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기점과 0의 삶

아픈 몸으로 살기

by 이현선

원치 않게 그리고 예기치 못하게 찾아온 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내 앞에 나타난 "갈림길"이었다.

다만 두 갈래 길 중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는 정해져 있는 갈림길이었다. 너는 이제 아픈 몸을 사는 수밖에 없다고 정해진 방향으로 등을 떠밀었고 언제 터질 지 모르는 폭탄 같은 병을 안고 산다는 것은 제법 불안과 공포를 동반하는 일이었다.


친구들이 하나 둘 면허를 따기 시작하던 때 초보운전인 친구의 차를 얻어 타는 때면 한 번씩은 꼭 알 수 없는 길로 빠져들었다. 고속도로에서는 분기점을 지나쳐 내비의 도착 예정시간이 배로 늘어났고, 서울 초행길에는 차선을 착각했더니 한강을 연달아 세 번 건넜다.


그러나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분기점은 지난다. 살면서 주어지는 것과 선택하는 모든 것들이 모두 삶의 분기점이 되어 매번 머릿속이 하얗게 되도록 고민하기도 하고, 감으로 내던지기도 한다.


하나의 선택은 다음 분기점으로 이어진다. 어쨌든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선택의 결과들이 이어져 내게 오는 것이다.

내 삶의 좋은 일만 그대로 취하고 나쁜 일은 거부하려 하면 거기서 괴리가 오고 괴로워진다. 좋은 것이 있으면 어쨌든 나쁜 것도 있고 모든 것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다. 어느 한쪽만 완벽하게 막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병을 겪는 과정은 거대한 고통과 결단보다는 물살에 휩쓸리는 듯한 포기와 타협의 연속이었을 뿐, 초탈하거나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도 못했다.

으레 큰 일을 겪고 나면 무언가 깨달음을 얻고 삶도 더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바뀌는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그릇이 작은 채로, 작은 일에 감동받는 만큼 작은 일에 화내기도 한다.


그러나 다만, 견딜 수 없을 줄만 알았던 불행도 내 삶의 일부라는 것을 배웠다.

'-했더라면'. 또는 '-가 아니었더라면'. 그런 가정은 의미가 없다. 이미 지나 온 길이고 언제나 그 끝과 다음 시작의 지점에 서 있다.

죽도록 미웠던 불행들이 어쩌면 그 다음 행운을 가져왔을지도 모른다. 모든 선택과 흐름이 여기로 데려왔기에 그 중 무엇도 오롯이 미워만 할 수는 없다. 그 사실로 오늘도 내 작은 불행을 다독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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