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번째 이야기_도망치고 싶은 어른의 조용한 다짐
나는 MBTI 유형으로 말하자면, I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하고, 말수가 적으며,
사람들과 대화를 오래 나누면 기가 빠져버리는 그런 사람.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말실수를 할까 봐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럽게 내뱉고,
어른들 앞에선 자연스러운 웃음도 어딘가 어색해진다.
술을 마시면 언행이 거칠어질 때가 있어
친구들에게 미안할 말을 내뱉는 나를 보면
'내가 왜 그랬지'하고 밤새 자책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내 직업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사람을 상대해야 한다.
고객 응대, 상담, 리액션...
누구에게나 나는 밝고, 명량하고, 다정한 사람처럼 보인다.
고객들이 내게 MBTI를 물으면
하나같이 "당연히 E(외향)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웃으며 넘기지만,
속으론 생각한다.
나는 지금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외부에서의 창훈이는 그렇게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안의 창훈이는 점점 더 지친다.
무언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공간,
말을 하지 않아도 편안한 하루,
그런 시간들이 나를 더 나답게 만들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곁엔 늘 아내가 있다.
나는 단절된 세상 속에서 아내와 조용히 살아가고 싶다.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작은 집,
느긋한 오후의 햇살, 말 없는 저녁 식사.
아내와 함께 그런 삶을 살고 싶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의 기분을 읽고,
누구에게도 웃어 보이지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진짜 내 얼굴로 하루를 보내고 싶다.
물론 그렇게 살기 위해선 아직 할 일이 많다.
지금의 나는 책임도 있고, 만나는 사람도 많고,
당장의 현실은 단절이 아니라 연결을 요구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만 한다.
모든 소리를 줄이고, 마음속 작은 나침반을 따라간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