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사피엔스를 위한 사랑노트 1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은 모두 미결이다.>

by 사피엔



이 감정은 사랑이 아니라, 사건이다. 감당되지 않은 마음은 늘 미결로 남는다.



미결, 개시


며칠 전, 비문학 수업시간이었다.

콜버그의 도덕성 발달 이론을 읽고 있었다.

지루함이 끝자락에 닿았을 무렵, 한 아이가 불쑥 물었다.


"선생님, 애인 있는 남자 좋아하면 몇 단계예요?"


교실 안이 술렁였고, 나는 당황했지만 웃으며 답했다.


"그건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 왜? 친구 남친이라도 좋아하게 됐어? "


이이들은 웃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그리고 소란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서둘러 표정을 다잡고, 교재 문장을 다시 읽었다.

"하인츠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약을 훔쳤다. 그는 죄를 지은 걸까?"

이어서

칠판에 콜버그 도덕성 발달 단계를 정리했다.



- 콜버그 도덕성 발달 이론-
3단계 : 대인관계 조화 지향, 착한 아이 단계
4단계 :사회질서 유지 지향. 법과 규칙을 중시 5단계 : 법과 제도는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보편적 권리나 공정성의 원칙이 있다고 여김
6단계 : 법과 사회의 기준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절대적 윤리를 기준 삼음



칠판을 보며 설명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학생이 던진 질문에 붙잡혀 있었다.

"애인 있는 남자 좋아하면 몇 단계예요?" 그날, 그 돌발 문장은, 내 퇴근길에도 조용히 따라붙었다.






며칠 째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있다. 겨우 잠이 들면 한 시간쯤 지나 눈이 떠진다. 핸드폰을 집어 들고, 시계를 확인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약국에서 사 온 수면보조제를 꺼내볼까 망설이다, 결국 일어나 영화를 틀었다.


<헤어질 결심>


한 번을 보고, 다시 처음부터 또 한 번을 봤다. 하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대신 비몽사몽의 안쪽에서 무언가 깨어남을 느꼈다.

미결로 남아있는 상태의 아스라한 것 ㅡ

정의조차 되지 않은 문제가.


어떤 장면 하나,

어떤 대사 하나가

내 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있다.

그건 연애가 아니었다.

이별도 아니었다.

다만 사건이었다.


무단침입처럼 들이닥쳐, 도덕이라는 출입금지선을 어기고, 나라는 사람 안으로 스며든 감정.


그리고 결국,

내가 감당해야 할 미결 상태로 남아버린.


그건, 사랑이라 부르지 못했던 감정, 끝났다고 믿고 싶었던 관계,

이름조차 꺼내지 못했던 누군가의 얼굴이었다.


그때 꺼내지 못했던 말, 차마 인정하지 못했던 진심,

돌이킬 수 없는 어떤 몸짓.

그 사람과의 이야기라기보다, 그 감정과의 이야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게 맞다.

사랑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이 미결된 감정은

한 번쯤은

말해져야만 한다.


나도 당신도,

우리는 누군가의 약을 훔치는 하인츠였다.

우리는

어떤 단계의 사람일까?






나는 지금

그 사건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고 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미결 속으로...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내 안에 자란 '책임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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