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닮은 꼴 우정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다리를 다친 아이가 깽이걸음으로 빠르게 걷는다. 휠체어를 든 친구들이 그 뒤를 따른다. 둘인데 하나로 보이는 닮은꼴 아이들, 질풍노도엔 어깨동무할 친구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파릇파릇 싱그럽게 빛난다.
삼별초 최후 항전지 항파두성 내성지에서 왔다. 데크길을 가로질러 수국꽃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었다. 수국이 희멀건 흰색이라 예쁘지 않고 개성도 없다고 석이 말했다. 하필이면 꽃 앞에서 대놓고 그렇게 말하면 듣는 수국이 얼마나 민망할까? 시무룩한 꽃을 피해 도망치듯 빨리 벗어났다.
외성은 우리 키보다 높은 타원형 언덕으로 푸른 풀들이 우거져 있었다. 외성 근처 녹차밭은 아주 작은 규모였다. 보성의 큰 차밭을 연상하면 실망할 것이다. 녹차밭에서 녹차의 개운한 향이 느껴졌다.
수학여행을 온 중학생들이 2대의 버스에서 내렸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른다"는 노래 가사가 있다. 그 나이엔 상큼하고 파릇한 기운이 멀리까지 퍼지는 걸 모를 것이다. 그들의 젊음을 보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다리를 다친 여학생 1명이 발에 하늘색 깁스를 하고 깽이걸음으로 남보다 빠르게 전진했다. 뒤에서 그녀의 휠체어를 든 동급생들이 따라붙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친구들과 수학여행으로 온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서로 사이좋게 단합하는 것이 보기 좋았다. 우르르 몰려가며 끊임없이 떠들고 장난치고 있었다.
손에 휴대폰을 들고 있는데도 풍경을 보거나 찍는 아이는 한 명도 없었다. 저 나이는 풍경이 그냥 풍경인 것이다.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공기나 물처럼 그냥 병풍일 뿐이었다.
그저 희희낙낙 웃으며 질풍노도의 또래 집단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때다. 그러니 저렇게 아픈 아이에게 굳이 수학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을 것이다.
휠체어는 자신들이 들고 가겠다고 모두 같이 가야 의미가 있는 거라고 친구들은 말했을 것이다. 다리가 아픈 아이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어서 굳이 따라나섰을 것이다.
중2병에 걸린 아이들이 무서워 북한에서 남침을 못한다는 말이 있다. 사춘기 아이들은 통제도 안되고 제 멋대로 굴어서 다루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 천방지축들이지만 선생님을 따라다니는 걸 보니 천진난만한 몸짓과 행동이 귀엽고 이뻤다.
석은 고등학교 때 경주로 수학여행을 갔다고 했다. 큰 그릇에 산더미 같은 밥이 떠오른다고 했다. 반찬은 고기는 한 점도 없었다고 했다. 기껏해야 김치랑 멸치가 전부였다고 했다. 한창 자랄 나이라 그것도 서로 먹겠다고 덤벼들었을 수염이 거뭇거뭇한 남자아이들이 떠올랐다. 석은 그때도 먹성이 별로 없는 키가 작은 학생이었다고 했다.
나도 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을 갔다. 유행가에 맞춰 춤을 연습했고 반 대항 장기자랑도 준비했다. 나는 친구들과 놀 생각에 부풀어 잠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수학여행 중에 배가 몹시 아팠다. 열이 나서 토함산에 올라가지 못했다. 모두가 즐겁게 놀 때 홀로 빈 방에 누워 아프고 쓸쓸했던 기억이 났다. 그 아픔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와서도 간헐적으로 계속됐고 결국 여름방학 때 맹장수술을 받아야 했다.
"같이"라는 말은 견딜 힘을 준다. 다친 아이는 오늘 친구들과 함께여서 좋았을 것이다. "모두"속에 하나로 웃는 아이의 모습이 눈부시게 환했다. 저 때의 우정은 가장 값진 훈장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면 서로에게 달아준 훈장이 진짜 귀한 보석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미래에 오늘을 기억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