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곱씹으며 살아요

당신이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대도

by 산뜻

어제 생일이라고, 오랜만에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나는 지난 친구의 생일을 챙겨주지도 못했는데, 축하해 줘서 고맙다고 답했다. 선물도 없이 주고받은 연락이었지만, 어쩐지 다른 연락보다 더 반갑고 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 뭐 하냐는 친구의 질문에 일하고,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올리고 있다고 답했다.


• 나: 나의 창피한 글을 공개해야 하나 ㅋㅋㅋㅋ

• 친구: 그 글 보면 너만 창피해? 아니면 나도 창피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나: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나도 몰라 아 OO이 보고 싶당 ㅋㅋ


고등학교 친구와의 카톡



내가 친구에게 “너는 뭔가 가만히 있어도 편해”라고 말했더니, 친구는 나에게 “너도 그래”라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이 친구와 함께 인왕산을 등산했을 때

내가 했던 말실수가 문득 떠올랐다. 그래서 “나는 말을 좀 툭툭 할 때가 있잖아. 고쳐야 됨”이라고 했다.

돌아온 친구의 대답은 이랬다.


“엥? 잉? 말 예쁘게 하는데?”


2021.6.14 / 인왕산 정상에서 - 버킷리스트 하나 이룬 날


그래서 나는 신경 쓰였던 부분을 털어놨다.

몇 년 전, 이 친구와 인왕산을 갔을 때였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난 터라 고등학생 때 키우던 ‘폴’이라는 슈나이저 강아지를 아직도 키우는지 궁금해서, 나는 이렇게 질문했었다.


“아직도 안 죽었어?”


그리고 그 강아지는 몇 해 안 지나서 정말 죽었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는 많이 힘들어했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단어를 뱉었던 그날이 자꾸 마음에 남았던 것이다. 그래서 미안했다고 했다.


그런데… 정작 친구는 그날 일을 기억도 못 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거봐. 실수했다고 마음에 담고 있잖아.”라고 얘기했다.


때로는 나의 말실수 때문에 내가 말을 함부로 하는 사람이라고 타인에게 여겨지기도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었다.

그런데 친구는 나의 곱씹는 면을 ‘착하다’고 여겨주어서 고마웠다.




사실 그렇다.

누구나 살면서 실수는 하기 마련이고,

각자 과거에서 후회하는 장면이 있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라는

내가 좋아하는 책에 이런 문장이 있다.


작가는 인생을 두 배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먼저 첫 번째 인생이 있다. 길에서 만나는 여느 사람들처럼, 건널목을 건너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넥타이를 매는 그런 일상생활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는 생활의 또 다른 부분이 있다. 모든 것을 곱씹는 두 번째 인생이다.


그리고 나는 황소자리이다.

소처럼 아주 끈질기게도 곱씹으며 살고 있다.

나는 내가 과거를 툭 털어내고

기분 전환을 잘한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곱씹으며 사는 일도 못지않게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는 곱씹으며 사는 인생 속에서

아픔과 슬픔, 죄책감 등의 부정적인 감정에서도

의미를 찾고 인생을 잘 풀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곱씹는 것 이상으로

잘 소화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그렇게 아름다운 글로 잘 승화하는 일이

작가와 독자, 그리고 세상을 위하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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