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수도원 | 중세 수도원 이야기
중세 시절 수도원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문맹자가 많았던 시절에 평민이 수도원에 들어간다고 할지라도 기도 생활에 전념하는 수도자가 되기보다는 노동 생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수도자인 콘베르시가 되는 것이 대부분이었고 그 수도 한정적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희생을 하며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그 모범을 따라 자신의 한평생을 바쳐 살아간 사람들이 수도자라고 한다면 한시적인 시간 속에서 자기가 살던 세상을 벗어나 또 다른 세상에서 적극적으로 수도자처럼 살았던 사람들이 순례자입니다. 르네상스의 3대 문학가였던 단테는 자신의 책 ‘새로운 삶 (Vita nova)'에서 순례자는 넓은 의미에서는 자신의 집을 떠나는 모든 사람을, 좁은 의미에서는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을 가는 사람은 팔미에리 (Palmieri), 로마를 가는 사람은 로메이 (Romei)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가는 사람은 페레그리니 (Peregrini), 즉 지금 우리가 말하는 순례자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1). 13세기에 살았던 단테의 저서에 자세하게 등장할 만큼 순례라는 체험은 중세 시절 많은 사람들에게 두려우면서도 한 번은 살던 집을 떠나 새로운 세계를 향하고 싶은 희망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슬람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를 마호메트가 태어난 메카라고 한다면, 그리스도교 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성지 (Terra Santa)는 당연히 예수님께서 태어나시어 복음을 전하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예루살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승천 이후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성지순례란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서로마 제국의 멸망과 이슬람 사람들이 등장하면서 여러 종교와 민족의 혼재 속에 정치적으로 갈등이 심한 지역이 되었고 서유럽에 살던 그리스도교인들이 순례를 떠나기엔 거리상으로도 가깝거나 이동이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면서 예루살렘과 같지는 않겠지만 그와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는 장소를 찾아 순례를 떠나게 되는데 그곳이 바로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로마와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였습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갔던 가장 큰 목적은 하늘나라를 선포하러 오신 예수님의 무덤 앞에서 세상에서 살며 지었던 자신의 죄에 대한 고백과 완전한 용서를 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지금도 성년에 받는 전대사 (Indulgenza)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을 예수님께 직집적으로 전대사를 받을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면, 로마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사도의 전구를 통해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로마는 베드로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수제자였고 예수님으로부터 사람들의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한을 받은 첫 번째 사람이었습니다(2). 그래서 순례자들은 베드로 사도의 무덤 앞에서 자기의 죄에 대한 용서를 청하였고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던 베드로의 전구를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완전한 용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있는 곳입니다. 큰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께서 특별히 사랑한 사도 중에 한 명이었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지상 사명으로 주신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마르 16,15)라는 말씀을 가장 잘 실천한 사도였습니다. 왜냐하면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이 발견된 장소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루살렘에서 본다면 대서양과 접해 있는 서쪽의 땅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큰 야고보 사도의 무덤을 찾아 죄의 용서와 예수님의 은총을 청하면 예수님께서는 큰 야고보의 전구로 분명히 들어주셨을 것이라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전대사의 은총을 받기 위해서 떠났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또 다른 이유도 있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큰 병이나 어려운 일들에 처했을 때 중세 시절 사람들은 성인들에게 특별한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 기도가 이루어지면 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성인의 유해가 모셔져 있는 무덤으로 순례를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이 희생의 순례는 성인에게 받은 은총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는 증거의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때에는 사회법도 있었지만 대부분 교회의 주교나 대수도원 원장이 사법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고백성사를 통해 받은 보속이나 혹은 교회 법정의 처벌로 순례를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이 순례는 성인의 유해가 있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뉘우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경우 개인적인 이유로 집을 떠날 수 없으면 대리자에게 돈을 주어 대신 보낼 수도 있었고, 아니면 성인의 이름으로 소성당을 봉헌하거나 성당의 일부 수리 비용을 지불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렇다고 집을 떠난다고 모두가 순례자라고 불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시절 자신이 살던 동네를 떠난다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많은 용기와 함께 하느님께 나의 죽음까지 맡길 수 있는 전적인 믿음이 필요하였습니다. 