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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해솔 Jun 22. 2023

처음인데, 같이 뛰시죠

러닝크루 vs 홀로 뛰기

내가 처음으로 러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작년 봄이었다.


당시, 다년간의 고시준비 기간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어서 에너지를 분출할 곳이 필요했다.


경험상 가장 잘 맞는 운동은 요가였지만, 고시생 신분에 3개월 기준 40만 원이 넘는 수강료는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공부하던 스터디카페 근처 헬스장으로 눈이 갔다.


'월 4만 원', 신림 고시촌은 운동 비용도 엄청났다.


시설을 둘러보아도 굳이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게 헬스를 등록하고 일주일이 지났을 때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래서 내가 헬스와는 안 맞았.'


근육맨들이 차지해 놓고 비키지 않는 기구들과 서로를 훑는 눈길들.


나는 자연스럽게, TV를 보면서 아무 생각 없이 뛸 수 있는 러닝머신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퉁. 퉁. 퉁. 퉁.


뛸 때마다 신발이 바닥과 닿는 마찰음이 좋았다.


'여기서 속도를 더 올리면, 어떻게 될까?'


퉁. 퉁. 퉁.


소리가 더 커졌다.


그리고, 내 안에 있던 스트레스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래, 나 이렇게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을 거는 기분이었다.


작년 가을에 시험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고, 다시 살아있다는 증거가 필요해졌다.


주변에 러닝으로 시작해서 마라톤까지 나가던 작가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 저 러닝 시작해 보려고요. 시간 혹시 괜찮으시면 같이 한번 뛰시지요."


이 형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이야기했다.


"해솔아. 혼자 6km를 뛸 수 있게 되면, 그때 같이 뛰자."


나는 이 대답을 듣고 조금 서운한 기분이었다.


'아니, 러닝 처음 시작하는 사람인데 이것저것 조언도 해주고 밥도 같이 한 끼 하고 그러면 좋잖아.'


그렇지만, 이 형은 결론이 나면 잘 바뀌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 헬스장처럼 혼자 뛰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게 나는 홀로 백화점에 가서 러닝화를 사고, 옷을 사고, 양말을 샀다.


제대로 된 걸 사려고 유튜브 영상도 찾아보고, 마침내 한강에서 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영 어색했지만 3km, 다음에는 5km 그러다 2주가 지나니 결국 6km, 8km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었다.


홀로 한강을 뛰는 내 옆으로 수많은 러닝크루들이 지나갔다.


지인 중에도 러닝크루에 가입해, 사진을 열심히 찍어 올리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과 가끔 러닝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그제야 작가 형이 왜 혼자 뛰어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크루로 뛰는 사람들은 성과달성, 경쟁, 친목, 소속감에 대한 관심 밖에 없었다.


반면, 나는 러닝을 통해 홀로 내면과 대화하는 시간이 늘어갔다.


각자 삶에서 원하는 것이 다르니까, 그 형은 내가 내면을 가꾸고 성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이후로 나는 그 형에게 같이 뛰자는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끔 SNS에 러닝 기록을 올릴 때, 꾸준히 뛰는 모습이 보기 좋다던 그 형의 댓글이 오히려 나에게는 더 의미 있는 동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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