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과 달라 보여서 내가 술을 마신 듯하다니까 후배들이 아니란다. 계속 여기에 계셨단다. 결국 나는 옆의 환자분께 조용히 물어봤다. 이미 병원 오기 전에 술을 한잔하셨던 상태였고, 우리가 회진 시간에 자리에 있으라고 해서 못 가는 바람에 짜증 나서 조금 전에 나가서 더 마시고 오셨다고 알려주셨다.
결국 그렇게 오전 내내 10~15분마다 나와서 같은 걸 물어보셨다.
할머니의 가족은 유일하게 그 보호자 아들이 전부였다. 아들이 없으면 밥도 안 드시고 종일 걱정하신다. 며칠 전 밤에 술 드시고 오셔서 결국 우리가 댁으로 보냈더니 아들 오시면 드신다고 식사를 아예 안 드셨다.
그래도,
결국에는 허리 아프신 것도 시술하시고 걸어서 퇴원하시면서 “고맙네, 그래도 집에 가네. 내가...”
청력이 안 좋아서 귀가 잘 안 들려서 말을 해도 겨우 한두 마디만 대답하셨던 분이 가실 때는 아들 손을 꼭 잡고 구부정한 허리지만 걸어서 가셨다.
보호자가 술을 드시고 오면 어떻게 하냐고 하지만, 행패를 부리지 않은 이상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또 환자가 보호자를 기다리는 이상 집으로 보내는 건 무조건 답이 아녀서 이럴 때는 또 다른 고민에 들게 한다.
“아니 이제 입원한 사람한테 그런 걸 왜 물어보는데요.
밑에서 다 이야기했는데. 컴퓨터 보면 다 나오는 거 아니에요?”
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그나마 이 상황은 양반이다.
“대뜸 지금 수술한다니까 무통 주사를 맞으라고?
내가 아픈지 안 아픈지 어찌 아냐고?”
“아니 매뉴얼을 가지고 와, 뭐 이런 경우가 있냐고?”
이렇게 나오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얼마 전의 일이었고, 혹시나 하고 들어간 병실에서 후배에게 윽박지르는 상황 직전에 개입하여 해결하게 되었다. 입원 당시 담당과장님의 설명에 본인이 잘못 이해했다고 그 뒷날 오셔서 오해했던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먼저 이야기를 하셨다. 다행히.
그러나 후배는 울었다. 불친절한 적이 없는데, 불친절로 몰고 가면 그거만큼 억울할 수밖에. 다행히 그분의 부인이 우리 후배를 안아주셨다. 성격이 원래 저런다고.
이런 경우 참 고마운 경우다. 그래도 후배를 이해해주셔서.
“간호사님, 덕분에 퇴원합니다. 정말 그때는 거의 누워만 있었는데. 걸어서 가네요.”
“아픈데 처음에 다리 올리라고 해서 힘들었는데, 이유를 설명해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같은 경우,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설명했는데도, 받아들이는 부분에서 다른 거라고 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이라는 식의 ‘이렇게 하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그런데 어떻게 받아들이냐의 부분에서의 차이인듯하다.
첫 번째는 설명해도 이미 부모님이 아프셔서 화가 난 상태였고, 두 번째는 아팠지만, 다리를 올림으로써 부기가 빠지고 통증이 나아질 거라 설명해서 정말 올려야 되는 구나를 이해가 되셨던 것이다.
후자가 많은 편이지만, 가끔은..
나도 사람인지라 무작정 화부터, 욕설부터 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해야 되지?
정말 너무 황당할 때는 나도 모르게 같이 맞짱 뜰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나는 최대한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의 젊은 혈기에는 말발로 어떻게든 이기려고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나도 모르게 상대방의 심리를 읽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듯하다. 그리고 생각하고 느낀 대로 하면 결국엔 해결이 된다.
이런 환자분들이 더 많다.
“주사를 안 아프게 놔주셔서 눈물을 꾹 참았어요. 그리고 뽀로로 밴드 붙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글을 써주는 어린 환자들도 있고, 부끄럽지만 주사 놔준 후배를 꼭 찾아와서 자신이 아끼는 마이쭈나 초콜릿을 손에 쥐여주고 가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면,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에 환자도 나도 사람이다.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하면 난관들이 아닌 하나의 에피소드며 나를 성장하게 하는 일로 기록이 된다.
어떤 날은 환자로 인해 울고, 어떤 날은 환자로 인해 미소를 띠게 된다.
코로나로 인해 마스크로 미소가 가려질 수는 있지만, 어떤 분이 그러셨다.
“마스크가 얼굴은 가릴 수는 있으나 간호사님의 마음을 가릴 수는 없을 거라고.”
경황없이 입원해서 정신없어보이는 상황에서,
추워 보여서 덮어드린 담요 하나에, 병실의 히터 상태를 봐준 것뿐인데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말투였는데도 자신의 말에 경청해주고 보살펴줬다는 이유 하나에 나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하는 분들이 있다.
그런 마음을 전달받은 날이면 뿌듯함 속에 피곤함이 사라진다.
왜 나한테만 그래?
보다는, 비가 오려나 보다!라고 외치면 왠지 더 이해하게 되는 날들이 있기도 하다.
항상 비가 오는건 아니니까!!
화창한 날씨만큼 “간호사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고 수줍게 인사하고 가는 일상도 일어난다.
이런 일들 속에서 나는 오늘 하루도 내 직업을 선택함에 후회가 없으며, 이런 많은 일들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