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86
아무리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 중 하나는 운동 후 느껴지는 '뻐근함'입니다. 특히, 월요일 하체 운동 후에 정확히 화요일 저녁부터는 해부학에서 보던 하체 근육 섬유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엉덩이를 구성하는 근육들은 '아파! 아프다고! 움직이지 말라고!' 아우성 치는 듯 합니다.
'뻐근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1. 이 몹시 피로하여 몸을 움직이기가 매우 거북스럽고 살이 뻐개지는 듯하다.
2. 어떤 느낌으로 꽉 차서 가슴이 뻐개지는 듯하다.
3. 힘에 겨울 정도로 몹시 벅차다.
운동 후 느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데 이보다 적합한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5년째 헬스를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살을 빼기 위해 시작했지만, 나중에는 운동을 자체를 즐기게 되었습니다. 운동할 때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이 제 몸을 안 좋은 기운을 정화시키는 느낌이 듭니다. 빨라지는 심장박동이 지루한 일상을 깨워 움직이게 합니다. 온몸에 도는 열감이 팍팍한 삶에 잠시 내려놓은 열정을 다시금 뜨겁게 달궈줍니다. 운동 후 움직일 때마다 느껴지는 '뻐근함'은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음을 조금은 아프게 일깨워줍니다. 이 모든 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게 해줍니다. 매일 쌓이는 끝없는 불안과 걱정을 뚫고 살아가게 해줍니다. 1차원적이고 순수한 감각, 생존에 대한 감각을 충족시키면서 말이죠.
이 '뻐근함'을 마냥 즐기고 싶지만, 그게 안될 때가 많습니다. 살면서 대부분 시간을 보내는 직장 생활은 내 속도에 맞춰 흘러가지 않죠. 그러면 이 감각은 아프고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특히나 퇴근길에 계단이라도 만나면 짜증이 치솟습니다. 퇴사하고 나면, 아침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운동하는 삶, 다음 날 뻐근하더라도 내 속도에 맞춰 움직이고 살아가는 삶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86일 남았습니다.
운동을 하면서 저의 감정기복은 아주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약간의 우울감이 늘 깔려 있었던 거 같습니다. 충동적인 행동도 많이 했었고요. 그렇게 한 달에 2번씩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하고 나면 아이러니하게 개운함이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주변은 초토화되어있었습니다. 상처받은 사람들과 주워 담을 수 없는 거친 말들이 남겨져 있었지요.
지금 혹시 애쓰고 있다면, 나와 주변을 아프게 하고 나서 후회하는 걸 반복하고 있다면, 숨을 강제로라도 크게 들이쉬고 내쉴 수 있는, 심장이 쿵쾅쿵쾅 뛰는 그런 운동을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살고자 하는 당신에게 살아있다는 감각을 선물해 주시길 바랍니다. 분노도, 우울도, 어쩌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어 하는 마음의 표현일지 모르니까요.
그 순간, 숨 쉬는 당신이, 가슴 뛰는 당신이, 온몸이 뻐근한 당신이 있습니다. 감정에 짓눌려, 삶이 나에게 던져놓은 짐에 짓눌려, 구겨진 가슴을 펴고 그 안에 희망을 담고, 웅크린 온몸을 움직이면서 나의 공간을 확보하고 그곳에 꿈을 채워가기를 바라고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