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95
2세 계획은 잠시 미뤄두고 떠나기, 95일 전
그렇지만, 2세 계획이 있다면, 나이는 아주 중요해집니다. 퇴사 후 한국을 떠나는 내년이면 저는 35세의 여성이 됩니다. 35세라는 나이, 저는 좋습니다. 저는 나이 드는 제 모습이 좋습니다. 젊음은 사라지겠지만, 내면의 아름다움을 채우고 '우아한 할머니'가 되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매년 조금씩이라도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걸 스스로 느끼는 게 참 좋습니다. '아이'를 생각하기 전까지 말이죠.
저는 찾아본 적 없는데 왜 유튜브 알고리즘은 '불임'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뜨는지 모를 일입니다. 의학적으로 노산의 기준으로 35세라고 합니다. 저는 '노산'은 확정이겠네요. 나이가 적어도 여러 가지 문제로 아이를 가지는 데 어려운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많아도 문제없는 사람들도 있지요. 사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그래도 확률, 통계라는 게 있기에 조급해집니다. 혹여나 나중에 조금 더 일찍 준비했더라면 아이를 가질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원망과 후회를 하게 되는 상황을 상상하면 가슴에 큰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 숨이 턱 막혀옵니다. 그래서 더 늦지 않아야 한다는 한계선이 마음속에 늘 있습니다.
연애 6년을 거쳐 결혼 2년 차인 저희 부부는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몇 명을 낳느냐', '언제 낳느냐'가 아니라 '아이는 부모의 욕심이 아닐까', '아이를 우린 왜 낳고 싶어 할까', '아이는 어떤 환경에서 낳고 키워야 할까?', '우리는 부모의 준비가 되어있을까', '어떤 아이가 나오더라도 우리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열띤 토론을 하곤 했습니다. 그 순간은 거의 둘 다 철학가이자 그 공간은 아테네 학당입니다.
흔히들 '일단, 낳아 보면 안다.', '어떻게든 키운다.'라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이 저희에게는 참 무책임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니면 저희가 겁이 너무 많은 걸 수도 있지요. 모든 걸 계획대로 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렇지만, 최선의 환경을 안다면 시도하고 준비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저희이기에 한 생명을 낳고 기르는 데 우리는 충분한가, 부족하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뇌하는 중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결국, 아이에게 좋은 환경은 '좋은 아빠'와 '좋은 엄마'가 둘 다 필요하다,라는 뻔하지만 까다롭고 어려운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아빠, 엄마, 아이가 매일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조건도 붙었습니다. 어렵죠. 어렵지만 해보려고 합니다. 그 시작이 동반퇴사와 한국 떠나기 라니, 제가 쓰면서 정말 모순 그 자체네요.
세상에 아가들은 왜 이리 이쁘고도 이쁠까요. 카카오톡 목록에 이름은 제 친구, 제 지인인데 사진은 다 아이들로 가득합니다. 최근 동창 모임에 가서 본 친구들의 아이들도 어찌나 사랑스러운지 모릅니다. 남편도 요즘 들어 '남의 아이도 이렇게 이쁜데 내 아이는 얼마나 이쁘고 좋을까'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리고 또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예전에는 남편과 '아이가 안 생기면 어쩌지'라는 주제의 토론도 가끔 했었는데, 요즘은 그런 소리하지 말라면서 말이 씨가 된다고 다그치기도 합니다. 그만큼 마음의 크기가 더 커진 거겠죠.
그런 마음을 알기에 최근에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한국 떠나기 전에 같이 산전검사받고, 6개월 가서 우리가 타국에서 잘 적응해서 살 수 있는지 확인하고, 그때부터 2세 계획을 시도해 보기로 말입니다. 그렇게 '노산'은 확정인 상태이지만 잠시만 미뤄두기로 합니다. 이후에도 임신, 출산, 육아 등등 미정으로 남은 것들 투성이네요. 아마 한국에 다시 와서 한동안 머물러야 할 수도 있겠지요. 현재 결정할 수 있는 건, (결심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만 결정된 거라고 하고 싶어서 이렇게 써봅니다). 앞으로도 저희 부부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치열하게 고뇌하고 토론하면서 나아갈 거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