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배민 홈, 왜 바꿨을까?
서비스 리서치를 위해 오랜만에 배달의민족에 들어간 나는 혹하게 만드는 공지를 하나 발견해버렸다. 배달의민족 앱 홈이 바뀐다는 신선한 이야기.
작년 말 쿠팡이츠로 갈아탄 이후로 서비스 이용 빈도는 확 줄었지만, 몇번 접속할 때면 늘 궁금했다. 배민은 왜 같은 모양의 홈 스타일을 고집하는 걸까? 사업 영역은 늘어나고 있고 신규 기능은 계속해서 업데이트하고 있는데 그에 비해 홈은 늘 같은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배민이 드디어. 홈을 개편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서, 배민은 왜 홈을 바꿨을까?
그 이야기를 남기고 싶었다.
홈은 앱을 실행시키면 사용자가 가장 먼저 마주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서비스에 대한 첫인상이 좌지우지되기도 하고, 어떻게 구성하느냐로 사용성을 180도로 바꿔 놓을 수도 있다. 그만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공간이기에 특히나 서비스를 기획하는 이들에게는 너무 어렵고도 중요한 공간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다. 단어 하나로 말한다면 '부담'이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과거 주니어 시절, (아니 그렇게 오래 전도 아님 거의 1년 남짓 전) 홈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러했다. 사용자가 자주 방문하는 곳이므로 그들을 위한 편하고 좋은 기능을 제공해야 한다고. 사용자들이 자주 이동하는 메뉴로 가기엔 뎁스가 한번씩은 있으니 홈에서 단계를 줄여주는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유저가 직접 정보를 찾으러 가지 않아도 맞춤형 정보를 좌라락 뿌려주고, 로직화할 수 없다면 사용자들이 편집해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게 전부인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홈은 가장 눈에 잘 띄는 공간이니 돈을 벌어야 하는 광고 영역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홈의 구좌 하나가 다 돈인 채용이나 매칭 플랫폼에서 운영하는 방식을 접하면서 느낀 생각이다. 결국 돈 아니면 편리함 중에서 취사선택해야 하는 레벨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업무적으로도 경험이 더 쌓이고 빠르게 생겨났다 사라지는 다양한 서비스 접하기, 요즘 세대의 사용성, 그리고 비즈니스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니 지금까지 홈이란 공간을 단편적이고 편협하게만 바라보았다는 깨달음이 있었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서비스는 어떨까?
이해를 돕기 위해 '모빌리티 / 커머스 / 엔터테인먼트 / 핀테크' 각 업계 대표 서비스의 홈이미지를 가져와 봤다.
카카오T는 모빌리티 서비스이다. 흔히들 알고 있는 택시부터 바이크, 주차, 대리기사, 기차예약까지 이동에 대한 모든 기능을 한데 모아 제공하고 있다. 초기 택시 위주의 서비스였을 땐 출발-도착지 입력이 있었던 것 같은데 서비스 확장에 발맞춰 앱 명칭과 함께 변경된 홈은 비즈니스의 범위를 톡톡히 드러내는 것 같았다. 더 확장되면 어떤 방식으로 바뀌게 될까? 기대되는 모습이다.
메타버스로 한창 인기 열풍인 제페토야 두말할 게 없다. 제2의 나인 아바타가 홈의 가장 전면에 위치하고, 그 아래에 커뮤니티 활동을 유도하는 여러 카드들이 배치된 형태다. 실수로 앱을 켰어도 이게 제페토라는 건 백미터 밖에서 봐도 한번에 알 것 같다.
이들 모두 홈에서 서비스의 성격을 맘껏 드러내고 있다. 첨부하지는 않았지만 몇가지 서비스를 더 떠올려 볼까? 대표 검색 포털인 구글은 가운데 떡하니 로고와 검색창만 두고 있고, 지도 서비스(구글맵/카카오맵/네이버지도)의 홈은 나의 현재 위치가 반영된 지도 화면이고, 웹툰 서비스는 요일별 볼 수 있는 웹툰 이미지 리스트로 꽉 채워져 있다.
결국 홈은 서비스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곳이다.
대부분의 좋은 서비스들은 홈에서 '우리 서비스는 어떤 서비스인지, 우리는 사용자들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지,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얻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응집해서 보여준다.
그러면 다시 이야기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배민은 홈을 왜 바꿨을까? 이렇게 귀중하고 값비싼 자리인 홈에, 주문까지의 뎁스 하나를 내어주면서까지 얻고자 한 것은 뭘까?
이전의 배민은 음식 카테고리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먹고 싶은 음식의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가게를 탐색한 뒤 주문하는 단계를 거치는 사용 동선을 기대해볼 수 있었다. 혹은 직접 검색하거나.
