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없는 것들 사이를 서성이던 때
"Do you trust me?"
'믿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난 이 문장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알라딘>에서 알라딘이 자스민에게 묻는 바로 이 말. 갑갑한 왕궁을 탈출한 자스민은 알라딘을 만나 짧은 일탈의 시간을 즐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왕궁 경비병들에게 쫓겨 정신없이 도망치게 된다. 막다른 길을 만나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던 때에 알라딘은 자스민에게 손을 내밀며 이렇게 묻는다. "Do you trust me?" 얼결에 "Yes."라 답한 그녀의 손을 잡고 둘은 함께 아래로 몸을 던진다. 한바탕 소동 후에 자스민은 왕궁으로 돌아가고 알라딘은 지니에게 소원을 빌어 먼 나라 왕자 '알리 아바브아'로 위장을 해 그녀를 만나러 간다. 이미 알라딘을 마음에 둔 자스민의 마음은 철옹성 같았다.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는 날으는 양탄자로 흥미를 자극시킨다. 타보고 싶지만 무서워하는 그녀에게 알라딘은 먼저 했던 것처럼 손을 내밀며 다시 회심의 질문을 날린다. "Do you trust me?" 자스민은 이 질문으로 이 아바브아가 자신이 만났던 알라딘이며 자신처럼 일탈을 위해 위장한 왕자라 확신하게 된다.
"Do you trust me?"는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께서 나에게 손을 내밀며 던지시는 질문이었다. 나는 자스민처럼 얼결에 대답한 경우도 있었고 이 질문을 하시는 분에 대한 더없는 확신을 갖고 대답한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Yes."가 자동으로, 쉽게 나오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질문에 "Yes."로 대답하는 순간. 내 앞에는 늘 새로운 세상이 펼쳐졌다.
호주에서의 공부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다. 2년의 학비 지출이 있었기에 다시 학생이 되기엔 부모님께 너무 염치가 없었다. 이제는 영락없이 사회인이 되어야 했다.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가서 배워온 것, 그리고 그 결과로 받아온 것이 바로 영어교수 자격증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가르치는 일은 돈을 벌기 위해 당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소 조건이면서도 최대 조건이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가르치는 일을 하며 먹고살게 되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던 때엔 몰랐다. 가르치는 일이 그냥 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자격증만 있을 뿐 영어 전공도 아니고 경력도 없어서 처음에는 일이 쉽지 않았다. 실제로 일할 수 있는 곳도 별로 없었고 그야말로 박봉이었다. 몇 군데를 전전하며 오전 오후 두 파트를 각각 다른 학원에서 따로 맡아 다니기도 했다. 이왕 이렇게 됐으니 앞으로 필요할 것 같아 영어영문과 편입을 결정했고 학업과 일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가르치는 일은 나에게 해야 하는, 이거 아니면 할 수 있는 게 없어 시작한 것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 보람, 효능감 같은 것보다는 생계수단, 인간의 도리 등이 일에 있어 우선이 됐다. 귀국 후 여러 가지로 하는 일은 많았는데 나는 버석버석하게 마른 장작 같기만 했다.
이대로 그냥 있으면 제 명대로 못 살 것만 같아 네팔 선교지 방문에 지원했다. 그곳에서 보이신 하나님의 역사, 선교사님 가족을 통한 믿음의 삶, 현지 성도들의 헌신, 함께 방문했던 팀원들과의 교제 등으로 풍성한 영적 충전을 누렸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 현지 학교 자원봉사 및 교회 청년들에게 피아노 반주를 가르쳐 줄 단기 봉사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들었다. 모두 함께 기도했다. 귀국 후, 방문 팀원 중 다시 가고 싶은 소원이 있었던 한 언니와 피아노 전공의 다른 자매가 물망에 올라 다시 가는 것으로 얘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피아노 전공 자매가 가지 못하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에게 다시 가고 싶다는 마음이 확 일어났다. 그때 경험했던 순간들을 다시 만날 수 있다면. 한국에서의 시간과 경제적 기회비용을 포기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결국 돌아온 지 한 달 반 만에 다시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다. 학교에서는 정규 교과에 없는 예체능 수업을 위해 언니는 미술을, 나는 음악을 지도할 수 있도록 수업 시간을 빼주셨다. 한편, 교회 청년들이 예배 시간에 반주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것 또한 우리의 미션이었다. 주어진 시간은 3개월. 이 3개월은 나에게 엄청난 시간이 됐다.
