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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Aug 01. 2021

퇴직 후 이모저모 - 12

고통의 역설적 가치

대파 가격이 고공 행진을 하던 초봄, 엄두가 안나는 파 값에 놀라 집에서 키워 먹을 요량으로 씨앗을 샀다.

인터넷을 뒤져 보니 씨앗 2,000개 들이 한 봉에 1,970원.

세상에, 몇 뿌리 묶지 않은 대파가 8천 원 하던데...

파테크(?)로 대박을 꿈꾸며 네모난 작은 화분과 흙을 사서 심었다.

수확 시기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파종 후 5~6개월 지나야 가능하단다.ㅋㅋㅋ

우물에서 숭늉 찾는 나처럼 성격 급한 사람은 복장 터져 죽기에 아주 충분한 시간이다.


식물들은 그저 흙에 씨 뿌리고 적당히 물 주고 햇빛 드는 자리에 놔두면 알아서 다 자라는 줄 알았다.

그런데 파종 후 싹이 트기 시작한 이후 제법 잘 자라던 파의 줄기는 위로 자라지 못하고 줄곧 바닥에 쓰러져 지낸다.

굵기도 언뜻 보면 부추인 양 가늘기 그지없다.

너무 얕고 촘촘히 심은 건 아닌가 해서 일부는 다른 화분에 옮겨 심으며 간격을 벌려 주었다.

이왕 옮겨 심는 거라 이 참에 흙을 깊게 파서 뿌리를 깊숙이 심었다.

그렇게 한 지 며칠 지났다.

그래도 이 아이들의 겸손함은 여전했다.

숙인 몸뚱아리를 꼿꼿이 세울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거다.

제대로 힘 한 번 못 쓰고 죽어지내는 게 나와 같아서 동병상련의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지금껏 제대로 해보지 못한 재테크 대신 파테크라도 성공하려는 욕심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래서 시시때때로 자빠져 있는 녀석들을 새끼손가락으로 조심조심 일으켜 보지만 뼈 없는 연체동물처럼 이내 힘없이 털썩 눕는다.

그러던 어느 날 화초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간 화초 시장에서 몬스테라를 샀다.

계산대에 있는 주인장에게 카드를 건네며 몬스테라는 어찌하면 잘 자라는지 물어봤다.

"바람 부는 곳에 두면 잘 자라요."

???

문득 거실 한 편에 지금도 겸손하게 자세를 낮추고 있는 부추인지 파인지 모를 아이가 떠올랐다.

걔들도 바람이 없어서 저러는 건 아닐까?

아파트에서 바람이 있으려면 맞바람 치도록 양쪽 창문을 다 열어 두는 것 밖에 없는데 바람이 늘 부는 것도 아닌지라 마땅치 않아서 선풍기를 꺼내 약한 바람으로 틀어놨다.

하루, 이틀, 사흘...


이런 세상에...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대파 줄기가 점차 일어선다.

이거 뭐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꼿꼿이 섰다.

와우~

자연의 신비라고 감탄할 수밖에 없다.

실내에는 바람 한 점 없으니 굳이 뿌리가 깊이 단단하게 내릴 필요가 없었던 거다.

그러니 뿌리도 가늘고 약해져서 그걸 바탕으로 커야 하는 줄기 또한 저 모양 저 꼴이 된 것이었다.

비록 선풍기지만 그렇게라도 바람이 불어 줄기를 흔드니까 넘어지지 않으려고 뿌리를 단단히 내린 것이다.

흙속의 뿌리를 볼 재간이 없으니 그런 추론 밖에 할 수 없지만 그건 분명했다.

그제야 "비와 바람이 없으면 키만 자란다."라고 말한 어른들 말이 떠올랐다.

이런 ㅉㅉㅉ

가뜩이나 바닥을 기어 다니는 대파들이라 물을 줄 때도 물방울이 줄기에 닿으면 영영 일어나지 못할까 봐 뿌리 주변 흙에만 조심조심 줬는데...

그랬구나, 대파는 실내에서 키우면 줄기는 굵어지지 않고 키만 자라고, 그래서 가느다란 줄기가 받치기엔 무거우니까 바닥으로 누워지는 것이구나.

대파는 관상용 화초가 아니고 노지에서 키우는 식물이라 야외의 거친 환경에 맞게 생장의 방식이 DNA에 각인되어 있었으니 실내의 고운 환경은 오히려 자랄 수 없는 조건이었던 거다.

그래서 야외의 바람이나 비처럼 저항할 무언가가 없으니 깊이 뿌리내리지도 못하고 굵어질 수도 없어서 똑바로 지탱할 수가 없던 거다.