로마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언제 도착할지 그리고 다시 집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누구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순례 중 어디서 밥을 먹을지, 어디서 잠을 잘지 정해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하루에 밥을 한 끼만 먹어도,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도, 도적을 만나 모든 것을 빼앗기고 목숨만 구해도 감사라는 말이 첫 번째로 나오는 사람들이 순례자였고, 그 순간 그들은 하느님의 기적을 느꼈습니다. 이 기적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음으로써 얻는 기적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 (1데살 5, 17-18)라는 말씀은 그들의 순례로 얻는 체험이었고 사람들에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증거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단지 지역적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아왔던 일상이나 습관, 악습, 생각, 행동들까지 모두 세상에 던져 버리는 자기 포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가 수도원에 들어가기 전 주님의 부르심이 필요한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를 시작하기 전 자기 결심이 필요하였고 교회 전례를 통해 순례자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순례자를 식별할 수 있는 세 가지 요소가 있었는데, 바로 순례복, 배낭 그리고 지팡이였습니다. 수도자가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외적 표시로 수도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는 것처럼 순례자도 순례 시간 동안 일상의 세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의 삶 안에서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봉헌하는 표시로 본당 신부님 앞에서 순례복을 입는 착복식을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순례자는 교회의 가장 낮은 성직자이기도 하였고 순례 중 만난 같은 순례복을 입은 사람들과는 국적을 떠나 깊은 동료애와 함께 유대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자화 된 규칙서는 없었지만 세상 것을 버리고 떠난 가난함과 하느님께 모든 마음을 드리는 정결함, 그리고 순례 중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순명의 마음으로써 교회에서 인준받지는 않았지만 ‘순례자 수도원’이라는 특별한 길 위의 영성을 지키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말씀처럼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길 위로 예수님을 따라나선 사람들이며 (참조, 마르 10, 21),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요한 14,6)라는 말씀을 믿고 길 위를 걸어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길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길 위에서 참회의 기도를 하고 길 위에서 사람들에게 애덕을 실천하고 그리고 길 위에서 죽음을 맞기까지 하며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Homo viator 혹은 Peregrinus(3)라고 불렀고 이것은 종말론적인 신앙과도 연결되어 순례자들의 걸음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미리 체험하는 연습이라고도 하였습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중세의 수도원들 중에는 자신의 수도회에 입회를 하기 전에 길 위의 영성을 먼저 살아보도록 권고를 하였고, 이런 길 위의 순례 영성을 충실히 살며 수도회를 완성한 대표적인 창립자로 성 프란치스코와 성 로무알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순례복 착복 예절과 함께 순례자가 가지고 떠나는 두 가지 물건을 함께 축성하였습니다. 순례자가 들고 가는 나무 지팡이는 순례 중 만날 수 있는 짐승이나 산도적들과 싸울 수 있는 무기가 되어 주기도 하였지만, 지팡이의 첫 번째 목적은 순례자가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또 다른 발의 역할이었습니다. 지팡이를 가지고 있음으로써 순례자에게는 세 개의 발을 가지게 된 것이며, 이것은 삼위일체 이신 하느님과 연관시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순례자는 홀로 걸어가지만 혼자 걸어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부이신 오른발과 성자이신 왼발 그리고 성령의 하느님이신 지팡이에 의지를 하여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는 전적인 믿음의 발걸음이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물건은 순례자용 배낭이었습니다. 배낭은 크지 않게 하였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들었습니다. 크지 않게 만든 이유는 순례 시간 동안 자신의 계획이나 의지를 덜어내고 오로지 하느님 섭리에 믿음을 두는 사람으로서 음식이나 소유물도 최소한의 것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입니다. 