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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일상에서 발견하는 마케팅 모먼트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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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슬아 May 13. 2021

소비, 경험을 넘어 존재(Being)와 마주하다.

[보이는 손]이 작동하는 21세기 미시적 경제 소비문화

Intro.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 - 전 세계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한 우리는 인류 역사상 불확실성이 가장 높은 시절을 지나가는 중이다. '언제쯤 끝날까' 싶었던 코로나는 어느덧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돼버렸다. 잘 다니던 항공사 직장을 순식간에 잃어버리기도 하고, 몇십 년 한 자리에서 장사하던 음식점은 하루아침에 문을 닫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단위의 미세한 바이러스 앞에, 우리 눈 앞에 보이는 삶은 모두 흔들렸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더이상 코로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흔들릴 때에는 함께 흔들리는 것이 안전한 법 -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려는 고정적인 생각과 행동이 오히려 위험한 충돌과 피해를 가져온다. 어쩌면 코로나시절 높아진 자살률은 그 변화에 함께 흔들리지 못하고 정지되어 낙오된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영역이 흔들리는 지금 우리는 내면 깊숙이 다음과 같은 고민을 하는 중이다.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이 시대를 어떻게 이해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이크로 입자의 바이러스 - 그 바이러스로 인해 보이지 않는 세계를 고민하는 시선이 생겼다. / 출처 : 버들글씨

1.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재하는 브랜드의 세계.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는 인문학•철학적 사고는 인간의 물질문명을 발달시키고 유지하는 데 중요한 동력이 되어왔다. 돈, 합리적·이성적 사고, 수학적 계산이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중심 원리라면 그 비즈니스가 태동되게 하는 힘은 바로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임을 우리는 쉽게 간과한다.

올해 유행하는 스트릿패션 디자인 컨셉을 조사하는 중이었다. 어떤 티셔츠는 귀여운 곰돌이와 함께 '좋은 인생. 계속해서 색칠을 해보자(Life is good. Keep it colorful).'과 같은 [삶에 대한 태도]를 말하고 있었다. 또다른 티셔츠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내 멋대로 산다'는 의미를 담아 [타인과의 관계•태도]를 주장하기도 했다. 티셔츠 한장 한장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더니 그 디자인 속에 담긴 생각(Idea)이 보이기 시작했다. 공통적인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과 타인과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살아가는 세계관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2-3만 원짜리 여름 티셔츠 한 장에도 인간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는 것을 목격하고 나니 명품과 같은 고차원의 예술성을 지닌 브랜드와 제품들에 담긴 에너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예술작품의 동기가 된 모티브나 발상을 '영감'이라고 말한다. 영감(Intuition)이라는 뜻은, 분명 보이진 않지만 창작자 내면에 어떤 영적인 에너지와 동기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예술이 그러하듯, 예술작가의 생각과 느낌, 중요하게 집중하는 시선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결합, 작용되어 우리가 감상하는 산출물이 바로 예술작품이다. 이것들은 데이터처럼 논리적이고 합리적 이성적으론 설명할 순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우리는 그러한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담긴 제품을 소비하고, 매일매일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람의 피를 실제로 밑창에 넣어서 만들었다는 나이키 사탄 운동화는 최근 브랜드 업계 큰 이슈가 되었다. 리미티브 에디션으로 666켤레가 제작되어 1,018달러(약 115만 원)의 고가였지만 순식간에 완판 되었다. 불완전한 수 6을 3개로 결합하여 만든 사탄의 수 666과, 사탄을 상징하는 거꾸로 된 오각형 별 모양의 장식을 제품 소재로 사용했다. 박스 디자인은 사탄이 벌거벗은 인간들을 휘감은 장면으로 묘사되고 있다. 뒤늦게 나이키 측은 사탄 운동화를 맞춤 제작한 업체를 대상으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지만 이미 제품은 모두 완판 된 상태였다.

