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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Aug 15. 2021

최고의 하루를 보내길 원한다면 '프리 하게' 사세요.

대충 프리하고 즐겁게 삽시다.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기분이 좋지 않을 때가 있다. 해가 져 버린 창밖을 보면 시간을 허비했다는 죄책감이 든다. 몇 시간 뒤면 하루를 마감해야 한다는 허무함은 덤. 유통기한이 지난 삼각김밥처럼 머릿속 투두 리스트의 상당수를 폐기 처분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비생산적인 하루를 보낸다는 패배감이 뒤를 잇는다.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지 않고 미적거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베개를 밴 뒤통수에 물리적 불쾌감이 더해진다. 피곤해서 좀 쉰 것뿐인데 생산성과 성실성의 잣대로 자체 평가를 해버리므로 자고 일어나도 개운하지가 않다.


 무거운 머리로 나가서 담배를 피운다. 누워서 반쯤 감은 눈으로 봤던 웹툰을 떠올린다. 만화 속 주인공인 생사를 가르는 결투를 마치고도 늘어져라 자고 일어나서 폭식을 하면 말끔히 컨디션을 회복한다. 쉼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 앞을 벗어나지 못하는 나로서는 '언제까지고 자빠져 자도 되는' 무계획적인 삶이 부럽다. 계획은 스토리 작가가 신경 쓰면 될 일이다. 고기에 뼈다귀가 손잡이처럼 달린 '만화 고기'를 먹고도 "부족해~~!"를 외칠 수 있는 돈이 부럽다. '점심에도 외식을 했으니까 저녁은 집밥을 먹어야 되는데...'라고 통장 잔고를 고민하거나, '식사가 너무 과했네.'라며 활명수를 먹는 주인공은 독자에게 인기가 없겠지.


 어쨌든 잠이 보약인 건 창작물 속이나 현실 세계나 둘 다 맞는 말이다. '자고 일어나면 체력을 그만큼 회복한 거지, 시간을 낭비했다고만은 볼 수 없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 끔찍한 더위와 줄어든 운동량 때문에 생체 배터리 용량이 감소하고 방전 빈도는 잦아진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줄어든 건 체력이지 삶의 원동력이나 집중력, 딴짓력은 예전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다. 스마트폰을 오래 써서 배터리가 빨리 닳으면 어떻게 하는가. 충전을 자주 하거나 보조 배터리를 갖고 다닌다. 부족한 게 에너지라면, 조금씩 자주 자서 빨리 회복하고 '컨티뉴(CONTINUE)?'라고 묻는 자신에게 'YES'라고 대답하면 된다. 설령 'NO'를 고르고 종료하면 다른 게임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잠자는 행위 자체가 도덕적으로 나쁜 건 하나도 없다는 자기 변호성 발언이다.


 확실히 어딜 봐도 자기 계발의 관점에서 '계획 없이 사세요.'라는 식의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루틴', '리추얼', '계획적인 삶',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 3가지 정하기’ 같은 팁이 쏟아진다. 알면 알수록 '그동안 이 좋은 방법을 모르고 잘못 살고 있었네.' 같은 죄책감을 느끼기에 좋다. 일은 최적화해서 쉽고 효율적으로 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 인생에도 최적화라는 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지킬 게 많은 삶은 얼마나 얽매이고 갑갑한가. 낮잠을 조금 길게 잤다는 이유만으로 오늘 하루가 망했다고 생각해버린다면 영화 '프리 가이' 속 게임 NPC(Non Playable Character, 게임 속 배경 캐릭터)의 삶을 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영화 프리 가이(2021) 스틸컷, 라이언 레이놀즈가 연기한 주인공 '가이'와 경비원 친구(출처 : 네이버 영화)


 NPC의 뜻이 '논 플레이어블 캐릭터'인 것부터 확실히 '플레이를 할 수 없는', 즐겁지 못한 느낌을 준다. 매일 마시던 커피 대신 다른 커피를 주문하는 일을 상상할 수 없다. 하늘색 셔츠에 베이지색 바지 말고 다른 출근복이 없다. 결근이란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일생의 짝을 찾으면서도 자신과 다른 세상을 사는 아름다운 사람에겐 감히 말을 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정해진 일상을 산다. 일상의 루틴과 투두 리스트를 중요하게 생각할수록 규칙을 위반하는 상황에서 스트레스를 받기 쉽다.


 누구보다 규칙적으로 프로그램된 삶의 경계를 지키는 영화 속 주인공 '가이'가 항상 고객에게 건네는 인사말이 있다. "Don't have a good day, Have a Great day." 그냥 좋은 하루 말고 최고의 하루를 보내라는 말이 쉽지 않냐고? 먼저 자신에게 '좋은 하루'란 어떤 의미이며, '최고의 하루'는 어떤 일을 하며 보내는 하루를 뜻할지 생각해보자. 낮잠을 좀 길게 잤다고 낙심하기에는 섣부른 것이, 망친 것은 루틴일 뿐이지 오늘 하루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하고 자면 된다. 낮잠을 잔만큼 더 늦게 자면 되지 않는가.  


 낮에 자면 게으르고 밤에 늦게 자면 불성실하다는 판단 기준도 개념에 불과하다. 생산적인 삶은 좋으나, 생산자를 관리 감독하는 관리자로서 1인 2역을 하느라 피곤한 것은 좋지 않다. 해야 되는 일에 치여 살지 말고 하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해보자. 뭘 하면 재밌을까를 생각하며 너무 계획에 집착하지 말고 대충 프리 하게 살자. 즐겁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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