상에 빠진다. 소음이 없는 고요한 공간에서 복잡한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 참 좋다. 그래서 산책을 자주 간다. 여기에 꽃을 보면 그 자체가 너무 신기하다. 어떻게 이런 식물이 있을까... 작은 존재를 발견하면 작은 공간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게 대견할 뿐이다.
우리 인생도 그렇다. 자신이 누구인지 뿌리를 두면서 고통과 슬픔, 기쁨을 겪으면서 삶을 만들어간다. 그러니,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이유가 충분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