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중에 유난히 아이를 좋아하는 애가 있었다. 아이는 그 자체로 귀엽고 순수해서 나 역시 놀라곤 하는 데 그렇다고 너무 이쁘다는 감정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그랬던 내가 아이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카가 생긴 뒤다. 엄마가 전주에 살고 딸들은 경기도 같은 지역에 살다 보니 출산 후 친정 엄마가 해줘야 하는 일들은 언니들 몫으로 돌아갔다. 직장인인 언니와 나는 시간이 나는 대로 동생과 조카를 보러 갔고 요즘도 주말에 돌보러 간다. 신생 아기 땐 입혀주고 재워주기만 하면 되었지만 점점 자아가 생기다 보니 놀이도 같이 해줘야 하는 시간이 늘어났고 해당 나이 때에 무슨 놀이를 해야 하는지 찾아다 보니 자연스럽게 아이의 마음까지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읽다 보니 조카를 알기보단 오히려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계기가 되었다.
난 생각이 많다. 너무 많다 보니 다들 적당히 하라는 조언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그 생각은 주위와 나에 대한 생각이다. 장점보다는 단점을 더 자각하는 게 사람이다. 항상은 아니나 실망된 내 모습에 고민하고 생각을 한다. 도대체 난 왜 이럴까 하고 말이다. 이를 찾기 위해 많은 책도 읽었고 그러다 점점 어릴 적 성장 과정이(이론적으로)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담을 수 없지만 그것을 치우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스스로 그렇게 내 마음을 돌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조카가 생기면서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아동 관련 책을 읽다 보니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드러나는 감정을 읽으면서 어릴 적(기억나는 순간) 내 모습과 비교하게 되었다.
부모에게 혼날까 봐 무엇을 하든지 물어보고 허락받는 아이는 서서히 자존감이 상실된다. 그저 질문만 하는 게 아니다. 그 질문에 아이 의견이 수반되고 여기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자립심이 형성되는 데 이건 성인이 되었을 때 건강한 마음을 갖게 되는 원동력이다. 여기서 부모가 너무 아이 의견을 무시하거나 부모 말대로 하라고 할 경우 수동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릇된 행동으로 아이가 혼나는 경우가 있지만 이를 제외하곤 아이의 의견을 너무 쉽게 무시해서는 안 된다. 현재 종합적인 내 모습을 보고 어린 시절을 떠올려본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기보단 내가 어떻게 시간을 보내며 성장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와 어른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유아기를 거쳐 사춘기 그리고 어른이 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은 그렇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상처, 아픔 등으로 인한 감정을 위로하지 못한 것). 그런데 그 원인도 모른 채 안고 살아가면 남은 시간은 악순환만 될 뿐이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쉽지 않고 또 여기엔 시간이 필요하다. 심리 책을 통해서 내 감정 상태를 알게 된 경우도 있었지만 아이를 통해 나를 알아가는 시선이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 것을 느끼고 놀랐었다. 누구든 어린 시절이 있고 성인이 되어도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유명한 '마시멜로 실험'에서 성인이 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듯이 발달 과정에서 겪는 모든 것은 중요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마시멜로 실험에 대해 최근에 다른 의견이 있다. 그건, 아이가 처한 상황에 따라 기다리냐 그렇지 않으냐는 것인데 이 부분에선 어느 쪽에 의견이 옳은지 고민 중이다).
나는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생각을 한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나약하고 부정적 측면보다는 나를 이해하려는 마음과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할 것인지다. 당장은 답을 찾을 수는 없지만 낙담하는 대신 길을 모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