그리고 죽은 동물 가죽으로 만든 것은 순례 중 악습과 욕망, 배고픔과 목마름 등을 죽여야 하는 순례자의 금욕주의적 삶을 이야기하고 있고 또한 죽음이 나와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지만, 이 죽음은 나를 슬픔으로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프란치스코가 이야기한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친절히 인도할 누나와 같은 것이라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이 배낭의 입구는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열려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에게 먹을 것이 부족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동료 순례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과, 반대로 이웃 사람이 나에게 빵을 줄 때는 마치 하느님의 섭리로 받는 것처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을 수 있는 순례자의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순례자의 가난함은 하느님께 대한 무한 신뢰였으며, 순례자의 애덕 행위는 모든 그리스도교인들의 이웃사랑과 하느님 사랑이라는 연대감으로 발전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수도원에는 순례자들이 하루 쉬며 순례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건물인 오스피찌 (ospizi) 나 포레스테리아 (foresteria)가 생겼고 또한 그들을 치료할 수 있는 약국이나 병원도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순례 중에 죽으면 마치 같은 수도자가 죽은 것처럼 그들의 무덤을 수도원 한편에 만들어 주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순례가 중세 때와 같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순례자의 마음자세는 지금의 순례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요즘은 순례와 여행이 혼합되어 이해되다 보니 하느님 중심으로 순례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 나 중심으로 ‘순례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내가 순례 계획을 짜고 내가 순례상품을 고르고 내가 순례 금액을 지불하는 등 모든 것의 중심에는 내가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호텔의 잠자리가 불편하거나 음식이 입맛에 맞지 않는 등, 내가 생각한 순례 여행의 수준이 되지를 않으면 화가 나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이 순례 여행에 하느님 섭리는 없고 오로지 내 계획과 의지만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내 돈을 지불하고 순례 서비스를 받는 현대적 상업논리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기중심적 여행은 세상에 순례 말고도 선택할 수 있는 소위 ‘상품’이라는 것이 많이 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세상의 온갖 정보를 채우려는 것, 그것은 그냥 여행입니다. 그래서 여행을 가면 새로운 것을 먹고, 새로운 것을 사고, 새로운 것을 보고 사진을 찍어 남기고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순례는 내가 모르는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닙니다. 그래서 순례자는 "성서 안에서, 전례 안에서, 가르침 안에서 만났던 예수님을 이제 성지에서 새롭게 뵙고자 하오니(4)"라는 기도를 하며 하느님께 내 중심을 맡기고, 이끌어 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채워 주시도록 겸손한 마음을 가지는 사람들입니다. 이 겸손한 마음이 되도록 순례자가 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수 있도록 내 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요한 14,13)라는 말씀이 이루어지려면 내 마음이 먼저 비워져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무한한 그릇이 아닙니다. 이 마음 그릇의 한계가 넘으면 근심과 걱정이라는 것이 다가오기 시작하고 하느님 은총의 빗물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마음 그릇 밖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이 은총의 빗물이 채워질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순례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비우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누는 사람들이며, 그럼으로써 하느님 섭리에 모든 것을 맡기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순례 중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느님 체험이며 기적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길 위의 순례자 수도원 영성입니다.
(1) 참조 Dante Alighieri, Vita nova, XL, 7.
(2)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마태 16,19)
(3) Homo viator는 길을 걷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중세 시절 사회적으로는 소식을 전하는 사람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나 종교적으로는 성지를 향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더 사용되었다. Peregrinus는 도시 바깥을 걸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시 사람에 속하지 않은 외국인이나 이방인을 지칭하였다. 종교적으로는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느님 나라에 사는 사람을 지칭하였으며 사도 베드로도 ‘사랑하는 여러분, 이방인과 나그네 (advenas et peregrinos)로 사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1 베드 2,11)’라고 부르고 있다.
(4) 순례자의 기도, 가톨릭 기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