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소송》, 《성》, 프란츠 카프카
동화적 아름다움에
어두운 공포감이 겹치는 카프카.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도시 풍경 이면에
오랜 지배와 침략의 역사가
잠들어 있는 도시, 프라하.
둘은 닮았다.
카프카와 프라하는 닮았다.
프란츠 카프카는 기괴한 한편 동화적인 인상의 작품들을 많이 남긴 체코 프라하 출신 작가로, 대중에게 가장 익숙한 작품은 <변신> 일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미완의 장편 소설들이 주는 매력이 더욱 크게 다가왔다.《 성》《 소송》 등 미완의 작품과 중편 <변신>에서 카프카의 주인공은 이유 모를 부조리와 불안에 쫓기곤 한다. 주인공을 곤란하게 하는 것은 명확지 않고 모호하며 그 실체를 감추고 있는 까닭에 작품의 주인공도 작품을 읽는 독자도 혼란스럽고 두려움을 느끼곤 한다.
카프카와 그의 작품들 그리고 그 안의 쫓기고 괴롭힘을 당하는 인물들은 얼핏 현실과 동떨어진 것 같다. 기괴하고 괴상한 상황과 인물은 현실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상황과 인물은 실은 현실을 상징하고 있어,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주인공을 괴롭히며 쫓는 실체의 현실성에 몸서리쳐진다.
<변신>은 그레고르 잠자가 이유도 모르고 어쩌면 억울하게 벌레로 변한 것에서 시작한다. 잠자의 변모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일하며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을 짊어져야 하는 상황과 이 과정에서 주인공이 겪는 압박감과 소외감을 의미한다. 카프카는 주인공의 변신을 기괴하고 동화적인 상상력으로 표현했다.《 소송》의 요제프 K가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고, 체포된 이유를 모르고 1년 동안 고초를 겪다가 결국 처형되는 것은 법 체제와 법의 권위, 관료주의의 부조리와 그에 따른 속박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성》의 주인공 K는 토지측량사로 성의 관리로 배치되고 성에 들어가려 하지만, 성에 들어가는 것도 성이 있는 마을에 머무는 것도 배척당한다.
이러한 상황은 낯선 인물을 포함한 낯선 것에 관대하지 않은 사람들과 문화 그리고 다른 존재를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 인식이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카프카의 작품들은 내밀한 상징을 해석하기 전에는 대부분 갇힌 공간과 닫힌 상황, 어려움을 겪으며 크든 작든 투쟁하는 주인공, 좌절되는 투쟁, 기괴한 스토리와 결말 등으로 신비롭고 다소 괴상한 동화의 느낌을 준다. 그러나 그 내용과 상징을 분석하면 카프카의 주인공이 실체를 모르는 것에 이유도 영문도 모르고 쫓기다 불안과 좌절을 경험하는 것처럼,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늘 불안과 좌절을 주변에 두고 그것에 쫓기며 살아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불안과 좌절을 경험하기 쉬운 사회이다. 그레고르 잠자가 경제활동, 재산의 소유, 재산 증식에 관한 부담을 느꼈던 것은 지금의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과거보다 더욱 치열해진 경쟁 사회에서 불안과 좌절은 그 강도를 더욱 높여가고 있다. 요제프 K가 자신이 지은 죄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죄를 지었는지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법적 권력 앞에 정당하게 맞서 보지 못하고 무력했던 것을 현재 사회에서 힘없는 많은 사람이 경험하고 있다. K가 성에 들어가지도 성이 있는 마을에 편히 머무르지도 못했던 것은 사회의 주된 흐름을 잡고 있는 이들이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른 면이 있으면(외국인, 다문화가정, 장애인, 그 외 사회 약자나 소외계층 등) 배척하는 행태와 문화에 겹쳐진다.
