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키니까 하는 거야’라는 말이 시작될 때

그 말이 반복되는 곳에서, 자람은 멈춘다.

by 사랑


지역아동센터는 무엇을 위한 공간일까?


지역아동센터를 중심으로 그 지역에 ‘돌봄’이 필요한 아동들이 오게 된다.

아동들과의 대화, 혹은 부모 상담을 통해 알게 되는 사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스로 원해서 이곳에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문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들은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알고 오는 걸까?


생각해보면 센터는 아동들에게 이곳이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부터 설명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센터에 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부터 알려준다. <공간 소개, 자신의 자리, 등원 후에 해야 할 일, 생활 방식>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이 지점에 대해 물음표가 생긴다.

센터는 왜 필요한지, 너희에게는 어떤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지 그리고 이곳을 통해 너희가 이렇게 자라나기를 바란다는, 정체성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빠져 있다.


아동에게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어떤 시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는지

미리 전해주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이들은 자신이 이곳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이곳에 와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

센터에서 하라고 하니까 그냥 하는,

점점 수동적인 아이로 자라나게 된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여기에 다녀야 하는 이유,

규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

언어를 바르게 써야 하는 이유 등등.


이 모든 것들은 아동 한 명 한 명에게

‘정체성’을 심어주는 방식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야”라는 동기부여가 아니라

“그냥 시키니까 하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채워지게 된다.


이곳은 수면 시간을 제외하면

아동들이 하루 생활의 3분의 1을 보내는 공간이다.

매일 4~5시간씩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며

삶의 정체성과 자신을 형성해가는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이 공간이 아이를

수동적으로 성장시키는 곳이 되어버린다면,

우리는 아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지켜줘야 할 어른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된다.


자신을 만들어가고 찾아가는 과정 속에는

가정, 학교, 학원, 관계 등 다양한 환경들이 있다.

그중 하나인 지역아동센터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다시 질문해야 한다.


“늦게 와도 공부만 다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공부 끝나면 그냥 집 가면 되잖아요?”

아동들의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면

센터는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이곳이 아동에게 왜 필요한 공간인지,

그 정체성을 제대로 알려줬는지를.


“학교는 감옥 같아요.”

이 말에 아이들이 쉽게 공감하는 이유는 뭘까?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학교의 규칙을 따르고, 정해진 시간표에 맞춰야 하며

그 안에서 자기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역아동센터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이 공간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의미와 이유를 찾지 못한다면

여기도 결국 ‘억지로 가야 하는 곳’이 되고 만다.


아이들이 학교를 감옥처럼 느끼는 건

그저 규칙이 많아서도, 시간이 길어서도 아니다.

자신이 왜 그곳에 있는지 모를 때,

어떤 공간도 나를 억누르는 곳이 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내게 이 일이 왜 필요한지 모르면,

정체성을 잃고 흔들리게 된다.

나의 정체성이 약해지면

번아웃, 우울감, 고립감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진 무너짐이 찾아온다.


아이들은 지금,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들이 능동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아이가 아니라,

“나는 왜 이걸 해야 하는가?”를

묻고 생각할 줄 아는 아이.

그 아이가 자라나기 위해서는

센터가 그 정체성을 먼저 제시해줘야 한다.


“이곳은 너에게 어떤 공간이 될 수 있는지”
“너는 이 시간을 어떻게 채워갈 수 있는지”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것,

그것이 필요하다.


비록 지역아동센터의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이 글은 결국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떤 나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