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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i 고나희 Dec 05. 2018

어른아이의 집여행

《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셰익스피어 & 컴퍼니)》, 제레미 머서

몸도 머리도 커버렸다.

드높던 천장은 많이 낮아졌고,

호기심과 상상력도 줄었을 테지.

여행의 공간과 모험의 세계를

그렇게 잃었고,

이제 집여행은 책여행으로 진화했다.




어릴 적 짐을 싸곤 했다. 그 봇짐을 둘러메고 크지도 않은 집을 여기저기 여행했다. 허클베리 핀만 모험하는 게 아니다. 어린아이라면 숲이나 정글, 동굴 말고도 집에서 여행하고 모험을 도모해볼 수 있다. 익숙한 공간이었지만 어린 상상력과 함께했기에 재미있지 않은 곳이 없었고, 상상력으로 집 안팎 구역을 나누며 놀던 내게 낯설지 않은 곳은 없었다.

안방에 책을 쌓아놓고 그 위에 천을 씌워두곤 천막이나 텐트처럼 여겼다. 일종의 베이스캠프였다. 그리고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작은방에서 부엌과 거실로 집여행을 했다. 집여행은 혼자 하기도 했지만, 많은 경우 동생과 함께였다. 어느 날, 집에 벌이 들어왔다. 엄마도 없는데! 한 명은 담요를 뒤집어쓰고, 다른 한 명은 망가진 밥통을 뒤집어쓰고 벌을 쫓기 위해 사투를 벌였다. 벌을 쫓아내긴커녕 우리가 쫓겨서 엄마가 집에 오실 때까지 화장실도 못 가고 작은 방에 있어야 했지만, 벌 앞에 용감했다는 데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작은 전투였으니까.

그렇게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엉뚱한 생각을 담아 시각을 조금 달리하면 익숙한 일상과 집은 사라지고 낯설고 물선 공간에서의 모험이 시작됐다. 덕분에 집여행은 많은 에피소드를 낳았고, 생소한 모험으로 가득했으며, 꽤 도전적이었지만 여행 중에도 집이라는 어렴풋한 인식에 안전함과 편안함을 느끼고 안심할 수 있었다. 나의 집여행은 다소 역설적이게도 ‘안전하고 편안한 모험’이었다.

안타깝게도 조금 성장한 후에 집은 내게 모험과 여행의 공간으로는 부족했다. 내가 너무 큰 까닭이었다. 몸도 머리도 커버렸다. 드높던 천장은 많이 낮아졌고, 눈과 머리는 빠르고 정확하며 사실적으로 집 안 곳곳을 이해하고 인식했다. 호기심과 상상력도 줄었을 테지. 여행의 공간과 모험의 세계를 그렇게 잃었고, 문득 그걸 눈치챘을 때 잠시 슬픔을 느꼈지만, 잃어버린 상상의 세계를 고스란히 되찾을 수는 없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을 등지고 왼편으로 다리 하나 건너면, 고서점이 자리하고 있다. 낡고 작은 아담한 서점. 노란 간판에 ‘Shakespeare & Company’라고 쓰인 초록색 글자가 눈에 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실비아 비치가 1919년 문을 열어 파리에 있는 미국과 영국 작가들, 즉 영미문화권 작가들의 문학살롱으로 기능했던 서점에서 ‘시작한다.’ 이 서점에서 책을 빌리고, 문학적 교류와 활동을 했던 대표적인 작가가 헤밍웨이고, 그 외 거트루드 스타인과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소위 ‘잃어버린 세대’의 작가들도 단골손님이었다.

‘시작한다’고 한 것은 지금 파리에 있는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1919년 시작된 그 서점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비아 비치의 서점은 1941년 문을 닫는다. 그 후 조지 휘트먼이 1951년 서점을 열고,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맞아 서점의 이름을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로 개명하며 실비아 비치의 서점을 정서적·문화적으로 잇게 된다.

지금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가 1950년대에 문을 연 곳이니, 내가 처음 파리에 갔던 때도 서점은 그곳에 자리했을 텐데, 그곳의 존재를 몰랐기에 보지도 가지도 못했다. 몇 년 뒤《 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셰익스피어 & 컴퍼니)》을 읽으며 서점의 존재를 알게 됐고, 두 번째 파리여행에서 서점을 찾았다.


제레미 머서는 실업자가 되어 센 강변을 거닐다, 비를 피해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 우연히 들어선다. 마침 서점에서 홍차 파티가 있던 날이라, 그는 그곳에서 포근한 시간을 갖고 서점에서 머무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서점에 머무르며 그곳에서 겪고 느낀 경험을 소설로 옮긴 것이《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이다. 개인의 경험적이고 자전적인 이야기를 시간순으로 담은 책은 많은 경우 내게 감흥을 주지 않는다. 다른 이의 일기를 읽는 건 흥미 없다. 때론 따분한 자서전을 읽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내게 평범한 인상을 남길 뻔했던 이 책은 어린 나의 ‘집여행’을 연상시키며 새로운 의미를 가졌다.

《시간이 멈춰 선 파리의 고서점》은 공간이 주요하게 담긴 소설로, 대부분의 이야기를 서점 안에서 엮고 있다. 공간 안팎과 주변부까지 포함한 이야기보다는 공간의 ‘안’과 그 공간에 있는 사람의‘ 내면’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니 이야기를 따라가는 포인트는 둘이다. 하나는 서점 안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고, 다른 하나는 주인공이자 화자인 제레미 머서가 서점 생활을 통해 작가로서 그리고 인간으로 성장하는 내적 이야기이다.

