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는 나랑 각별하다. 누구보다 나를 천연스레 대한다.
내가 노트북 앞에서 타이핑을 하고 있으면 헤엄치듯 다가와 내 무릎 위에 앉는다. 마치 내 몸을 자기 쿠션처럼 여긴다. 옥희의 배와 다리가 내 허벅지에 찹쌀떡처럼 붙는다.
옥희는 하루 동안 이루어지는 내 동선을 안다. 언제 냉장고 문을 여는지, 언제 노트북 앞에 앉는지, 언제 요가 매트를 펼치는지, 옥희는 훤히 꿰고 있다. 옥희는 내 일상의 리듬에 올라탄다.
옥희는 12년 전 지인에게서 데려왔다. 그 지인은 옥희를 길거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했다. 자기를 쳐다보는 눈빛에 홀려 집으로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고, 그는 감격에 젖어 우리에게 말하곤 했다. 옥희는 품종묘인 ‘페르시안’이므로 누군가 키우다가 버렸으리라. 옥색(玉色)의 눈빛. 그래서 이름도 옥희다. 그 후 우리와 살게 된 고양이들은 모두 ‘희’ 자 돌림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내가 고양이들과 함께 있는 걸 아직 낯설어할 때, 옥희는 스스럼없이 나에게 다가왔다. 소 닭 보듯 했던 나와 고양이들의 관계가 옥희로 인해 알콩달콩할 수 있었다. 그러니 나한테 옥희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옥희의 하루도 시작된다. 일어나자마자 툇마루로 이어진 거실 문을 연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던 고양이 서넛이 툇마루를 지나 앞마당으로 나간다. 옥희도 다른 고양이들처럼 바깥으로 나가 아침 공기를 마신다.
옥희는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두 개의 놀이터를 가진 듯하다. 앞마당에서 노닐다가도 내가 식탁에 앉거나, 노트북 앞에 앉거나, 거실 바닥에 눕거나 하면 집 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털이 풍성한 꼬리를 세우고 총총 걸어 나에게 온다. 내 앞에서 가만히 나를 바라보거나, 몸을 비비거나, 내 배에 올라탄다. 그래서 옥희가 나와 함께 있는 때는 대개 일정하다. 내 일상 패턴이 옥희의 리듬을 만든다.
그렇다고 옥희가 전적으로 내 동선에 의지하는 건 아니다. 옥희야말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고양이다. 거실 창을 통해 앞마당을 내다보면 풍성한 하얀 털을 가진 옥희의 움직임이 유독 눈에 띈다. 나비를 쫓아 사방으로 뛰어다니는 옥희의 몸놀림이 경쾌하다. 어쩌다 울타리를 넘어 남의 집 마당을 어슬렁거리기도 한다.
옥희는 사람 나이로 치면 이제 60대다. 나이가 무색하게 옥희는 생기가 넘친다. 고양이는 영원히 아기 얼굴이다.
늦은 밤 거실 문을 열고 “옥희야!”하고 부른다. 앞마당 어둠 속에서 하얀 옥희가 통통 뛰어 들어온다. 이제 하루의 리듬을 마무리할 시간이다. 내가 잠자리에 눕는다. 옥희가 내 머리맡에 자리를 차지하고 눕는다. “잘 자!” 인사를 건네고 하루의 스위치를 끈다.
생명체의 하루는 하늘의 흐름에 따라 패턴을 만든다. 우리 집 고양이들의 하루도 리듬을 만든다. 옥희의 리듬 안에 나의 리듬이 더해져 화음이 만들어진다. 고양이와 사람이 화음을 만들며 행성의 하루를 완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