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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부 Apr 20. 2017

Mid-life Crisis

. 저는 48세 중년입니다. 그리고 확실히 위기상황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일때는 동시상영극장이라는게 있었습니다. 영화 두 편을 동시에 상영하는데 보통 한 편은 인기있는 영화라면 다른 한 편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나 좀 오래된 영화를 묶어서 보여줬습니다. 보고싶은 영화만 보고 나와도 좋았겠는데 그때는 꼭 두편을 모두 봐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3-4시간을 힘들게 견디며 봤던 기억이 납니다.


두 편중 인기없던 영화중에 기억에 남는 영화가 한 편있습니다. 제목도 모르고 배우도 모르고 그들이 쓰는 언어가 영어가 아니었으니 스페인이나 남미나 어쩌면 이태리 영화였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배우들이 좀 가무잡잡한 피부의 사람들이었으니까요. 여자주인공은 남편이 안겨 준 부를 누리며 살고 있지만 쓸쓸합니다. 자식도 없고 남편은 일만하고 집에 돌아와서도 다정한 대화도 나누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강도가 드는데 어찌 저찌하다가 이 여자가 그만 그 강도를 사랑하게 됩니다. 마지막 장면도 기억에 남는데 아내가 인질로 잡혀있다고 생각하는 남편은 경찰과 밖에 있고 여자는 강도와 집안에 있는데 경찰이 가진 최신무기는 콘크리트 벽안을 엑스레이처럼 다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를 한방에 죽여버리죠. 여자는 슬퍼하면서 남편을 떠나더군요.


그렇게 오래 된  영화를 지금껏 기억하는 이유는 그 때의 저는 주인공 여자가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을 위험에 빠뜨리면서 그렇게 무모하게 정사를 벌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말도안되는 영화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심심하면 친구를 만나고 영화를 보지..왜 강도와 사랑에 빠지는 걸까? 그 때는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이 나이가 되고 보니 그 여자가 너무나 이해가 되는군요. 그러니 저는 위험합니다.


아이들은 커가고 저를 필요로 하는 시간은 적어졌습니다. 남편과는 전처럼 뜨겁지 않아서인지 이제 더이상 일부러 오해하지도 않고 일부러 서운해 하지도 않습니다. 일부러 라고 하는 이유는 좀 더 젊을 때는 서운한게 왜 그리도 많은지 오해해서 서운한게 아니라 서운해서 오해를 만들었던 것 같아서 입니다. 이제는 그런갑다. 내가 먼저 너그럽게 이해합니다. 서운하기도 귀찮아서 입니다. 게다가 늙어가는 남편이 어찌나 안쓰러운지 가엾기도 하고 늙는 모습이 귀엽기도 해서 보고있으면 웃음만 납니다. 정이 쌓여서 그런것 같습니다.


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합니다. 생산적이었으면 좋겠지만 별로 그럴 일은 없습니다.  큰 병은 없어도 조금만 무리를 하면 여기저기 불편해집니다.  내 나이쯤 되신 분들은 나이든다는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지 깜짝 깜짝 놀라면서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기 저기 새고 붓고 흠이 나기 시작하니까요. 네. 한 오십년 썼으면 많이 썼다고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오십년 쓰고도 처음 만들어질 때처럼  반짝이고 단단하고 야무질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점점 한계가 지어집니다. 제가 지난 몇 년동안 노래를 부르던 산티아고 순례길은 아마도 포기를 해야할 것같습니다. 내 생에는 이제 산티아고는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려거든 좀 더 일찍 갔어야하는데 너무 늦어버렸네요. 이렇게 방심하고 있다가는 어쩌면 패키지 여행도 포기해야 하는 때가 닥치고야  말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찍 치매에 걸리셨던 시어머님은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오시고는 본인이 어디를 갔다왔는지 우리에게 물으시더군요.


몸이 늙는 것도 내 일이 되고 보니 참 서럽습니다. 내 젊을 때 나이든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게는 젊음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보였습니다. 젊은이들이 지금 저를 보면 그렇겠지요? 저기 저 아줌마는 참 식상하게도 생겼다. 저 식상한 헤어스타일 저 식상한 옷차림 저 식상한 말투 ....  제가 지들과는 원래부터 다른 카테고리라고 생각하겠지요? 너도 늙어봐라.. 소리가 나오네요. 많이 듣던 소리네요.

  

저는 요즘 그 한가한 시간에 그런 저런 서러움과 싸우고 있습니다. 많이 우울해서 힘든 날은 남편한테 하소연도 합니다. 남편은 일이 많아 힘들어 죽겠다고 하는데 나는 할 일이 없어서 힘들어 죽겠다고 하소연하는게 미안하지만 힘든건 힘든거니까 모른척 그냥 합니다. 남편은 제가 빈둥지 증후군이라고 하는군요. 남편은 속도없이 이런 저를 안쓰러워해주네요.


정신을 차리고 힘을 내서 이것저것 시도해보는 중입니다. 사람도 여태까지와는 다르게 사귀어 보는 중이고 며칠 전에는 수채화를 배우기 시작해서 물감을 빠레트에 짜서 말리는 것을 본 남편이 문화생활을 한다고 하길래 쑥쓰러워진 제가 내 자체가 문화센터라고 했더니 웃더군요. 모르겠습니다. 남들이 보면 한심할지 어쩔지. 그런데 제 상황에서는 이렇게 억지로 하는 문화생활이 우울증으로 빠져드는 것을 혹은 어쩌면 강도와 사랑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는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다들 시간이 없다고,돈을 더 벌어야 한다고, 갖고 싶은게 많다고 아우성들인데 저는 돈을 벌 재간도 없고 시간은 많고 마냥 놀러만 다니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아서 뭔가를 배우기라도 해야할 것같아서 영어도 배우고 재봉도 배우고 수채화도 배우고 그러다 보니 제가 문화센타가 되어버렸네요.


뭔가를 열심히 하는 삶을 살아야하는걸까요? 대충 슬렁 슬렁 살아도 되지 않을까요? 몸에 무리를 주면서까지도 열심히 살아봐야 하는 걸까요? 지금 대선주자들 그들은 저보다 나이도 많은데 큰 일을 도모하는군요. 대통령이 되는 일과 문화센터가 되는 일은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대통령이 되면 강도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더 재밌을까요? 헛소리가 작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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