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과 헤어짐은 한 사람의 생각과 노력으로 할 수가 없다. 물론 인연을 이어가려는 노력으로 성취가 되는 경우가 있지만 대부분 삶에서는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최선이다. 사람에 정이 많거나 특정한 사람과 잘 지냈건 또는 심리적으로 위안을 찾았든 간에 악연이 아닌 이상 쉽게 느끼는 건 허전한 감정이다. 난 타인과의 관계에 민감하다. 이렇게 스스로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건 나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마음이기도 한데 누군가 무엇을 살 때 도움을 주면 그냥 상대방에게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해 주기를 바란다. 귀찮아서가 아니라 선택과 결과에 자신감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런 감정들이 지속되다 보니 스트레스가 되면서 타인과 관계를 유지하는 데 영향을 주었고 의지를 하지 않기 위해 하다 보니 의도치 않는 문제도 발생하기도 했다.
단단한 마음 갖기는 늘 나의 목표다. 이 단단함 속에서는 많은 의미보단 한 가지가 있는데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서는 마음이다. 상처를 받아도 상처보단 나와 다르다는 생각, 어쩔 수 없는 일에 매달려서 감정을 소모하기보단 빨리 해결책을 찾아서 일어서는 등 결국 나를 위한 노력이 들어있다. 사회적 관계는 그 누구라도 힘들다. 단, 그 과정에서 어떻게 보내느냐 차이가 있을 뿐이다. 누구나 편안한 사람을 만나기 원하지만 삶은 그렇지 않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보냈고 또 기억도 가물거리는 인연도 있다. 그러고 보면 죽을 거 같은 그 순간을 잘 견뎌내면 된다는 것을 느낀다.
앞서 적었듯이 난 사람과의 관계가 낯설다(힘들다는 표현 대신 사용한다). 둘이서 만나면 편안하게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상이 되면 말문이 턱 막히고 만나고 오면 피곤해서 그날은 일찍 잠을 잔다. 어느 책에서는 만남 후 유난히 피곤함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방을 너무 의식하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편안함보단 무슨 이야기를 할지, 내 이야기를 반응을 할지 등 신경을 썼고 어색한 침묵이 흐르면 어떡해서든 이야기를 이끌려고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들이 스스로를 피곤하게 하고 더 나아가 사람들과의 만남을 힘들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은 전보다 많이 타인을 의식하지 않는다. 100%는 아니지만 우선 내 기분을 먼저 파악하고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좋은 만남이 있듯이 헤어짐에도 좋은 헤어짐이 있다(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말이다). 헤어짐에 아쉬움을 느낀다면 앞으로 그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이어나가면 된다. 그리고, 소중함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