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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어리 Mar 17. 2022

하루에 서점 8곳 다녀오면 일어나는 일

난생 처음 떠난 서점 영업에서 깨달은 출판유통의 비밀

주말 아침잠이 오늘따라 달콤합니다. 주중에 출근한 죗값을 갚느라 기상 시간이 늦어졌습니다. 오후에도 이렇게 늘어져라 누워있고 싶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잠만 자고 싶은 상태는 회피하고 싶은 심리 때문이라고 어디서 들은 말에 괜히 뜨끔해서 무거운 엉덩이를 옮깁니다. 회피하고 싶은 상황이란 귀한 신간 도서가 서점 매대에 잠깐 머물다가 다른 책에 밀려나 사라지는 비극을 말합니다. 


아무리 책을 좋아하고 책방 구경을 좋아하는 사람도 하루에 서점을 두 곳 이상 다녀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연달아 방문할 일도 없고요. 점심 무렵부터 시작해서 영업 종료시간까지 하루에 여덟 군데 서점을 다녀오던 밤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늘의 고생은 독서를 즐기는 자로서만 남길 거부한 대가라고요. 독자에서 저자가 되니 서점이 달리 보입니다. 은은한 종이 냄새가 감도는 평화로운 공간은 전쟁터였습니다. 서가를 유유히 지나치는 독서가에게 한 번이라도 눈길을 달라고 수만 권의 책이 소리 없이 절규하는 수라장입니다. 


매대에 깔린 책은 힘들게 꾸민 책의 얼굴, 표지를 고객에게 한 번이라도 보여줄 확률이 높습니다. 매대에 놓여있더라도 책등을 세워 꽂혀있는 책은 아쉽지만 보이기라도 하니 다행입니다. 벽서가에 꽂힌 책이 신간이라는 티조차 내지 못하는 처지에 비하면 훨씬 낫습니다. 교보문고 가든파이브점, 잠실점, 천호점, 강남점, 신논현역 스토어, 청량리 바로드림센터, 동대문 바로드림센터를 거쳐 광화문점까지 돌아보니 같은 대형 서점이라해도 한끗 차이로 희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책이 평대에 놓이거나 서가에 꽂히는 운명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대형서점이라고 해도 지점마다 진열 방식이 다른 점이 궁금했습니다. 평대에 누운 책을 볼 수 있었던 강남점, 잠실점, 광화문점 같은 누가 봐도 큰 지점은 공간이 넓은만큼 책을 눕혀놓을 평대 면적도 충분했습니다. 반면에 지하철역사 안에 있었던 신논현역 스토어, 비교적 매장이 작은 편인 바로드림센터는 생각만큼 진열 공간이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그 중에서도 천호점 같은 애매한 지점도 있었습니다. 작은 매장도 아니고 신간 매대도 있는데 제 책은 벽서가에 꽂혀있는.


이럴 때는 모른척하고 질문해보기도 했습니다.

(정어리) "안녕하세요, 자기계발 코너는 혹시 신간 매대가 없나요?"


직원이 신간 매대를 안내하면 숨겨왔던 정체를 밝힙니다. 지난 주에 갓 나온 책이라면서 평대에서 밀려난 설움을 어필하는 방법이지요. 

(서점 직원) "아 매대가 있는데 책이 조금 들어오면…. (머뭇) 진열 해드릴 수 있어요. 예."


새로나온 책을 위한 공간이 있다. 새 책은 그 곳에 진열하여 고객에게 알리고 있다. 그럼에도 소개받지 못한 책이 있다는 '기승전-책'의 흐름으로 동정표를 얻어봅니다. 


저녁 늦게 들른 동대문 지점에서는 뜻밖의 설명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광화문 같은 큰 지점은 몰라도 작은 곳은 책을 깔아놓으려면 재고가 충분히 들어와야 합니다. 소규모 지점까지 입고를 넉넉히 하기에는 파주 물류센터가 재고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매대에 진열할 도서를 선정하는 기준이 까다로운 이유이죠. 서점에 입고할 책은 물류창고에서 옵니다. 지점마다 책이 다섯 권, 열 권씩 쌓여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저자의 책을 그렇게 많이 주문했다간 창고가 남아나질 않을 겁니다. 소비자나 창작자가 아닌 공급자의 사정을 알고나니 어쩌면 평대 진열을 마냥 고집하는 일은 초보 저자의 이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출간 일주일째 되던 날, 주말에 돌아본 여덟 군데의 서점 인증샷. 평대와 벽서가를 확인할 때마다 일희일비했습니다.

 

하루에 돌아본 서점이 여덟 곳인만큼 직원 분들의 반응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아… 보고 진행할 거 있으면 연락드릴게요."

"네네 알겠습니다.(모니터를 보며)"

무덤덤하게 응대해주는 직원도 있었고,


"안녕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제가 읽어볼게요!"

"아~ 그러세요~ 직접 와주셨네요. 저희가 보고 체크해보겠습니다."

힘든 발걸음으로 찾아간 보람을 느끼게 해준 친절함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저자이기 전에 평범한 사무직 직원으로서 회사에 찾아오는 불청객 영업사원을 대했던 제 자신이 어땠는지 돌아보게 되는 순간들이었습니다. 다음에 그들이 찾아오면 저는 웃으면서 좋은 말이라도 한 마디 건넬 수 있을까요? 여전히 힘들 것 같긴 합니다만. 인생 첫 서점영업을 마친 날 밤, 광화문점을 나와 홀가분한 마음으로 르메이에르 종로타운이 보이는 교차로 앞에 서있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역시 인터넷 서점에 이미지와 글자로만 마주하던 책을 서점에서 실물로 영접하니 비로소 출간했다는 실감이 납니다. 평대와 벽서가는 하늘과 땅 차이. 빈부격차를 뼈저리게 체감했습니다. 출간 후 한 달이 중요한 이유를 몸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젊은 시기이듯이 나의 책도 바로 이 때가 가장 프레쉬합니다. 유명 작가도, 무명 작가가 똑같이 새로나온 책 매대에 나란히 누워있는 지금이 책을 알리기에 가장 빠른 때입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영업을 다닌다고 해서 정말로 책을 신간 매대로, 평대로 옮겨 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마감을 앞둔 청계천 앞 카페에서 스마트폰 배터리를 충전하며 지친 몸을 쉬었습니다.


초보 저자 정어리의 조언 ⑤
누구에게든지 초면에 첫 마디를 건네기란 어렵습니다. 말하고 생각하기보다 말하기 전에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대답할지를 머릿속으로 상상해보면 좋습니다. 실제로 의도한대로 대화가 흘러가면 뿌듯하기도 하고요.


덧붙이는 말.

'이렇게 발발 돌아다니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지만, 때로는 이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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