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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삶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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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서 Apr 22. 2017

폭언과 저주로 인하여

결국에는 망할 것이다

패망의 선고


노모는 폭언과 저주 뿐이다.

말하는 것이

고작 그것 뿐이다.

나에게 시작된 폭언과 저주가

아내와

여러 사람들을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한다.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가 매우 심한 주취상태로

내가 학교에 갔다올 때마다

나와 동생이 보는 앞에서

늘 노모와

때리고 욕하며 싸우면서도

노모에게 매일 경고했었다.

"네 년은 말로 망한다!"

아버지란 사람도

정말로 사는 것을 볼 때

인간 수준의 이하인데,

그 때는 나는 아버지가 매우 나빴다.

지금은 노모가 더 나쁘다.


노모의 말은

양치질을 안한 입보다 더 더렵다.

아내와 여러 사람들에게도

폭언과 저주를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경찰관과 상담 담당 사회복지사들에겐

그런 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상습적으로 많이 하면서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나에게 손가락질 하면서

내가 작화증에 걸린 중증 정신병자란다.


노모는 어찌할려고 그런가?

폭언과 저주가 일상적이니

그러다가

아버지의 경고가 이루어지고 말겠다.

노모는 학교 다닐 적에

당시 독서를 남들보다 많이 했다면서

왜 사악하고 나쁘게 사는가?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정신병짓이라 한다.


어느 날에

노모가 폭언과 저주로 인해

법적인 소송에 휘말릴 때

나는 재판관에게 분명히 말할 것이다.

나와 아내, 여러사람들에게 상처입힌 것들도

법으로 다 엄히 다스리어

고액의 위자료를 받아내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노모의 편이 아니다.


언젠가

내가 노모와 헤어질 때

나는 다시금 노모를 찾지 않는다.

노모가 임종에 임박했을 때도

아내가 찾아가자고 말해도

나는 절대로 찾아가지 않는다.

노모의 장례식 때도 마찬가지이다.

이모들과 이종사촌 여동생이

노모의 친구분들이,

노모를 대신해서

나와 아내에게 사과와 용서를 구해도 말이다.


노모의 폭언과 저주로 인해서

나는 원치 않는 삶을 살았다.

내 인생의 절반동안 힘들게 살아왔다.

나는 중증 정신 장애인처럼 살아왔다.

차라리

내가 어릴 적에

나 모르게

경건하고 건강한 기독교 가정에 입양되었으면

이렇게 한탄하지 않고,

나는 지금 인생의 꽃을 피우고 있었을텐데.


     모 은행 모 지점 용역 경비원 대체근무 중에서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에필로그)


내가 처음으로 원했던 직업은 관공서 또는 은행에서 채용된 은행의 정규직 청원경찰이었다.

예수님이 내게 허락해주신 직업이자 꿈이였다.

나는 20대 초까지만 해도 남들보다 무술수련을 매우 좋아했었다.


그것을 알지 못하는 내 부모는 그 당시에도 내게 반대와 폭언, 저주를 쏟아냄으로 학교에서의 체육수업을 매우 싫어지게 한데다 운동신경을 매우 둔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술수련을 통해 국가와 국민을 위해 헌신.희생하는 청원경찰로 근무하고자 했었다.

병역의무 후에 바로 은행의 정규직 청원경찰에 도전했었으나 무술단증이 없다는 이유로 불합격된 아픔을 갖고 있다.


내 부모는 내가 당시에 해동검도를 수련하여 유단자가 되는 것에 대해서도 정신병자라고 여기어 나의 20대 초반부터 지금 40살까지 제대로 취업의 장애물을 놓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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