그런데 개편된 홈은 큼지막한 카테고리 위주로 나뉘어진 화면이 앞에 한단계 더 뿌려진 느낌이다. GNB도 없다. 홈의 카테고리가 GNB로서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주문을 하려면 배달을 한번 더 눌러 페이지를 이동하고 (이전의 홈 구성과 거의 비슷하다) 거기에서 주문하는 단계를 거친다.
배민이 이렇게 과감한 결정을 내린 데에는 서비스의 성격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배달앱으로 시작했지만 그동안 야금야금 B마트, 선물하기, 쇼핑라이브 등의 신규 기능을 출시하면서 사업 확장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이 모든 기능들은 기존 음식 카테고리를 노출하던 영역에 섞어 메뉴처럼 활용하고 있었다. 의도인지 노출 영역이 없어서 그랬을지..?는 의문이지만 나는 전자라고 생각한다. 서비스에서 주인은 늘 배달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개편은 배민의 아이덴티티는 배달을 넘어선 커머스 지분도 일부는 있다는 데 도장을 꽝꽝 찍는 선언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고 보인다. 배달은 배민의 메인이자 중심 사업이다. 그것을 기준으로 식품/음식을 중심으로 한 커머스 서비스-장보기/라이브/선물하기 등-를 전면에 내세웠다. 서비스 차원의 자신감과 사용자들의 이목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싶다.
앞서 말했듯 홈은 서비스에 있어 정체성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런 측면에서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개편이라면 주문까지의 뎁스가 한번 있어도 충분히 할애할만한 딜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메인이 주문인데.. 불편하지 않을까?"
정말 그럴지 한번 구성을 살펴봤다.
주문하는 유저는 크게 목적형과 탐색형으로 나뉜다.
1) 목적형 유저
이들은 뭘 주문할지 이미 마음에 다 찜해둔 사람들이다. 그런 유저들에게는 단계를 많이 주면 안 된다. 기존에 검색창이 늘 숨겨져있어서 접근하기 부담스러웠던 유저들에게는 희소식, 앱에 들어오자마자 검색할 수 있도록 홈에 검색창을 바로 넣어두었다. 배달 카테고리로 진입하기까지의 뎁스가 늘어난 데 대한 우려가 이 기능으로 해소될 것을 기대했으리라고 추측해본다. (그리고 다분히 추측이지만.. 충분히 해소될 것 같다)
2) 탐색형 유저
탐색형 유저는 카테고리를 들어가든, 추천 메뉴를 보든, 할인 중인 메뉴를 주문하든.. 일단 앱에서 여러 루트로 머무르면서 살펴보는 유저다. 이번 배민 홈 개편이 참 잘했다고 생각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민은 국내1위 배달앱이다. 사용 연령층은 20대가 가장 많다고는 하지만 이용자 수 자체가 많기 때문에 10대부터 50대까지 넓은 범위로 포진되어 있는 편이다. 특히 4-50대의 경우 급격한 서비스의 개편이나 변화에 보수적으로 반응하거나,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비중이 높다. 이는 곧 서비스에 대한 강한 불만으로 표출이 되기도 하고.
그런데 이번 배민 홈 개편은 달라진 홈이 기존의 사용성을 해치지 않는다. 기존 주문 시 사용자가 접할 수 있는 FLOW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홈을 변경하였으므로, 개편에 따른 사용자의 피로도와 스트레스를 급격하게 감소시켰다는 데 박수를 보내고 싶다. (마치 우리집은 우리집인데 그냥 현관 앞에 중문 하나 더 설치한 느낌이랄까... 그렇다)
지난번 쿠팡이츠에 감탄하면서 서비스 찬양글을 썼던 때가 엊그젠데, 배민 홈이 개편했다고 또 쪼르르 달려와서 잘했다 박수치는 나 참 일관성 없다...ㅎㅎ 암튼 배민이 서비스적으로는 이렇게 잘했다는 거고, 결과적으로 아직 배민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렇게 굳어져 버렸다.
- 배민은 느리다(디폴트) + 일부 번쩍배달만 빠르다(예외)
반면 쿠팡이츠는 디폴트가 '빠르다' 는 느낌이라 자꾸만 쿠팡이츠를 먼저 이용하게 된다. 하지만 배달업계 내의 파이 싸움과 별개로 새로운 비즈니스를 발굴하고 확장하는 행보에 덧붙여 전면에 내세운 모양새는 앞으로의 배민을 좀 더 궁금하게 만든다.
배달 중심에서 커머스 중심으로, 배민 비즈니스의 행보가 기대되는 개편이다. ;)