서점은 책이 가득한 곳이니 작가나 책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편안한 느낌을 주는 공간이다. 그러나 서점을 단순하고 한시적으로 향유하는 것과 일상 공간으로 소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손님으로는 편했던 공간이 그곳에서 살아가는 이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도 살림집이 있었지만 사장인 조지 휘트먼과 그의 특별한 친구나 작가들이 머무는 곳이지 모두에게 개방된 공간은 아니었다. 서점 곳곳 불편하고 푹 꺼진 침대가 놓여있어 서점에서 머무는 사람 대부분은 간신히 잠자리를 제공받는 정도였다. 어쨌든 모든 걸 잃은 것 같던 작가(머서)에겐 그 서점 외에 별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거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분명 책을 파는 상업적인 업무와 행위가 이루어지는 서점이었지만, 일반적인 서점의 개념과는 좀 다른 곳이다. 팔아야 할 책을 빌려주는 ‘도서관’으로 운영되기도 했고, 많은 작가가 그곳에 머무르며 작품을 쓰는 ‘작업실’이자, 먹고 자고 작품을 쓰며 생활했던 ‘집’으로 기능하기도 했다. 휘트먼은 출판사에서 정식으로 출간된 책을 쓴 작가에게는 서점 곳곳에 만들어둔 허름한 침대를 제공했다. 머서도 서점에 머무른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숙박비는 자서전을 쓸 것, 하루에 책 한 권을 읽을 것, 서점 일을 조금 돕는 것이었다. 머서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한편 안락한 환경이었다. 갈 곳 없던 그가 잠시나마 머물 집을 찾았으니 안락했고, 불편한 침대와 수시로 바뀌는 서점 친구들, 많은 이와의 공동생활은 익숙하지 않은 문제였다.

그에게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서점이자 한동안 머문 집이었으며 여행지였고 나중에는 하나의 세계로까지 인식된다. 성인 작가가 작은 서점을 배경으로 쓴 작품이지만, 이 작은 공간에서의 일상은 상당히 모험적이다. 이 서점은 짜임새 있게 짜인 공간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고쳐진 곳이었다. 낡고 임시방편으로 만든 것 투성이인 서점 안은 편하지는 않지만 재미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안락함과 재미가 늘 같이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침대가 놓인 도서관, 특이한 시인이 지키고 있는 고서실, 바퀴벌레가 수시로 들고나는 부엌, 서점에 머무는 사람들을 믿고 서점을 비우는 휘트먼. 이 공간에서의 삶이 머서에게 모험이 아니면 무엇일지. 그리고 낯선 곳, 낯선 사람, 낯선 삶의 방식은 어른도 어린아이로 만들어버리는 법이다.

‘어른아이’가 되어버린 머서는 조금 독특하게 꾸며진 서점을 설은 눈으로 이리저리 살피며 그 공간에 차차로 적응해간다. 때때론 아이가 부모를 대하는 것처럼 까다롭고 변덕스러운 휘트먼의 눈치를 적당히 봐가며 반노숙자의 일상을 나름의 방식으로 꾸려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끝나버린 줄 알았던 자기 삶의 또 다른 가능성을 꿈꾸고 발견하는 과정은 진지하면서도 천진하다.

서점에서의 생활은 머서에게 변화를 일으킨다. 뭔가 비현실적인 서점 안에서 지내다 보니 그 밖의 생활과 현실감각을 조금씩 잃어가기는 했지만, 그는 진지하게 글쓰기를 생각하게 되고 다시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본래 그는 진지한 방향의 작가라기보다는 자극적인 소재로 괜찮은 명성을 얻은 기자 겸 작가였다. 유명하든 유명하지 않든, 잘 쓰든 못 쓰든, 늙었든 젊든 서점에서는 뭔가를 쓰는 작가와 시인 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고, 이것은 머서에게 분명하고 꾸준한 자극을 준다. 서점에서의 생활이 글쓰기에 완벽하거나 그에 가까운 환경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공동생활이라 신경 쓰일 것도 많지만 그는 자신을 돌아보고 ‘다시 쓰게’ 된다. 글을 쓰는 이에게 멈춰 선 펜을 다시 잡게 되는 것만큼 의미 있고 큰 변화는 없다. 그 변화는 곧 그의 재기를 의미한다. 낡은 서점에서의 여행이 그를 작가와 인간으로서 다시 나아가게끔 한 것이다. 


‘어른아이’와 같은 머서의 모습과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에서의 비틀어진 동화 같은 이야기는 작고 아담한 공간을 자유로이 모험하고 누렸다는 데 있어 어린 나의 ‘집여행’과 많은 부분 겹친다. 안타깝지만 분명하게도 나의 상상력은 어릴 적만 못하다. 그렇다고 내가 집을 여행했던 시간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순간의 상상력과 재미를 동력으로 그와는 다른 흥밋거리와 취향으로 나아갔으니까.

그리고 내게 그나마 남은 상상의 영역을 소중히 다루고자, 어릴 적에 비해 조미료 한 스푼 정도로 남아버린 상상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 나는 여행을 계속한다. 책여행, 일상여행, 국내외 여행, 답사 등. 가장 흥미로운 여행은 책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적어도 펜을 놓게 만들지 않을 거고, 혹시라도 놓았던 펜을 다시 쥐게 할 것이다. 어린아이의 집여행은 그렇게 펜을 들게 하는 책여행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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