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일 년이었다.
일 년이란 원래 사람의 생과 닮아서
나고 피고 지고 사그라드는 그런 거라고
바싹 마른 나의 한 송이가 또 이렇게
낙화를 기다리는 밤.
언제나 낯선 찬 겨울의 한복판이니
그래도 혹시 다음 이야기는
새로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이 다음은 반 발자국
다른 곳으로 걸어 갈 수도 있다고.
살아가다 보니 많이 찔리고
점점이 피 맺힌 하루하루가 모여
나의 한 장을 가득 채운
일 년이라는 완성이 이제 화지를 넘기는 순간.
빽빽히 그려넣은 저 많은 순간들도
어찌할 수 없이 밀려나겠지.
후회는 어떻게 될까
꿈은 계속 꾸게 될까
실망은 이어지려나
행복은 내게 오려나
나는 여전히 거기에 있을까
슬퍼하며 하루를
기뻐하며 어제를
기다려지지 않는 내일을 나는 또 견디려나
다르지 않아도 된다고
새롭지 않아도 좋다고
한 해 만큼 멀어진 나의 삶에 또 안녕
손등에 입을 맞추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