제품 속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를 담아내고 이를 소비하는 문화는,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브랜드와 제품 속에서 매일매일 부딪히고 실재하는 문제다. 문득 오늘 아침 출근길에 뿌린 러시 브랜드의 '칼마(Karma)' 향수가 생각난다. 나는 솔직히 칼마(Karma)*를 믿지 않는 사람인데 그 향수를 입는다는 것 - 영어에서 향수를 입는다(Wear a perfume)고 표현한다 - 은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스타벅스의 로고의 유래가 된 '세이렌'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자의 얼굴에 독수리의 몸을 가진 동물이다. 세이렌은 '여성의 성적 유혹과 속임수'를 상징하는데, 그 이유는 섬에 선박이 가까이 다가오면 아름다운 노랫소리로 선원들을 유혹하여 바다에 뛰어드는 충동질을 일으켜 죽게 만드는 힘을 지녔기 때문이다. 갈라진 다리는 남성을 유혹하는 세이렌의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다. 로고의 유래를 알고나니 스타벅스 커피 맛이 살짝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예민하기 때문일까.

* 칼마(Karma) : 카르마라고도 한다. 불교에서 중생이 몸과 입과 뜻으로 짓는 선악의 소행을 말하며, 혹은 전생의 소행으로 말미암아 현세에 받는 응보(應報)를 가리킨다.

스타벅스 1호점 스타벅스 로고 - 양쪽으로 갈라진 다리가 유혹하는 세이렌을 상징합니다. / 출처 : 중앙일보

2. 소비를 통해 나를 탐구하는 시대.

소크라테스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했는가. 21세기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더욱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거대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 개인의 존재가 드러나고 발현되는 가장 보편적이고 실존적 활동이 바로 [소비]기 때문이다. 인간은 거대한 자유시장경제,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소비자'로서 개인의 필요(Needs)와 욕구(Wants)를 채운다. 매일매일 소비활동을 통해 사용하는 물건과 경험하는 서비스들이 곧 '나'라는 존재를 표현하고 정의한다.

한 명의 소비자는 매일매일 수많은 정보 속에서 제품과 브랜드를 만난다. 모든 제품들은 세상과 인간의 존재를 이해하는 세계관과 철학을 담아내고 있다. 그 물리적 세계 이면의 것들은 실제로 물질세계에 작용하게 되는데, 즉 상품이 소비자에게 인지(Awareness) · 기억(Enchoring)되고, 흥미(Interest)를 갖게 되며 선호(Like & Dislike)된다. 궁극적으로 구매(Purchase)라는 행동을 통해 인간의 다시 물질세계로 표면화된다. 그 과정 속에서 수많은 무의식, 외부 요인들이 결합•작용하면서 자신의 존재와 삶에 영향을 끼친다. 소비자 행동론은 바로 이러한 영역을 연구하는 마케팅 학문이다.

제품이 가진 디자인이나 문구는 평소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나 세계관을 반영한다. 쉽게 말해, 우리는 소위 '개인의 취향(Personal Taste)'이 반영된 제품을 고르게 된다. 혹은 반대로 자신이 소비하는 제품을 통해 그러한 세계관이나 가치가 반영되기도 한다. 만약 나이키 사탄 운동화를 구매한 소비자가 그 제품이 그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고 우리는 확신할 수 있을까? 사소하지만 매일 일어나는 소비활동 가운데서 생각이 몰입되거나 주입되기도 하고 교환되기도 하면서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이성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다. 상품이 매개체로 작용하여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전달한다.

21세기 소비자라면 누구나 충동구매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필요(Needs)한 상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갖고 싶다는 충동적 욕구(Wants)로 인해 구매를 하는 경험 말이다. 멋지고 화려한 제품 이미지에 홀리듯 결제까지 이루어졌지만, 다음날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필요하지 않았거나 심지어 갖고 싶었던 제품이 아닌 경우도 있다. 택배로 그 제품을 받더라도 우리는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 제품은 더 이상 나를 가슴 뛰게 하지 않는다. 만약 이러한 충동 경험이 빈번하게 일어난다면 그 사람은 쇼핑중독 상태일 경우가 높고, 그의 내면에는 채우지 못한 갈증이 있을 확률이 높다. 이처럼 소비행태는 소비자 개인의 보이지 않는 내면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기간 명품소비가 늘었다는 소식은 어쩌면 사람들의 마음이 공허하다는 것을 뜻하는 것일지도. / 출처 : 포토뉴스

3. 21세기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존재를 더욱 고민하게 할 것이다.

