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속

내 우울의 이유

by 나인

드디어 병원에 간다. 확실히 예민해졌고, 확실히 울컥하는 느낌도 심해져서 별거 아닌 것에도 싸움이 난다. 정신과에서 주는 약은 정말 빼먹지 말고 먹어야 한다는 걸 절실히 깨닫는 중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멍하게 앉아 있었는데, 하나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상태. 평온하다. 조용하고 고요하다....


병원에 가서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생각했다. 지난번 질문 중 엄마는 어떤 사람이냐.. 는 말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일까? 이 생각이 병원에 가지 않은 2주 동안 머리에서 맴돌았다. 많은 시간이 있었는데 명확하게 답하기가 어려웠다. 우리 엄마는 착하다.. 걱정이 많다. 걱정이 많아서 조심하는 것도 많다. 그래서 우리를 키우실 때에도 그 불안으로 인해 우리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뚫고 나왔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런데 이게 내 우울의 이유일까...


생각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면, 마음이 아프다. 저 안에 아무도 열지 못한 상자 하나가 꿈틀댄다. 여기 여기 여기... 하지만 그 상자는 결국 깊은 곳으로 도망가버린다. 그 상자를 열면 그럴 리 없지만,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다. 그러다 나는 점점 그 상자를 따라 아래로 아래로... 몸이 밑으로 꺼지면서 심해로 들어간다. 아주 깊은 깜깜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 그곳에 내가 홀로 서있다. 여긴 아무도 살지 않는 무중력의 공간이다. 이곳으로 누가 이끌지도 않았고, 그냥 떨어져 버렸다. 진짜 심해에는 바닥이라도 있을 텐데, 여긴 바닥도 없다.


내가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멍하게 둥둥 떠있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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