망치로 머릴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별 것 아닌 대파도 제 한 몸 지키고 잘 자라서 꽃 피우고 씨를 만들려고, 그래서 종족을 유지하려고 거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서 몸에 기억해두는 거구나.

줄기를 꺾을 정도로 거센 바람도, 제 몸 크기의 세찬 물방울도 이겨내서 그리도 씩씩하게 자라는구나...

별 것 아닌 게 아니라 다들 대단한 존재들이다.

그래, 잔잔하면 약해지는 거다.

비바람이 치고 억센 환경이어야 이겨내려고 더 단단해지는 거다.

고통이 오로지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가치로 작용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순간이었다.

고통의 역설적 가치?


식상한 루틴이지만 늘 그러하듯 그러한 깨달음 뒤에는 나를 소환하게 된다.

대파 따위(?)도 이러한데 나는?

이쯤에 이르면 애먼 부모와 조상에게 화살을 돌리게 된다.

대체 그들은 내게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게 전달한 유전자는 강인함 기준으로 몇 등급일까?

이기적인 내 기억으로는 나를 거실의 대파처럼 곱게 키운 건 아닌데 왜?

그러다 이내 나도 자식을 둔 부모라는 생각이 들어 비난의 화살을 거둬들였다.

나도 전달자에 불과하다고 아무리 핑계 대봐야 면책 사유는 아닌 듯해서...

버틸 수 있는 강인함의 등급을 넘어선 환경의 공격 때문?

사실 내가 뭐 그리 대단한 존재라고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나를 강인하게 만들고자 하는 특별 임무를 띠고 내게만 공격을 퍼부었을까.

그건 아니란 말이지...

결국은 환경에 대한 내 반응이 유약한 탓이겠다.


식물이나 사람이나 곱게 키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

다시 느끼는 자연의 오묘한 이치.


매일매일이 감정의 롤러코스터다.

어떤 날은 지금 가진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편해지다가도,

또 어떤 날은 턱도 없는 욕심이 일어 스스로를 고통 속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어제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야채가게를 지나며 흘깃 본 대파의 가격은 무려 1,000원이었다. 천 원. ㅋㅋㅋ

삶의 무게 또한 그렇게 가벼워질 날이 오겠지.

그런데 다른 코너에 있는 달걀 값은 9,000원이다.

아 이런, 이젠 병아리를 키워야 하나?

어쨌든, 가벼울 때도 무거울 때도 있는 게 삶일 테다.


파울로 코엘료는 자신의 책 [순례자]를 통해 '배는 항구에 정박해 있을 때 가장 안전하다. 하지만 그것이 배를 만든 이유는 아니다'라고 했다.

국내 최고 부자의 자리에 오른 카카오 김범수 의장도 그 말을 차용한 적이 있다.

실패를 겁내지 말고 끊임없이 도전하라는 말이겠다.

하긴, 쫄아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고 생을 마감한다면 그건 정말 삶이 아니다.

그냥 먹고 싸면서 지구 환경을 더럽히고 에너지를 낭비한 무의미한, 무가치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그건 공자 왈 맹자 왈이다.

사실 우리들, 아니 나는(물귀신처럼 애먼 타인을 끌어들이지 말고 확실히 알 수 있는 나 하나로 범위를 좁히자) 늘 그렇지는 못했다.

그래야 한다는 걸 몰라서였던 건 아니다.

책에서 그런 글귀가 나올 때면 여지없이 감동하며 '나도, 나도' 하며 마음을 다지곤 했다.

마음을 다지기만 , 그조차 유통기한이 겁나 짧았던 게 함정이지만...ㅎ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거리며 편한 곳을 찾아다닌 결과가 지금의 나다.

그렇다고 그 과정이 편하기만 한 것도 아니었고, 지금 역시 그렇지도 않다.


무거운 삶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더라.

필경 그놈은 더 크게 몸집을 불려서 다시 내 앞에 떡 하니 나타나더란 말이지.

그러니 뒤로 물러설 한 뼘의 공간도 시간도 없는 지금...

힘들고 싫어도 피하거나 미루지 말자.

눈 감았다 뜨니 벌써 60년이 흘렀다.

한 번 더 감았다 뜨면 끝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가족도 어느새 나보다 더 힘이 세졌다.

어쭙잖게 가장의 책임 운운하며 핑계 대지 말자.

이래도 저래도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진 않는다.

피하든 부딪히든 어차피 고통의 총량은 같다.

마지막 순간에 'if~ 어쩌고' 하면서 후회하는 건 줄여 보자.


그러니 이젠 퇴직의 좌절에서 퇴직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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