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무죄일 수 있을까 (사랑노트 3화 )

그 남자, 네모 안의 동그라미

by 사피엔


“이건 사랑이 아니라, 나를 살게 하는 감정이었다.”


4.


카톡 - 파장


"잘 들어가셨어요?"


어느날,

저녁 식사 겸 업무 관련 미팅 자리에 팀장의 초대로 동근이 참석했다. 자리는 어색했고, 인사는 형식적이었다. 명함을 주고받을 때조차 세나는 감정을 최대한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다음에 또 뵙죠.

그저 일상적인 말들.

그 어떤 열기도 감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날 밤, 세나는 그 명함을 수십 번 들여다봤다. 글자 크기, 종이의 질감, 숫자의 배열까지.


카톡에 이름을 저장하며, 사진이 뜨기를 기대했다.


잠시 후, 테니스 라켓을 든 손, 다부진 팔 근육, 짱짱하게 당긴 종아리의 힘줄이 선명한 사진 한 장.


눈부신 오후 햇살 아래, 그는 자신감과 여유, 그리고 설명되지 않는 따뜻함을 표정 하나로 담고 있었다.

그 미소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인사였겠지만 세나에겐 감정의 결을 바꾸는 한 장면이었다.


너무 편안해 보였다. 익숙한 행복을 안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래서 더 위험하다는 걸 직감했지만 세나는 그 얼굴에 오래 머물렀다.

그녀는 이 감정의 물증을, 위험한 증거물처럼 바라보았다.


"잘 들어가셨어요?" 그날 동근의 문자에 세나의 심장은 제멋대로 박살나고 말았다.

그 한 마디는 그녀 안의 오랜 결핍을 자극했고, 굳게 닫힌 문 하나를 허망할 정도로 쉽게 허물어버렸다.

도덕이라는 단어는 지금 그녀의 심장 안에서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무용한 것이 되어있었다.


5


커피 한 잔, 허락된 선 너머


사랑은 자격을 묻지 않고, 대신 통제의 환상을 부추긴다.

세나는 그 환상을 붙들고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

단 한 문장의 여운에 몸이 들썩였고, 잠은 마음보다 먼저 포기했다.


3일간 오전 미팅에 참석했던 동근은 세나가 좋아하는 커피를 기억했고 그녀를 위해 카페모카를 들고 왔다.


테이크아웃 컵에 남은 온기, 거기서 묻어나던 향기, 세나는 그 모든 것을 감정의 증거물처럼 간직했다. 그리고

이제는 그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다음 움직임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었다.


연락이 오지 않을까.

오늘은 몇 시쯤, 어떤 말로 문이 열릴까.

휴대폰은 항상 손 닿는 곳에 두었고,

진동이 울릴때마다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그리고 혹시라도 그가 또 연락해온다면, 세나는 마음을 정했다.

'저번에 커피 사주셨으니까, 이번엔 제가 술 한잔 살게요'

아무렇지 않게, 그러나 아주 단단히 마음먹은 말.

그것은 가벼운 농담처럼 포장된 초대였고, 사실은 자신의 감정을 정당화하고 싶은 욕망의 서두였다.


6


응답과 균열


콜버그는 인간의 도덕 판단이 단계를 거쳐 발달한다고 했다. 처음엔 처벌이 두려워 선을 지키고, 다음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착한 아이'가 된다. 그리고 어느 시점, 법과 규범을 존중하며 '사회적 질서'를 위해 스스로를 통제한다.


그렇다면 세나는 지금 어느 단계에 머물러 있는가?


그는 유부남이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 사회는 그녀의 감정을 부정한다. 하지만 세나는 감정을 범죄처럼 다루지 않았다.


감정에 책임을 묻는 세계에서, 도덕은 언제나 감정보다 늦게 도착한다.


그녀는 안다. 이 선택은 3단계 착한 아이 지향을 벗어난 지 오래다.

규범과 도덕의 이름으로 판단받는다면, 그녀는 이미 4단계 사회질서 지향에서도 이탈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5단계의 문턱에서 묻고 있다.

"도덕은 언제나 옳은가?"


다시 고민한다. 자신의 감정이 이기심에서 나온 것인지, 아니면 진심에서 출발한 것인지. 그는 누군가의 남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잊지 않으려는 노력은 "죄인가, 책임인가?"


그녀는 지금, 법의 틀 밖에서 도덕을 사유하고 있다. 그녀 안의 윤리는 복종이 아닌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람은 늘 법과 규범 속에서 옳은 선택만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녀는 끊임없이 질문했지만,

결국 사건에 떠밀려버린 사람이었다.


동근과 세나의 만남은 더이상 '일'을 핑계삼지 않았다. 카톡은 잦아졌고, 만남은 길어졌으며, 웃음의 농도는 짙어졌다. 서로의 일정을 염두에 두었고, 약속은 자연스레 정해졌다.


그들은 마치 십일조를 준비해 신 앞에 서는 신앙인처럼, 서로에게 필연적인 경배를 바쳤다. 그 만남은 은밀했고, 위험했지만 동시에 숭고하고 평화로웠다.


감정이 윤리를 이긴 순간, 세나는 생각했다.

삶이란 결코 윤리 교과서 속 줄긋기처럼 단정하지 않다는 것을.











#감정의윤리 #사랑과도덕 #콜버그이론 #관계의철학 #불편한사랑노트 #사피엔소설 #소설 #욕망과윤리 #사랑인가책임인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