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같았으면 그랬을 것이다
슬리퍼 신었으니까 그냥 들어가자
오늘은 기분도 그렇고, 쉬는 게 낫겠다
하지만 오늘 나는
슬리퍼를 신은 채로, 걸어 나왔고
바나나 세 개를 사먹었고
당근 거래를 마무리했고
헬스장 앞까지 걸어왔다
운동화도 아니고
마음도 꺾인 날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유산소는 아니더라도, 스트레칭이라도 하자고 내게 말했다
그 말 한마디가 내 하루를 바꿨다
감정의 바닥에서 구조를 찾다
나는 오늘 오전부터 기분이 꺾여 있었다
짜증나는 일이 있었고
그 감정은 내 하루 전체에 스며들었다
하지만 나는 예전의 나처럼
이불 속에 숨어들지 않았다
슬리퍼 신은 채로라도
내 감정을 내 몸으로 흐르게 하기로 했다
이건 운동이 아니라
감정 회복 루틴이었다
가볍게라도 실행하는 구조
작더라도 자기 효용을 회복하는 선택
삶을 고치는 기술은 거창한 계획이 아니다
7년 된 아이패드 프로를 20만 원에 팔고
그 돈으로 커피 한 잔을 사고
바나나를 보충하고
헬스장까지 걸어간다
이 작은 순환이
오늘 하루를 지탱했다
나는 무너지고 싶었지만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이미 내 안에 만들어 두었기에
오늘도 다시 나를 구할 수 있었다
결론
슬리퍼를 신고 나온 날, 나는 내 삶의 설계자였다
거창한 계획 없이도
작은 의지와 구조만으로도
인간은 다시 일어선다
감정이 무너질 때마다 나는 이렇게 나를 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