21세기 물질문명이 더욱 발전하고 삶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리는 보이지 않는 내면에 더욱 집중하게 될 것이다. 내면이 공허해지기 때문에 더욱 채워내고 집중할 필요가 있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예측불가능할 때 오히려 영원불변한 가치가 그 불확정성을 해결할 것이다. 코로나 시절 -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그러나 실존적인 자신의 존재와 삶의 방향성에 더욱 귀를 기울이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 기술 선두에 서있는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부는 서양철학과 명상 열풍, 그리고 코로나 이후 임상심리학자인 조던 피터슨의 [질서너머]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는 것들이 이를 보여준다.

21세기 현대문명사회 속에서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활동이 바로 소비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소비에 대해 더욱 민감한 시선을 바라보아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돈과 상품의 교환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정 브랜드의 가치와 정체성에 동의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삶의 의미를 이 거대한 물질문명 속에 발현하는 것이다. 따라서 21세기 소비문화는 곧 소비자 개인의 존재(Being)를 탐구하고 발견하는 과정이자, 삶의 목적을 투영하는 장(Playground)의 역할을 한다.

전세계 6.25 참전용사분들을 찾아서 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젝터솔저] 탁상달력 제품. / 출처 :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이러한 철학적 고찰은 이미 마케팅 현업에서 다양한 사례로 확인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템을 판매하고 자발적 후원금을 통해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전 세계 참전용사분들을 방문해 사진을 찍어드리는 프로젝트 솔저, 핸드메이드 상품을 제작하여 할머니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마르코로호 브랜드,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제작하여 장애인 고용에 기여하는 천연 비누 동구밭 브랜드 등. 중요한 것은 이러한 브랜드가 더 이상 아류가 아닌, 코로나 시대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을 제시함으로써 밀레니얼 세대들의 주요 소비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Outro. 일상에서 경험하는 소비에 대한 민감도를 키우자.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18세기 [거시적 경제구조]를 설명했다면, 21세기는 소비자 개개인의 '보이는 손'을 통해 경제가 돌아가는 [미시적 경제원리]가 작용되는 시대라고 정의하고 싶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오늘 하루 - 내가 구매하고 사용한 모든 제품들과 브랜드에 대해 민감함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매일매일 사용하는 샴푸와 주방세재, 일회용품까지. 나는 어떤 제품을 많이 자주 구매하는 사람인지. 더 나아가 그 소비활동을 통해 '나'라는 사람은 어떤 것을 추구하는 사람인지 자문해보는 것이다. 보이는 것들로부터 나의 존재를 발견하기에 좋은 매개체는 없다. 무엇보다도 내면이 채워지지 않는다면 그 공허한 마음을 외부의 에너지로 채우게 된다는 것에 주의하자.

마지막으로 보이지 않는 세계를 주의 깊게 생각하는 자세는 어쩌면 [겸손]의 영역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정말 보이는 것만 믿을 수 있을까? 두 눈으로 모든 것을 다 볼 수도 없을 뿐더러, 본 것이 다 맞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말 제대로 본 것인가. 물질문명의 풍요로움 속에서도 인간의 [겸손]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을 풍요롭게 한다. 적어도 을씨년스러운 '666 사탄 운동화'를 호기심에 구매하는 실수를 저지르진 않을 것 같다. 모든 만물들이 흔들리는 변화무쌍한 21세기 코로나의 계절 - 그 가운데 소비자의 실존적인, 존재에 대한 물음은 더욱 깊어져 갈 것이다. 그 고민과 성찰은 매일매일 개인이 선택하는 소비활동을 통해 발현되며, 거대한 세계 경제를 미시적으로 움직여내는 핵심동력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