피아노 반주를 배우려고 한 남학생이 왔다. 이미 인터넷으로 독학하여 제법 피아노를 칠 줄 아는 아주 명석한 친구였다. 조금만 더 가르치면 잘할 수 있겠다 싶어 욕심이 났다. 내가 한국에서 피아노를 배울 때처럼 엄격하고 빡빡하게 연습시켰다. 처음에는 새로운 걸 배우는 것 같으니까 흥미를 보였던 이 친구가 이내 점점 꽁무니를 빼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걸 위해 난 시간과 돈을 포기하며 희생해서 여기 왔건만. 처음에는 이해해보려고 했지만 그게 잘 안 됐다.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해도 모자랄 판에 자꾸 뺀질거리니 부아가 치밀었다. 만나면 나는 닦달을 해댔고 그는 요리조리 피하기 바빴다. 사이는 점점 안 좋아졌다. 3개월의 결과를 선보이는 연주회를 앞두고 나는 결국 그에게 크게 화를 냈다. 도저히 못하겠으니 알아서 하라고 하고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모든 일은 어찌어찌 마무리가 됐다. 하지만 나는 화해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그냥 잊어버리기로 하고 돌아와 버렸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다시는 가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중학생 때 했던 진로 적성검사의 결과 중 정확히 기억나는 한 가지. 가르치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나왔던 결과 내용이었다. 그렇다. 나는 가르치는 일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검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네팔에서의 3개월이 그걸 증명해 줬다. 가르치는 일을 하기에 나는 너무나 옹졸하고 조급하며 무자비했다. 그동안 가르치는 일을 하며 내가 왜 그렇게 마른 장작 같았는지 이해가 됐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살려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돌아와서 교육 관련 일은 싹 빼고 다시 일자리를 구하면서 가르치는 일을 외면하려 했다. 그러나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고 하나님은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으셨다. 그 공백의 시간 동안 하나님은 어떤 마음으로 내가 다시 가기로 했는지, 가서 어떻게 했어야 했는지를 생각하게 하시며 네팔에서의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하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Do you trust me?"
정말 네가 너의 힘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이번 3개월이 그걸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해 준 시간이지 않니? 네가 할 수 없는 그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너는 나를 정말 신뢰하니?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사랑은 부족하고 마음은 좁아터졌으며 전공도 아니라서 전문성도 없는 난 이 일에 맞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그분이 원하시는 건 달랐다. 나를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기를 원하셨다. 그분의 물음 앞에 섰을 때. 그분의 능력을 통해서만 이것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내가 반드시 이 일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믿음을 통해 확신할 수 있기를 바라셨다는 걸 직시하게 된 순간이었다.
바로 그 남학생에게 사죄의 메일을 보냈다. 정말 미안하다고, 용서해 주길 바란다고. 하나님이 너를 도구로 사용하셔서 나로 이 교훈을 얻게 하시려고 그동안의 시간을 갖게 하신 거라 적었다. 그는 성실하지 못했던 자신의 태도를 반성한다며 열정적인 가르침에 고맙다는 답신을 보내왔다. 메일이 도착하고 보름 뒤. 놀랍게도 학교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이 열렸고 뒤이어 교육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학교에서 일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믿고 싶은 것과 믿을 수 없는 것 사이에서 서성이던 매 순간마다. 그분은 알라딘처럼 나에게 손을 내밀며 같은 질문을 던지셨다. "Do you trust me?"
나에게 필요한 건 그 손을 잡고 그분과 함께 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그물에, 날으는 양탄자에 떨어져 내렸고 한 번도 다치지 않았다. 믿음은 항상 저 벽 너머에 있는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음의 문을 열면
사랑으로 가득 찬
요술처럼 펼쳐지는
저 꿈같은 세상
- A Whole New World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