그의 작품 곳곳 동화 같은 비현실적 이야기 속에 날카롭게 숨어 있는 위태로운 현실을 독자는 빈번히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보고 나면 분명 남의 이야기를 읽은 것인데도 비현실적 현실 앞에 소름이 돋곤 한다. 카프카는 사실적이고 단순하며 건조한 문체로 비현실적인 현실감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고, 사회 현상이나 상황에 관한 비판을 상징을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가 만들어낸 주인공도, 주인공에게 불안과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모호한 무엇도 바로 내가 되고 겪을 수 있다는 데 공포와 두려움은 고조된다.
카프카를 낳은 도시 프라하. 그 도시의 첫인상도 비현실적이다. 밤기차를 타고 낯선 설렘과 약간의 떨림을 느끼며 도착했던 프라하의 신시가는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여행자가 안전하다고 느끼게 해주었다. 그다음 날 여행의 피로에 몽롱한 채 거닐던 구시가는 중세적인 멋스러움과 아기자기함을 잘 간직하고 있었고, 특히 곳곳의 상점에서 인형을 많이 팔고 있어서 더욱 동화적 공간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에 스스로도 어색했던 건 동화적인 도시풍경 이면에 타민족과 타국가의 오랜 지배와 침략의 역사가 되풀이되었던 걸 알기 때문이었다. 프라하가 수도로 자리한 체코는 체코라는 근대 국가 이전, 보헤미아 왕국 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300년이 넘도록 받아왔다. 1918년 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했지만, 다시 독일과 소련의 침략이 이어졌고 체코슬로바키아는 공산화된다. 다행히도 1980년대 동유럽 공산국들에 개혁개방의 흐름과 움직임이 일고, 이는 체코슬로바키아에도 영향을 주었다. 1989년 벨벳 혁명(Sametov´a Revoluce)을 통해 체코슬로바키아에서 공산당 정권이 무너지고, 1993년에 이르러서 슬로바키아와 분리되며 체코는 민주주의 독립국(체코 공화국)이 될 수 있었다. 지배와 침략이 점철되던 곳에 20세기 말에야 온전한 독립이 자리한 것이다.
마냥 아기자기해 보이고 동화 같은 프라하는 그 외면과는 다르게 지배와 침략이라는 이면의 현실성을 담고 있는 공간이다. 주인공이 어려움을 겪거나 배척당하는 카프카의 작품도, 그의 작품을 낳고 역사적 아픔을 안은 대상으로서의 프라하도 너무도 현실적(여기서 현실은 일부 부정적인 어려움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긍정적인 현실보다 부정적인 현실이 비판적인 시각을 더 많이 내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다.
카프카의 작품과 프라하는 닮았다.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첫인상에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가, 내면의 현실적 풍경을 대하면 그 풍경 안을 안타깝게 헤매는 주인공들에 이입되어 묘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그가 그려낸 어두운 동화를 읽으면 이야기 안을 이리저리 헤매는 느낌이 든다. 프라하에서도 아름답고 어두운 공간을 몽롱하게 뜻 모를 두려움을 갖고 헤매는 기분이 든다. 동화적 아름다움에 어두운 공포감이 겹친다.
카프카의 문학이 갖는 힘은 이것이다. 동화적인 구성 요소와 상황은 가져오되, 그 안에 사회 현실과 현실에서 파생된 문제들 그리고 문제들에 관한 사유를 핍진하게 녹여내는 것이 카프카의 힘이자, 그의 문학이 갖는 차별점이다. 이러한 장점 덕분에 그의 문학이 시대를 넘어 여전히 사랑받고 평가받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시대만의 문제를 그려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시대를 초월한 인간 사회의 문제와 좌절, 불안을 그려냈기에 동 시대성을 획득할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인간 사회의 문제와 불안이 시대를 초월할 정도면 그러한 문제와 불안은 인간이 있는 곳이라면 함께할 수밖에 없는 것이란 생각에 의기소침해지고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문제점도 좌절도 불안도 공포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카프카와 함께 현실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운 것 같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게 영향을 준 그의 장편 소설들이 미완이었듯이, 그가 내게 준 현실의 답 역시 미완인 체로, 열려있는 것이다. 열린 결말은 현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마냥 좌절하고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의미하며 모호한 공포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